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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개혁 ♣ 스크랩 예람교회 박영신 목사님의 종교개혁주일 설교
익명 추천 0 조회 197 10.06.27 23: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 설교문은 닮고 싶은 예람교회 박영신 목사님의 종교개혁주일 설교 본문 요약입니다.

무지개 가족들에게 큰 은혜와 도전이 될것입니다.(출처 : 예람교회 홈페이지- http://www.yeramchurch.org)

 

 

 

오늘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를 붙인 바로 그 날을 기념하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그가 던진 문제는 이른바 면죄부에 대한 것이었으며 교황의 권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와 교황 모두 말씀의 권위 밑에 놓여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아무리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자기 혼자만 신앙생활을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으로 나아갔습니다. 집합의 차원에서, 공공의 수준에서 문제를 드러내어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부당하여 불편하더라도 교회와 지도자가 하는 것이니까 하고 순순히 뒤따르고자 하는 무리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불의를 돌파하여 의를 세우고자 개혁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도록 그를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어떤 힘이 저 변방의 한 이름 없는 신학자에 지나지 않는 루터로 하여금 막강한 교권에 대항케 하고, 거기서 부닥치는 고립과 고통을 견뎌내게 한 것입니까? 그것은 말씀에 터한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주는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는 그 믿음이, 루터로 하여금 모든 역경을 뚫고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것을 표상하는 것이 그가 지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과 삶은 어떤지 스스로 물어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하며 오직 그만을 의지하여 모든 잡된 세력에 맞서고 있는지, 종교개혁 '이전'의 천격스런 믿음을 떨쳐내고 종교개혁 '이후'의 품격 있는 믿음을 지켜가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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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오늘:  

때는 이제로부터 꼭 492년 전, 그러니까 1517년 10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독일과 체코의 국경에 길게 뻗쳐있는 산악 지대에서 물줄기가 생겨 독일의 여러 도시를 꿰뚫고는 함부르크를 지나 북해로 빠져 흘러들어가는 엘베 강가의 작은 대학 도시, 비텐베르크에서였습니다. 이 도시의 교회 문에 마르틴 루터가 이른바 <95개조>를 붙인 바로 그 날입니다.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그 날입니다.

그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럽, 나아가 세계 문명의 방향을 바꿔놓은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지난 5세기를 걸치는 동안 그의 입장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왔지만, 그가 남긴 글을 통하여, 생각을 통하여, 그의 삶과 행동을 통하여 인류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개신교에서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 주일'로 기념하고 개신교 국가의 전통을 가진 지역에서는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의 날'이라 하여 공공의 기념일로 지킨다고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 종교개혁을 기억코자 합니다.


2. 그날:  

<95개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항목은 이른바 면죄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지른 범죄 행위 때문에 받아야 할 벌을 돈으로 대신했던 일부 유럽 일부 지역의 관습을 본 따서, 교회에서도 돈을 받고 죄를 면해 주는 교묘한 수법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실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면죄부를 사야 한다면서 교회가 면죄부 구매 심리를 돋우며 판매 촉진책을 썼습니다. 교황의 재정 충당과 교회와 수도원의 부 축적에 이 관행은 필요하고도 편리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 데 엄청난 돈이 필요하게 된 시점이라 면죄부를 팔고 사는 행태가 더욱 심해져 그 남용의 정도가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를 논박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성경 어디에도 면죄부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그 터무니없는 기만책을 폭로하고 그 정당성을 부인했습니다. 벌써부터 사치하고 호화로이 살아온 교황과 화려하게 꾸며온 교회가 더 많은 돈을 모을 양으로 마치 형벌에 대한 특효약인 것처럼 면죄부를 팔아 돈을 챙기려는 것을 마르틴 루터는 차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 34살이 채 되기도 전이었습니다.

루터는 면죄부에 대한 반박으로부터 시작하여 곧바로 교황의 권위를 질문하는데 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는 교황에게는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확보되어 있다는 이른바 교황의 절대 신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으며, 교황에게는 어떤 흠도 오류도 없다는 이른바 교황의 무오류설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3. 그 길:  

그는 오래 동안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서 그 말씀과 교회 현실 사이에 너무도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현실이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며 침묵한 채 현실 교회 안에서 적당히 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자기만 똑바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수도자로서 조용히 자기 신앙생활만 잘 해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교회라는 제도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레 결론을 내린 다음, 자기중심의 보신책이나 소극의 태도를 취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만만찮다고 하더라도 마냥 거기에 목줄을 달고 살아가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올곧게 살고자 하는 그 길로 들어서고자 했습니다. 묵묵히 자기 신앙만 잘 지키면 된다는 소극의 태도를 떨쳐버리고는, 교황과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자신이 앞장서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개인 차원의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라 집합 차원에서, 공공의 수준에서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루터는 이 길을 택했습니다.

루터는 면죄부를 사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며 그것을 선전하고 강요해온 교황과 교회에 단호하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면죄부는 전혀 무의미하고 무력하다며 교황과 교회의 주장을 깨뜨려 뒤엎어버렸습니다. 그 모든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인간들이 만들어낸 하잘것없는 한낱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황과 교회가 발행하여 판매하는 면죄부는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효력도 가질 수 없고, 교황과 교회의 권위도 말씀의 권위 밑에 놓여 있어야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이 권위의 최종 잣대가 되고 근거가 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4. 그 힘: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그는 교회 개혁의 일에 열성이었습니다. 그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만이 읽을 수 있는 고전어로 적힌 성경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토박이 독일말로 옮겼습니다. 그는 예배의 내용과 형식도 바꿔놓았습니다. 라틴 말로 진행되던 미사를 벌서부터 모국어 독일말로 바꿔놓았던 관행을 루터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말글의 민주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교회 개혁을 위하여 밤낮없이 글을 쓰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어긋나는 세력과 맞서 싸웠습니다.

힘없는 평범한 한 수도사가 그 거대한 중세 교회의 세력과 맞서 싸우고 그 어마어마한 교황의 권위와 대결코자 개혁 운동을 벌인 것은 참으로 가당찮은 일이었습니다. 전혀 불가능하고 심지어 민춤하기까지 하여 그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란 있을 수 없는 그러한 싸움을 마르틴 루터가 벌인 것입니다. 겨우 독일 변방의 한 대학 교수에 지나지 않는 루터에게는 그 개혁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변변찮게 보인 한 젊은 신학자가 앞에 서서 교회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저 신성 불가침하다는 교황과 교회의 막강한 권력을 향하여 도전할 수 있게 하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감히 맞설 수 없는 저 교황과 교회를 향하여 면죄부라는 그 허위의 실체를 공박하고 교중을 줄곧 우매한 저능아처럼 다루는 짓을 그만두라고 결연히 항변할 수 있게 한 것이겠습니까? 무엇이, 무슨 힘이 루터를 교회 개혁의 길로 이끌어간 것이겠습니까?

그가 어떻게 이 엄청난 개혁의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겠는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무지막지한 세력이 가하는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숱한 위협을 뚫고 나아가게 하고, 그 세력에 에워싸인 무서운 고립을 견디며 그 세력이 짓누르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갈 수 있게 한 것이겠습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며 조그마한 흔들림도 없이 개혁의 길을 굳건하게 지켜 나갈 수 있게 한 것이겠습니까? 무엇이, 세상을 송두리째 뒤흔들고야만 개혁 운동, 그것도 정치 운동이나 경제 개혁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데 놓여 있는 신앙의 문제와 씨름해야 하는 종교의 개혁을 그가 이끌어가도록 한 것이겠습니까? 무엇이, 과연 어떤 것이 마르틴 루터를 두려움 없이 개혁의 길로 몰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겠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마르틴 루터가 지니고 있었던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눈부시고 요란한 제복을 걸치고 나타나는 이른바 성직자들과 그 성직자들의 우두머리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믿음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중세 교회의 개혁은 결단코 손쉽게 달성할 수 없는, 그야말로 험한 길을 예고하는 참으로 난감한 과제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 넘으며 고난의 격랑을 헤쳐가야 했습니다.

그는 이단자의 명부에 올라 법률상의 보호를 박탈당한 법익 피박탈자의 신분으로 떨어졌으며, 그 자신 살해의 위험에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그의 동료 개혁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와 함께 개혁의 믿음을 가졌던 동지들이 벌써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한 도시에서는 처형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는 신장결석이 발병하여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의 첫 아들은 전염병 때문에 거의 죽게 될 형편에도 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멈추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모진 세월 그 한 가운데 그는 언제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때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시편 48편을 펼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는 글귀로 시작되는 시편입니다. 루터는 자신의 붓으로 그것을 노랫말로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가락을 붙였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하는 찬송가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그가 지은 찬송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고 가장 널리 불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비텐베르크 대학, 그 건물 꼭대기에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장식무늬의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친 지난 일월 초, 제가 그 도시에 들렸던 초저녁 무렵의 밤하늘에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글귀가 은은한 불빛으로 더욱 빛나고 힘차게 보여 새삼 뜨거웠던 감격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종교 개혁가 루터는 외로울수록 하나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고 낙담케 될수록 말씀에 더욱 의지했습니다. 개혁의 길에서 쓸쓸함을 겪을 때 그는 오직 하나님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개혁의 굽이굽이에서 시달리고 지칠 때 그는 오직 성경에 기대었습니다.


5. 그와 우리:  

이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마르틴 루터의 찬송이요 종교개혁의 찬송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거세기 때문에 우리 모두 함께 부를 수밖에 없는 찬송입니다. 그 세력은 누구도 좀처럼 당해낼 수 없는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습니다. 2절에서 일러주듯이 그것은 "내 힘만"으로는 패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마귀의 세력입니다. 그러나 내 대신 싸워줄 "힘 있는 장수"가 있으십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그 어떤 세력도 덤벼 이겨낼 수 없는, 반드시 이기시는 분이십니다. 원문의 3절과 4절을 함께 엮어놓은 우리말 찬송가의 마지막 3절에서는,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도다" 하고는, 이어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고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고 사모하는 루터의 신앙 고백입니다.

오늘날 성직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이 땅의 교회들은 어떠합니까? 아니 우리는 또 어떠합니까? 로마서에서 구별 짓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죄의 본질을 따라 죄의 본성이 바라는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가 보내신 성령을 따라 성령이 바라시는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무엇에 기대고 있습니까? 우리가 진실로 주를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믿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고백하면서 오직 주께 기대어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까? '내 주' 대신에 실로 엉뚱한 것들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기면 곧장 포기하여 세상 나라의 논리로 되돌아가는 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정 진리와 평화로 다스려지는 그 나라와 그 의의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것을 믿고 살아간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오늘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이러한 물음을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기 바랍니다. 교회를 두둔하기만 하는, 이른바 성직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감싸기만 하는, 그러한 종교개혁 '이전'의 천격스런 교중이 지닌 믿음과는 달리, 교회가, 성직자가, 아니 우리가 '성령을 따라 성령이 바라시는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정녕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하고 나날을 찬송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깊이 물을 수 있는 자기비판의 능력을 지켜가는 종교개혁 '이후'의 품격 있는 예수 사람의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면 어떻겠습니까?    


---기도---

하나님,
교회에 대하여, 성직자에 대하여,
믿는다고 하는 우리 스스로에 대하여
말씀에 터하여 깊이 질문할 수 있는 '자기비판 능력'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신 것 감사합니다.

새로운 종교 개혁이 요청되는 오늘날
이 질문의 능력을 방치하지 않고
옹골진 믿음을 지켜가게
여기 머리 숙인 예람들,
더욱 고결한 믿음의 삶을 엮어가도록  
이끌어 주시기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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