사실 일산 KINTEX만 살짝 돌아보고 오려던 여정이었습니다만 중간에 "삽질"을 하는 바람에, 귀가길은 다섯시간이나 걸리는 뜬금없는 방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갈 때는 3호선을 탔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KINTEX앞에서 R버스인 9714번을 탔습니다. 타면서는 내심 고속화도로로 내달리는 R버스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보이는 시골길마다 골라 들어가는 관광노선이더군요. -_-
해서 중간에 "원릉역"이라는 정거장이 있길래 더 못 견디고 냅다 내렸습니다... 만은. 젠장. 원릉은 교외선 역이라는 걸 망각해 버렸던 겁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교외선에는 작년부터 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있지요. -_-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뒤따라오던 버스를 번호도 보지 않고 잡아탔고, 그래서 내린 곳이 "능곡역" 이었습니다.
헌데, 임진강행은 10분 뒤에 오지만, 서울행 열차는 40분 뒤에나 있다는군요. 다시 버스로 가려다가 이왕 능곡까지 온 거, 경의선은 한번 타고가야겠다 싶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 임진강행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교행할 때 상행으로 바꿔 타자는 - 매표소에 문의해보니 (바빠 죽겠는데 별 시덥잖은 질문에도 친절히 대답해주신 분께 감사를) 교행역은 일산역이라고 하고, 해서 능곡->일산과, 일산->서울을 각각 끊었습니다.
어차피 단선교행이기 때문에 열차를 놓칠 일은 없을 것이고. 이를 감안해 일산 바로 전 역인 백마역에서 내렸다가 상행을 잡아탈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깜빡 정신을 놓은 사이 열차는 이미 백마역을 출발. 일산역으로 가고 있더군요. (역간거리가 조밀했던 건지, 바깥 풍경에 정신을 놓았던 건지 -_-) 혹시나 상행차가 나중에 들어와 주기를 기대했지만, 일산역에서의 교행은 상행이 먼저 들어오는 교행. 보기 좋게 열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일산역에서 하릴없이 1시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육교를 건너가서 버스를 잡아탈 수도 있었지만, 왠지 오기가 들어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_-
일산역 외부
일산역이라고 해서 일산신도시의 중심역이나 되는 줄 알았습니다만, 전체적인 느낌은 시골 간이역의 바로 그것입니다. ^^
일산역 장내에 있던 완목식 신호기
왠지 모를 위화감에 장내를 자세히 살펴보니, 완목식 신호기가 두 주 서 있더군요. 예전에 구전라선 구간에서 완목식 신호기를 쓰는 것을 본 이후로 못보던 녀석들이라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선로 쪽을 보고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신호개량 공사 때 완목식 신호기를 없애버리지 않고 일부러 갖다놓고 보존하는 듯 합니다.
완목식 신호기 안내판
완목식 신호기에 정신을 팔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구석에서 발견하게 된 안내판입니다. 생각대로 일부러 보존해놓은 신호기더군요. 특이한 것이 "신호기를 작동할 때에는 위험하오니 반드시 직원의 안내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문구였는데. 실제로 작동 체험을 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일까요?
완목식 신호기 전경
일단 뭐 이렇습니다.
레버와 신호기를 연결하는 와이어
레버와 신호기는 이렇게 와이어로 연결되어 있어서 작동이 가능합니다. 요즘은 다 전기식 색등신호기를 쓰고 있지만요. ^^
전호등
옛날에나 썼음직한 전호등도 내걸려 있습니다. 골동품 수집상들이 탐내기 딱 좋아보이지만,
이런 건 이렇게 제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
토끼장
반대편엔 토끼와
닭장
닭과
새장
잉꼬와
개장
개가 있습니다. ^^ 이 개는 수면병에라도 걸렸는지 제가 있는 내내 잠만 자더군요. -_- 길바닥에 나와 자다가 어디선가 나타나신 역 직원분께 "얌마 그만 자!" 하는 소리와 함께 한대 가볍게(!) 얻어맞고도 꿋꿋이 들어가서 또 잡니다. -_- 대략 폐인생활... 이 아니라 폐견생활을 하는 모양입니다. 사진 속에서도 수?d?G인 폐견의 포쓰가 느껴집니다. ^^
이쯤 되면 어디 농촌의 간이역에라도 나온 것 같지만
일산역 장내 전경
이곳은 "일산"입니다. 작고 아담한 역사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아파트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뒤에 짓고 있는 아파트가 안이 다른 아파트라 하는데, 정말 안이 다른 곳은 이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 안의 시간만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
일산역 외관2
한시간 동안의 짧은 체류였지만, 상당히 도시화되어 있을 줄 알았던 경의선 구간에 이렇게 작고 예쁜 역이 아직 남아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더욱 인상깊은 경험이었습니다.
2008~10년이 되면 이곳에도 드디어 복선전철이 놓여 수도권전철이 다닐 거라고 합니다. 수도권전철망이 지속적으로 확충되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다만, 번쩍번쩍하는 수도권전철의 공사가 1~2년 안에 이곳을 덮치고, 이 모든 것이 사라져갈지도 모른다는 것은 한편으로 아쉽기도 합니다.
본래 예정과는 상당히 많이 벗어난 여정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경의선 복선전철이 착공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쯤 경의선을 다시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여정이었습니다. ^^ 어쩌면 경의선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저를 불러들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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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달자면, 일산역에 복선전철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면, 완목식신호기를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던가 하는 보존대책이 마련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철도박물관에서도 일산역의 것 만큼 보존상태가 좋은 완목식신호기는 보기 힘든 것 같더군요.
첫댓글 일산역에서 표를 사면 역무원 분이 서울방면의 역이면 무조건 일산->서울, 도라산 방면이면 무조건 일산->도라산을 주시더라고요... 귀찮으신지.. 하긴 운임은 다 똑같으니까요.. 지난번에 대화역에서 일산역까지 걸어갔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ㅡ.ㅡ;;
테크노홀릭님, 9714번이 아니라 9713번 입니다. 9713번 원릉역~일산동해운수차고지 구간은 결국 버스기사 통근버스로 전락하고 말았죠. 배차간격두 늘어났고.... 그거땜에 9708번이 서울역으로 연장한거 같습니다.
일산역 저도 자주갑니다만.. 매일 가는곳은 탄현역.. 일산역사 뒤로 보이는 아파트가 98년도만 해도 없었습니다. 그 뒤에 깨끗했죠 ㅋ 저에겐 여러가지 추억이 있는 일산역입니다.. 완목식신호등도 99년도까지 사용하는걸 보았고...
저 전호등처럼 비슷한 전등이 예전 수동선로전환기위에 붙어있던걸 볼수있었습니다.............오수역에서 말이죠
전호등 갔다가 전등을 만들었군요... 저 완목신호기가 어째 범상치 않게 보인다 했더니만...
탄현역 생기기 전에 일산역 마니 당겼더랬죠...일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두가지씩의 일산역의 추억이 있을껍니다... 저 역시도...그랬지요...일산역 앞에 가면 언제나 시골풍경 같아서 좋았는데요...세월의 흐름이라는것이 어쩔수 없나 봅니다.
교외선 벽제역에 있던 강아지가 생각나는군요. 완전 저 모양이었는데.. ㅎㅎ 정말 그리운 모습들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네요.
신도시 생기기전엔 아담한 시골마을이었는데.. 이맘때쯤이면 역 뒷편으론 푸른 논밭이 시원~했었는데말이죠... 그나저나 돌아오시는 길이 일산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셨군요 저런...
평시때에도 경의선 CDC의 수요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일산권과 서울권을 연결해 주는 광역버스가 대부분 굴곡노선에 중복노선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오히려 열차시간만 잘 맞춰준다면, 경의선 근교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오히려 경의선을 많이들 이용하시지요. 근데 경의선복선전철화.. 공정률이 너무 느려보입니다.
개의 표정과 포즈를 보니 참 상팔자가 따로 없군요.^^
즐텍스 앞의 9713번... 이걸 타고 서울역까지 가는 시간이면.. 대화역에서 1000번을 타고 시내 왕복하는 시간하고 맞먹습니다.. 전에 한번 시승차 타봤더니, 기사님이 제발 타지 말라고 할 정도로 말리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