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갱변, 여불때기, 끄뜨메기, 수두룩, 맹가세, 소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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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마실소개 /166, 247) 석보면 원리리(院里里)가 궁금니껴?
석보면 원리(院里)는
옛날에 화산(火山)의 분화구가 있떤데고
면 소재지 마실이시더.
본래는 영해부 석보부곡(石保部曲) 땅이였꼬
재령이씨(載寧李氏) 집성촌이었니더.
조선시대때는 주민들에게 (복지)의료를 베푼
광제원(廣濟院)이 있었따고 케서
원리(院里)라꼬 카니더.
(원두들ㆍ원리)
면사무소가 있는데로
조선시대(고종)때 주민에게 (복지)의료를 베푼
광제원(廣濟院)이 있었꼬.
언덕(두들)에 원(院)이 있었떤 마실이라꼬
원(院)두들 또는 원리(院里)라꼬 카니더.
(갱빈ㆍ강변ㆍ중학교마을)
석보 소재지, 주남리, 화매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있는 마실이시더.
그랑(화매천) 가세 마실이 맹글어졌따꼬
강변(江邊) 혹은 갱밴, 갱변, 갱빈이라 카다가
1964년 석보중학교가 맹글어지면서
중학교마실이라꼬 카니더.
(아랫강변ㆍ아래갱빈ㆍ바람내기)
강변마실보다 알게 있따꼬
아랫강변 혹은 아래갱빈이라 카기도 하고
골바람이 억씨 센데라꼬 바람내기라
카기도 하니더.
(두들)
그랑까(화매천) 언덕 우(위)이고,
새장터 여불때기 산기슭에 붙어 있니더.
1965년 석보장터가
장터뫁(석보초등 앞 근바)에서
두들마실 내에 있는 새장터(면 노인회관
주변)로 옮기게 되면서 마실이 크지고
최근에는 마실 뒤쪼구에
장계향문화체험관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탈바꿈 되었니더.
(맛들ㆍ마웃들)
석보초등학교 주변 마실이시더.
마실옆의 들판 모양이
소가 더리누워가 있는 형상이라 케서
맛들이라꼬 켔따카기도 하고.
높은 곳에 있는 들판이라꼬
맛들 혹은 마웃들이라꼬도 카니더.
(솔밑ㆍ송하)
지경리로 통하는 다리입세 마실로
소재지캉, 지경, 옥계로 나눠지는
삼거리가 있꼬.
새장터(면 노인회관 근바)의
서쪽 광여산 자락 끄트메기에 있니더.
마실 뒤쪼구 언덕빼기에
노송이 수두룩 빽빽하다 케가꼬
솔밑 또는 송하(松下)라꼬 카게 됬니더.
송하(松下)는 솔밑을 한자로 쓴거시더.
(가두들ㆍ가구(佳邱))
원리3리마을회관 뒤편 마실로
본래는 광산김씨 집성촌이었니더.
조선 시대때 가재(佳在)라는 벼슬을 했는
이를 배출했따꼬 케서
가두들 혹은 가구라 켔따카기도 하고.
마실 앞산이 개가 누워가 짖는 형상
이라케가 개두들이라 카다가
가두들이라꼬 카게 됬따카기도 하고.
두들마실 중 맹가세(끄띠)에 있는
마실이라꼬
가두들이라꼬 켔따카기도 하니더.
(장터ㆍ장터뫁)
옛장터(지경리)에서 석보초등 앞 갱변캉
그 근바로 시장이 옮겨 오면서
장터 혹은 장터뫁이라 부르게 된니더.
그 뒤 장터에서 새장터(면 노인회관 근바)로
시장이 또 옮겨가게 되자
장터주변으로 집들이 들어서게 된니더.
(옛장터ㆍ구장터ㆍ구장기)
본새 지경리마을회관 동쪼구 갱변에
있던 장터로 원리땅이었찌만
지금은 지경 땅이시더.
석보시장이 맹처음 여기 갱변근바에 섰어나
소잡아 장터(석보초등 앞 갱변 등)로
시장이 옮겨가면서
옛장터 혹은 구장기(舊場基)라 카니더.
(새장터ㆍ신시장)
1965년 장터뫁에서 더 넓고 편리한 곳인
새장터(면 노인회관 근바)로 이전 된니더.
신시장(新市場)이라꼬도 카며
장터(석보초등 앞 근바)에서
시장이 새로이 옮겨오면서 부터
두들 주변(새장터 주변)에
새로운 마실이 맹글어지게 되었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