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야의 성소
25: 1-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5.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
초대교회의 첫순교자 스데반은 모세가 주도하던 출애굽의 여행기간을 「광야 교회」라고 표현하였습니다(행7:38).
사실 이 광야교회 시절에 있었던 사건들이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근거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정처없는 여행길에 하루하루 연명하며 버티어 나가는 것이 기적이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고 그때 애굽을 탈출했던 1세들은 모두 광야에 뼈를 묻고 말았으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광야 생활 40년은 수난과 암흑의 시기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조금도 중단되지 아니하며 오히려 구속사적인 원대한 섭리를 이루는데 요긴한 과정으로 작용하였던 것입니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는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두가지 큰 사건을 기록에 남기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전달받은 십계명과 율법들이며, 다른 하나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처소로 만든 성소입니다.
전자는 구약시대 선민 이스라엘이 지켜야될 생활의 강령이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구별된 삶의 기준이 되는 교과서입니다.
후자는 율법의 도리를 적용하여 하나님의 섬기는 실제적 행동이며 가장 요긴한 종교의식을 하게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광야여행의 한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써 이는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신령한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내용을 세분하면 1장에서 19장까지는 애굽에서 시내광야에까지 이르는 출애굽의 과정을 소개하였으며, 20장에서 34장까지는 모세가 시내산 위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계시받는 내용이고, 35장부터 40장까지는 하나님의 법령대로 성소를 짓고 거기에 필요한 기구를 만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성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성소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소가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는 신앙행위와 관련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에서 건립했던 성소는 그 구조와 양식에 이르기까지 훗날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되는 신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본문 성경에 나오는 성소의 경우도 거기 쓰여지는 재료와 그 기능까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써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히9:1-10).
(1) 하나님의 영광이신 그리스도
성소는 훗날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지은 성전에 비하여 그 크기나 모양이 매우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성소의 특징은 초라한 외모에 비하여 내부의 구조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위엄을 갖추게 하였습니다.
우선 바깥 뜰에 나무로 만들어진 구조물들은 모두 놋으로 덮었습니다(출38:3-7).
그러나 안뜰에 있는 것들, 성소 내부의 기구들은 정금으로 입혔습니다(출37:1-16).
그리고 성소의 바깥뜰에는 태양빛의 자연 채광에 의한 조명을 받게 하였으나 휘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오직 순금등대에서 비춰지는 빛으로 조명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소의 심장부라고 할수 있는 지성소 안에 십계명의 돌비를 담아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습니다.
거기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며 이 성소 깊은 곳에는 외부와의 교통이 차단된 가운데 정금빛의 조명이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를 흑암을 비취는 광명이라 하였고(사9:2), 신약의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참빛, 곧 생명의 빛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요1:9).
(2) 그리스도의 몸을 뜻합니다.
성소의 외부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져 있어서 그냥 검은 장막같이 보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성소를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다고 생각할 때(히8:5), 그 의미는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일찌기 이사야 선지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면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사53:2).
그러나 예수님의 내면적인 모습을 소개한 사도 요한의 증언에 의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1:14).
사도 바울은 신약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비유하였습니다(엡1:23).
참된 교회는 건물의 웅장함이나 외부적인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영광과 풍성함에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나타나는 기구나 조직, 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이 능력을 발휘할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말씀을 통하여 받게 되는 풍요로움이 없을 때 마치 육신의 욕구를 채우면서 영생의 말씀을 외면하는 벳세다의 무리들과 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요6:60-66).
(3) 중생한 성도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5에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성향은 세상의 군왕이나 힘있는 자들처럼 겉으로 요란하게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2:6-8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하루하루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며(갈4:19) 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Ⅱ. 성소의 기능.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성소를 지을 것을 명하시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분부하신 것입니다.
사실 기약없는 광야길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그들에게 왜 이토록 시급하게 성소를 지어야 했는지 의아해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성소를 중심하는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바로 인식하게 되면 그 대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곳입니다.
애굽 바로왕의 속박에서 풀려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을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소는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 행위를 하게 하기 위하여 구별해 놓은 장소입니다.
성소안에는 번제단과 향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은 제사장이 소와 양을 불태워 제사드리는 곳이며 향단에서 사르는 향불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연기가 됩니다.
여기서 제사장이 향을 피우며 기도할 때 백성들은 그 향의 연기가 올라감에 따라 같이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교회에서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예배행위를 가집니다(롬12:1).
특히 성도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며(요4:24), 마음과 뜻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데 이 기도가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된다고 하였습니다(계8:3).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와같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가지므로써 더욱 깊은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2) 성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지성소 깊숙한 곳에 십계명의 돌비를 담은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성소는 성소 안에서 특별히 구별된 곳이며 거기에 있는 언약궤는 가장 비중있는 기구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언약궤 안에 담긴 십계명의 돌비는 계시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며 이는 곧 말씀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도 말씀의 진리가 선포되고 또한 그 말씀이 그대로 보존되어 교회의 사명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전해지지 못하거나 말씀이 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때 교회는 그 생명력을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목마른 인생들이 주님의 교회로부터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해갈함을 받게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심령을 소생케하는 생수가 되기 때문입니다(요4:10).
(3) 성소에는 제물을 먹는 장소가 있습니다.
레위기 6:26이하에 보면 "…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 나와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거기서 떡을 먹게 되는 것은 훗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생명의 떡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이 윤택하고 살찌게 되는 진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요6:35).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요6:27).
교회밖에서 육신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썩을 양식을 위하는 일이 되거니와 주님 앞에 나와서 그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은 영생을 위하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소는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만나고 교통하면서 풍요로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는 곳입니다.
Ⅲ. 삶의 구심점(求心點)이 됩니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성소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시편 84:5에 보면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온의 대로」란 하나님의 성소를 향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1) 감사와 헌신의 상징입니다.
옛날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두로왕 히람이 보낸 백향목으로 지었는데 따지고 보면 국고에서 재정을 풀어 이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광야에 세운 성소는 순전히 백성들이 바친 헌물로써 지어졌습니다.
성소에 쓰인 재료들은 금,은과 같은 값비싼 패물들과 각종 비단과 색깔있는 실로 공교히 수를 놓아서 짠 천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백성들의 정성과 헌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수백년간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고, 또 광야의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짓기 위하여 물질을 바쳤습니다.
출애굽기 36:3-7에 보면 백성이 앞을 다투어 물질을 가져오므로 쓰고도 남게 되어 모세가 가져오는 일을 중지하도록 명령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재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헌신의 뜻이 있으면 무엇이나 할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감격을 안고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백성들은 저마다 먼저 물질을 바쳤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성소가 지어지는데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2) 백성들의 꿈이요 희망입니다.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곳을 「언약의 땅」, 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성전 예배를 드리며 신령한 국가를 이룩하고자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출애굽의 일세들은 다 죽어 광야에 묻혔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가나안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 후손들에게 축복의 과제를 넘겨 준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희망찬 내일의 비젼을 가지고 고달픈 오늘의 현실을 극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성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에는 언제나 성소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싸인(Sign)이 있었습니다(출40:36-38).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 예루살렘 성전이 하늘나라 천당에 대한 꿈이었다면 광야에서의 성소는 환난많은 세상살이에서 그 꿈을 실현코자하는 이상이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현상은 먼 훗날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나라를 잃고 타국에 유리하면서도 성소를 향한 변함없는 마음을 토로한 것으로 보아서 알수 있습니다.
시편 137:6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고 하였습니다.
(3) 영적 생활의 중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여행할 때 무작위로 그냥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 나아가는 행진 대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민수기 2:1-9에 보면 전면에는 유다지파를 위시하여 스불론과 잇사갈, 그 우편에는 르우벤 지파와 시몬과 갓지파이며 그 좌편에는 아셀과 단, 납달리 지파 그리고 후면에는 에브라임과 베냐민, 므낫세 지파로 배정되었습니다.
물론 이와같은 대형은 언제나 성소를 중앙에 두고 짜여진 대형입니다.
언제든지 그 백성들이 움직일때는 성소를 앞세우고 따라갔으며 그들이 진을 치는 곳에서는 성소를 먼저 짓고 그 주위에 저들의 장막을 지었습니다.
이것은 성소가 그들의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성소 중심의 삶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름지기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 철학을 실천하여야 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의 원리를 정립하게 하는 것이며 가장 안전하고 성공적인 인생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