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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다 함께 누리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예수님의 탄생을 다 함께 기뻐하며 누리며 사는 것이다.
여긴 돈 안 내고 타는 사람이 앉는 자리야
지하철에는 경로석, 장애인석, 임산부석이 정해져 있습니다.
경로석에 어느 아가씨가 앉아 있습니다.
아가씨는 할아버지가 타는 것을 보고 눈을 감고 자는 척했습니다.
깐깐하게 생긴 할아버지는 아가씨의 어깨를 흔들면서
“아가씨, 여기는 노약자와 장애인 지정석이라는 거 몰라?”
아가씨는 신경질적으로 “저도 돈 내고 탔는데 왜 그러세요?”라고 대구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여긴 돈 안 내고 타는 사람이 앉는 자리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에는 무임승차가 됩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지하철은 무임승차가 되지 않습니다.
무임승차하려고 하면 천사들이 가로막습니다.
천국에 가려는 지하철을 타려고 하면 반드시 예수님을 믿는 신앙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천국에 가는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신앙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천국 가는 신앙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분실하셨다면 빨리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천국 가는 신분증을 만드셔야 합니다.
천국가는 신분증이 되어주시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성육신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습니다.
오늘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신분증만 가지고 있으면 천국행 신분증이 됩니다. 아멘.
P4.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래로 현재 21세기까지 살아오면서 이루어진 이야기들을 역사라고 부른다.
지구의 역사를 진화론자는 몇 억 년, 몇 십 억 년, 몇 백 억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증명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아무리 진화론자들이 이러니 저러니 주장하면서 그 가설을 증명하려고 해도, 어디까지나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온 세상이 아무리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인본주의 세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엄연히 삼위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 신앙인들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가설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믿는 하나님 중심의 삶, 신본주의 신앙으로 살아간다.
지구촌의 역사, 동양의 역사, 서양의 역사,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역사. 세계교회 역사, 한국교회 역사, 우리교회 역사, 종씨의 역사. 가문의 역사, 가정의 역사, 내 개인적인 역사를 통틀어서 역사라는 말을 영어로 History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 History라는 단어는 다시 His Story라고 분류할 수 있다.
역사는 His Story, 곧 그의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그는 누구일까?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예수님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인류 역사를 기원 전과 기원 후로 양분되는데, 기원 전후로 양분하는 기준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후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기원전을 Before Christ라고 하는데 보통 BC라고 부른다.
기원후를 AD라고 하는데, 로마글자로 Anno Domini(안노 도미니)라고 부른다.
곧 ‘주의 해(年)에’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기원전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탄생하기 전의 역사요, 기원후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후의 역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AD1년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BC4년에 태어나신다.
학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역사를 다시 연구하면서 예수님께서 실제로 태어나신 것은 AD1년이 아니라 BC4년에 태어나신 것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어쩌튼 오늘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인류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그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주님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하여 그 믿음의 증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을 입은 것이다.
2022년의 마지막 주일은 공교롭게도 우리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같은 날이 되어서 오늘은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며 성탄감사예배와 2022년의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메시야로, 온 지구촌의 주님으로 아니 온 우주계의 통치자로 보내시는 과정을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메시야를 보내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으로 보내시는 과정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어 하시는 것일까?
D4.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신 말씀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메시야가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말씀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다.
미가서 5:2에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윗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신다.
하나님은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인류의 구세주,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것이다.
① 상황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인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미가서의 예언을 따라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로마 제국을 움직이면서 상황을 만들어가신다.
1-4절의 말씀에서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 갈릴리 북부지방 나사렛 마을에서 살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보내기 위하여 그 당시 최고의 권좌에 있는 거대한 로마 제국을 움직인다.
그 당시 유럽과 중동지역을 제패하고 있는 로마 제국을 움직여서 요셉과 마리아를 유다 지파의 본 기업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고 계신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마음에 로마 제국이 점령한 식민지 지역의 모든 인구를 조사하여 좀 더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본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정리하라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물론 로마 제국이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지는 정책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로마 제국의 황제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고 감동시켜서 나사렛 마을에서 살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급하게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도록 상황을 만들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만약에 아우구스투스가 각 식민지 백성들은 자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요셉과 마리아는 구태여 나사렛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였다면 굳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자기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얼마든지 호적을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고고고고고대사회, BC4년경에는 오늘날과 같은 최첨단의 인터넷 시대, 통신시대가 올 것이라고 상상조차도 못하던 시절이다.
반드시 직접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정리해야만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셉은 만삭인 아내 마리아를 나귀에 태우고, 요셉은 그 나귀를 끌면서 머나먼 여행,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뜻과 의지를 이루어가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직접 만들어가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뒤에서 모든 상황들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이끌어가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계획들을 세워서 진행시켜 나가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잠언 16:1에서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라고 말씀하시듯 하나님께서 직간접으로 움직여주셔서 그 일이 성취되어가는 것이다.
로마 제국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령의 사역을 진행시켜 나가는 여러 과정들 중에 하나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로마 제국은 자신들의 권력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제국의 권력까지도 얼마든지 활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는 구령의 사역을 성취해 나갈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다.
지구촌의 모든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세를 지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는 구령의 계획을 실현해 나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직접 만들어가고 계신다.
모든 상황들을 직접 입안하고 추진해 나가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추진해 나가고 계신다.
우리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한국교회와 선교사역을 위해서, 우리 교회와 가정과 생업 터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여러 가지 상황들을 설정하여 가장 선하고 의롭고 명확한 상황들로 만들어가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추진해 나가시는 구령 사역의 한 부분을 충성스럽게 담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시듯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주님의 거룩한 뜻과 의지를 이루어가시는 과정으로 사용하신다.
지금 좋지 않은 상황처럼 보이는 일들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벽한 길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들, 화를 바꾸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만들어가시는 전화위복을 추진해 나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해야 한다.
② 가장 낮은 상황으로 몰아가시는 하나님.
마리아는 이미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잉태하여 만삭이 되어 곧 출산할 날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이 내린 명령에 따라서 베들레헴을 향하여 고된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만삭인 몸을 이끌고 머나먼 여행길을 떠났기 때문에 이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나 피곤하고 고단하고 만삭의 몸은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머나먼 여정을 걸쳐서 베들레헴에 도착했기 때문에 마리아는 곧 이어 출산하게 된다.
6-7절에서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야가 태어날 숙소조차도 준비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권력을 가진 대감댁 손주며느리가 아니라 평범한 여인이 출산하려고 해도 온갖 것들로 준비하면서 출산을 맞이하는데, 인류의 메시야가 태어나는데도 아주 값싼 숙소조차 준비되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6성급 최호화 호텔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모텔 정도는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6성급 호텔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모텔도 없고, 아니 값싼 여인숙도 하나 없었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만삭이 된 마리아는 출산해야 하는데, 최고급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는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잠시 머물면서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마리아가 출산할 수 있는 여건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귀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마리아는 출산해야 했고, 나귀들의 먹이통인 구유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뉘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는데도 왜 이렇게 누추한 처지에서 태어나셔야만 되었을까?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태어나시는 과정 자체가 가장 누추한 상황으로 낮아지는 과정이다.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인간세계로 내려올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요셉과 마리아 가정을 통해서 진행시켜 나가시는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처소에서 태어나지 않고 그야말로 삐까삐까 하는 왕궁에서, 최고급 산부인과 병실에서, 초호화 산후조리원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예수님은 권력자의 구세주로 전락하게 된다.
사실 메시야를 애타게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강력한 파워를 지닌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다.
강력한 파워를 가진 메시야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세력들을 끌고 와서 유럽과 중동지역을 주름잡고 있는 헬라 제국, 로마 제국, 헤롯의 정권까지 물리치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고 강력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메시야가 와서 정치적인 굴욕에서 해방시켜 주고, 경제적인 굶주림에서 배불리 먹여주고, 질병을 완벽하게 고쳐주어서 이젠 더 이상 압박당하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그런 강력한 파워를 지닌 메시야를 보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힘없고 나약한 메시야를 보내서 낮은 사람들, 배우지도 못하고 권력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여관방 하나 없고, 나귀들이 머무는 곳에서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탄생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서 61;1-3의 말씀에서 메시야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암시해 주셨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강한 권력자의 메시야가 아니라, 낮고 천하고 누추하여 가진 권력이라곤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찾을래야 찾아낼 수 없는 자, 약한 자, 무언가에 굶주린 자, 압박당하는 자들의 메시야로 오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세워 가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나귀들이 머물고 있는 처소의 주인에게 감동을 주시면서 “여기가 누추하기는 하지만, 여기서라도 출산하여 몸을 푸심이 어떻습니까?‘라고 하면서 나귀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누추한 모습으로, 가장 온유한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신다.
예수님은 강력한 파워를 지닌 말의 모습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나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예수님은 강력한 파워를 지닌 말의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으셨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서 말구유에 누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특성을 따라서 유대인들이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나귀들이 머무는 처소에서 태어나셨고, 나귀들의 먹이통인 나귀 구유에 누이신 것이다.
그런데도 강력한 말을 좋아하는 로마인들이 AD. 325년에 니케아종교회의에서 기독교를 로마국교화하면서 로마교회도 강력한 힘을 가진 교회여야 한다고 착각하고는 아기 예수님도 나약한 나귀들이 머무는 처소가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가진 마굿간에서 태어나서 말구유에 뉘었다고 거짓 교리를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제부터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고 낮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오셔서 가장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면서 공성애를 감당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한 방울의 피도 물도 남기지 않으시고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음을 상기하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귀와 같이 하늘 아버지 앞에서 온유하고 하늘 아버지께서 가지신 구령의 계획에 온전하게 순종하면서 친히 구원자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드리며 살아야 한다.
③ 영광과 기쁨의 상황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예언하신 메시야가 태어나셨음에도 온 세상은 메시야의 탄생에 대하여 관심도 없고, 메시야가 탄생했음을 제대로 인식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
유대인들이건, 그 당시 종교적인 온갖 권력을 지니고 있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을 비롯한 산해드린 공회원들이든, 어느 누구도 메시야의 탄생을 인식하는 이들이 없었다.
어쩌면 이들은 가장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이심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거나 축하하는 이들이 없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보내서 목자들에게 알려주고 찬양하게 한다.
8-12절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베들레헴 근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신다.
한밤 중에 너무나 찬란한 천사들이 나타나니까 목자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너무나 무서워하면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다.
목자들은 지금까지 광야에서 목자로 살면서 이런 일은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다.
너무나 무서워서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은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라고 말씀하면서 메시야, 그리스도가 태어나셨음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천군 천사들은 14절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세상에서는 깜깜무소식이었지만,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이 된 것이다.
하늘의 모든 천군 천사들이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다.
목자들은 천사들이 알려준 곳으로 찾아와서 나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요셉과 마리아에게 천사들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요셉과 마리아는 목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깊이 새기면서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아들을 주셨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요셉도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와서 아내가 메시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마리아도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와서 자신이 메시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이제 천사들이 목자들에게도 메시야가 탄생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요셉과 마리아도 예수님을 예사롭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영광과 기쁨의 시간이 되는 상황으로 이끌어가신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고 마리아가 출산한 지 40일이 되는 날에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을 때,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를 만나게 하시고, 이들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신다.
이처럼 성탄은 모든 이들에게 기쁨이요 영광이요 행복이 넘치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성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지구촌 인간사회에서도 커다란 영광이요 기쁨이요 은혜요 사랑이요 축복의 순간이다.
B4 & L4.
하나님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성취해 나가도록 상황들을 만들어 가신다.
이방 나라 정권도 사용하시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보내시고, 천군 천사들을 사용하시면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고 영광을 올려드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 주변에서 여러 상황들을 사용하여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가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메시야를 보내시면서 로마 제국을 사용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로마 제국도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추진하는 구령 사역에 사용되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유대인들도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기 위하여 로마 제국을 사용할 것이라고 상상조차도 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예수님의 부모님으로 등장하는 요셉과 마리아도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기 위하여 로마 제국을 사용하고 있다고 깨닫지 못한다.
그저 모든 식민지 백성들은 각각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정리하라는 로마 제국이 추진하여 시행하는 정책 때문에 자신들이 머나먼 여정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왔다고만 여기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생각이나 사상이나 마음이나 의지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추진하는 구령의 사역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가지신 강권적인 의지와 계획과 뜻과 주권과 섭리를 따라서 하나씩 하나씩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령의 사역을 진행시켜 나가고 계신다는 진리이다.
우리들이 인식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은 일이겠지만, 우리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은 하나도 개의치 않는다.
본래부터 하나님께서 가지신 의지를 따라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오늘도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의지와 섭리를 따라서 따라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서 임마누엘로 동행하고 계심을 고백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도, 2022년을 마무리하는 한 주간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2023년에도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 섭리하심, 이끌어가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잘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리라 믿는다.
이제 우리 신앙인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는 영광과 기쁨으로 누리면서 2022년을 마무리하며 정리하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가족들, 성도들, 동료들, 이웃들 서로서로에게 축복하며 사랑하며 위로하며 격려해 주며, 감사할 수 있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2023년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모두 9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