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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전라. 제주권
저-유흥준
출-창비
독 정:2017년 6월 14일. 수
<지리산 새할아버지>
피아골 연곳사에 유난히 새가 많아 새할아버지(김행률. 70을 넘은 분)가 있다. 계곡 물소리가 우렁찬 여름날과 흰눈 쌓인 한겨울도 단풍 물든 늦가을 보단 못하리라. 산비둘기 구구소리와 5월이면 울어대는뻐꾸기 소리, 홀로 때로는 무리 지어 나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새 먹이를 놓고 다니는 일을 30년 동한 한 할아버지 어릴 때 뀸은 ‘푸른 산을 만들자. 내 자손에겐 푸른 산을 넘겨주가’였다. 전쟁 후 벌거벗은 산에 나무 심는 일, 치산혹화 10개년 계획 때부터 일했고 작은 벼슬자리도 뿌리치고 심은 나무 돌보는 일에 나섰다. 산림 보호의 치명상은 벌레인데 산새가 벌레 제거에 최고다. 박새, 할미새, 곤돌배기 같은 작은 토종새가 벌레 잡는데 귀신이고 산까지, 꿩, 덤불새 같은 큰 새도 한 점씩 거든다. 그런데 산새가 먹이가 부족하여 잘 살 수 없어 승탑밭, 돌기단, 언덕빼기의 큰 바위 한쪽 등 길목마다 먹이를 놓아 보호하고 있다. 새할아버지으 산새 보호는 도봉산, 북한산에서부터 시작했단다. 누가 시킨 것도 누가 곡식을 준 것도 아닌데 ‘아르바이트’해서 새 모이를 구해 준다. 쌀, 좁쌀, 콩 같은 낟알을 새가 잘 보이는 데 꾸준히 놓으니 새들이 모여들고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해를 하고 나니 산새 일만 마리 정도 헤아리게 됐다.
“할아버지 일만 마리인지 어떻게 알아요?”
“다 세는 법이 있지. 인간은 의리를 져버려도 짐승은 그러질 않아요. 내가 백무동으로 올라가면 최소 2천 마리는 나를 ㄸ다라오며 에스코트해요. 새를 사람만 못하다고 하지 마요.”
새할아버지의 정성을 알고 양귀비같은 등산반원 일곱이 북한산 산새 관리를 맡겠다고 새할아버지가 용문산에도 번식시켜 놓은 일만 마리에게도 모이를 주고하여 벌써 3만 마리가 됐단다. 답사올 때 곳식 한 됫박씩 들고 오란다.
“할아버지, 우리가 미처 몰라서 그냥 왔는데요. 좁쌀 한 가마 사드리면 좀 놓아주시겠어요?”
“아, 그야 물론이지.”
5만원을 봉투에 넣어 드리자
“아, 봉투는 필요 없어. 그런데 요즘 좁살 한 가마는 6만원인데...”
할아버지는 어서 아침 새 모이 놓게쑈다고 더났다. 현각선사탑을 거쳐 소요대사탑에 왔을 때 승탑 기단석에 모이 놓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모이갑 드린 지폐를 손에 꼭 쥐고 계셨다.
“할아버지, 돈은 주머니에 넣으시지 왜 들고 다니세요?”
“아, 이 사람아! 새들한테 보여줘야기. 오늘 너희들 먹이 살 돈 들어왔다고. 그러지 않고 내 주머니에 쑥 집어넣으면 새들이 기분 좋겠어?”
“할아버지, 조류학자 얘기를 들어보니 고기 기름을 가져다가 나무에 걸어주면 좋다던데요?”
“좋기야 좋지. 새들이 거기에 부리를 비비며 좋아하지, 그러나 나무 벌레 잡아먹는 새는 박새, 할미새 같은 작은 새거든. 특히 박새는 식사를 어떻게난 깨긋이 하는지 한 나무를 다 잡아먹어야 다음 나무로 가. 완벽하게 청소하지. 그런데 고기 기름 걸어놓으면 까마귀 같는 큰 새가 차지하ㄹ려고 작은 새는 막 쪼아 쫓아버려. 이론하고 실제하고는 많이 달러. 새는 어디까지나 새여.”
“그래도 조류학자 예기는 그런 게 있어야 희귀조가 보호된다가 하던데요?”
“왜 조류학자들은 앉아서 희귀조아 새 색깔만 따지나 몰라. 주둥이 까마면 까만부리 무슨 새, 머리에 빨간 점이 있으면 빨강머리 무슨 새하고 희귀조조니 뭐니 하는지 모르겠어 발강머리 할미새고 까만부리 할미새고 새가 굶어죽는데 밥을 줘야지. 새도 먹이가 없으면 죽는다는 것은 누가 연구하나?”
할아버지는 이러다가 아침 모이 주는 것 늦겠다며 우리를 뒤로하고 피아골 계곡을 계속 올라갔다.
<추사체와 원교체>
추사가 제주도 귀양길에 전주, 남원을 거쳐 완도로 가던 길애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믈 만났다. 대흥사 편판 글씨블 보고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것이 원교 이광사인데 어떻게 안다는 사람이 그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버젓이 걸어놓는가”
호통을 치며 신경질을 부렸다. 초의는 극성에 못 이겨 원교의 현판을 떼어내고 추사 글씨를 달았다. 1848년 12월 추사는 63세에 9년만에 귀양지에서 풀려나 대흥사에 들른 추사가
“옛날 내가 귀양길에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지금 어디 있나? 있거든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추사는 법도를 넘어선 개성의 가치가 외로운 귀양살이 9년에 채득한 것이다. 지금 대흥사 대웅보전에는 다시 원교 이;광사의 편한이 걸려있고 ㅇ뢴쪽 승방에는 추사가 귀양 가며 썼다는 ‘무량수각’현판이 하나 걸려 있다. 조선의 두 명필의 예술의 징수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원교체는 획이 가늘고 빳빳하여 화강암의 골기를 느끼게 하고 추사체는 획이 살찌고 윤기 나는 미감이다. 원교체는 손칼국수의 국숫발 같고 추사체는 탕수육이나 난자완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귀양살이 이후 글씨인 <명선>에 와서는 불필요한 기름기를 걷어내고 자기 기와 운을 세우게 되는 그런 경지란 원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높은 차원이었다.
땅끝으로 가는 길의 두륜산을 가다보면 공룡 등ㅃ벼같은 달마산 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그 성강에 고색창연한 미황사가 있다. 미황사 대웅전 높은 축대 한쪽에 걸터않자 멀리 어란포에서 불어오는 서풍을 마주하고 장엄한 낙조를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영감 인자 그만 보고 가십다. 오래 본다고 아요? 다 배움이 깊어야 아느 법이제.”
“모르긴 뭘 볼러? 임자는 꼭 날 무시해야 쓰겄는가?”
“그러믄 이개 다 뭐다요?”
“뭐긴 뭐여. 인생이란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란 말이시”
천연덕스런 할아버지 해설 앞에 미숦평론가는 무릎을 꿇었다. 우리 정서 환기에 매우 유익한 애교 있고 악의 없는 예술의 사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렇게 생긴 산을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산이라 한다. 지금처럼 산과 들과 마을과 강이 한 공간에 다 들어있는 풍광은 상상도 못했다 당신네 나라 사람들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많이 다를 것 같다.
• 의도적으로 조성한 정원은 긴장시키지만 선암사 정원에는 그런 경직됨이 없다. 선암사 진입고가 디자인한 태를 보이지 않으면서 실은 더 디자인적 배려가 있는 것과 같다.
• 산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역시 범패
• 이 방에 누우면 냇물이 머리 밑으로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솔잎 듣어 황토방에 깔고 자면 솔향속에 소나무들이 노래하는 바람소리도 따라온다.-선) 그래서 답사회 사람들은 침계루(계곡을 베개 삼는 누각“방이라 한다.
• 모든 건축을 자기 고유의 표정이 있다 이집프 피라미드는 네모뿔 모양이이고 파르테논 신전은 맞재비중집이고 타자마할은 네모난 상자 위에 양파가 ㅇ넞힌 것 같고 중세 교회들은 피사드로 특징을 만들어낸다. 그런에 선압사 절은 건물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이 절을 다 보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건물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아가 본 건물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도 한쪽으로 옮기면 새 건물이 드러난다. 그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깊은 산속의 깊은 절이다.
•선암사 경내에는 석등이 없다. 선암사에 화재가 잦아 아예 불을 상징하는 것을 두지 앟았다. 부엌인 심검당의 연기 구멍에는 풍수로 치면 비보에 해당, 무속으로 치면 액막이 셈의 바다 해, 물 수자를 조각해넣어 환기통을 만들었다. 신자가 석등을 선물할치면 스님은
“본래 석등이란 어두운 곳에서 밝혀주어야 하는 것이니 절집 진입로 산죽밭에 숨은 듯이 있으면 더 효험이 있겠습니다.” 하며 밖으로 내다 세웠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딱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책에서
• 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는 것은 자연이 내린 축복이다. 우리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고 제주도가 없다면 그 허전함과 서운함은 무엇으로 메울까? 육지인에게 재주도가 매력적이 된 것은 인문적으로는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제주인만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고 자연적으노는 난대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육지에서 보기 힘든 늘푸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으로나 자연으로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가득하여 그것이 친숙하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온다. 낯설지만 내것의 또 다른 모습 같기 때문에. 낯 설어서 더 좋은 곳. 무엇보다 온대와 난대가 교차하는 지점이어서 따뜻한 남국이면서 온대성 사계절이 분명해 겨울에 눈 내리는 매력. 지구상에 이처럼 눈이 내리는 난대는 드물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찬미하고 열광한다.
•<연려실기술>에 이약동 목사 이야기
공이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사냥할 때 쓰던 채찍 하나가 있었는데 임기가 차서 돌아올 때 그 채찍조차 벽 위에 걸어두었다. 후에 섬사람들이 보배처럼 간수하여 매양 목사가 부임하면 채찍을 내어놓았다. 세월이 오래되자 좀먹ㅇ어 부서지니 화공을 시켜 그 채찍의 형상을 그려 걸어놓았다.
•제주에서는 항상 남신보다 여신을 더 귀하게 모신다. 여성은 소문 내지 않고 ㅈ바기 얘기와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호 하는 심리가 있다. 그런 사하소연을 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데 이런 할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심신의 카운슬링 상대로 할망을 모시는 것이다.
백조 도령 신단은 중앙에 있어도 주민들이 바친 재물이 보이지 않고 서정승 딸의 신당엔 야초가 즐비하다. 그쪽 팽나무 가지엔 색동천과 소원을 적는 소지라는 흰 종이들이 달려 있다. 팽나무의 구불구불한 여러 줄기들이 하늘 향해 호소하듯 큰 몸짓으로 용틀임하며 치솟아 있다. 귀기로 범벅이 된 본향당 안의 신령스러움은 소름 돋을 정도다.
•조천 제주의 관문으로 유배객이나 장삿배가 드나들어 고을이 형성되었고 진지가 제법 잘 축조되었다. 조천이란 하늘, ㅊ언자에게 조회 한다는 뜻이고 망경루는 서울을 바라본다는 듯, 연북에서 북이란 임금을 상징(사모) 조선시대은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시회구조였음을 맗해주느 거의 보통명사에 가까운 이름들이다. 연북정은 시원스러운 맛이 아니라 야무진 집이라는 인상을 준다. 모든 정자는 건물 자체보다 내다보는 전망이 더 중요하고 더 아름답다. 먼 바다에서 파도가 넘실넘실 품 추듯 포구로 밀려들어오다가 바위섬에 부딪칠 때는 ‘처얼썩’소리 내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해안에 다다라서는 뒷걸음로 물러나며 자취를 감춘다. 낮은 바위를 거뜬히 타고 넘는 파도를 보면 내 몸과 마음이 홀연이 가벼워진다.
<연북정> 정호승
중략
기다리면 님께서 부르신다기에
기다리면 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다기에[
연북정 지붕 끝에 고요히 앉은
아침 이술이 되어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의 사랑도 일생에 한 번쯤은 아침 이슬처럼
아름따운 순간을 갖게 되기를
기다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느냐
•조천리 마을길을 거닐다보면 낮은 돌담 너머로 집집마다 자기 표정을 갖고 있어 정겹다. 어느 집 담 밑에는 잘 자란 하귤이 참스럽게 열매 매달고 있고 선인장이 피어나고 있다. 담쟁이덩굴 우거진 돌담 오솔길, 한 사람 정도 지나면 딱 좋을 좁은 오솔길, 길에서 집 안으로 연결해주는 돌담 올래길, 그렇게 걷다보면 조천의 연륜을 말해주는 비석거리도 만난다. 묵은 동내의 정겨움을 물씬 풍겨주는 올레길 19코스다. 조천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개병하여 3.1운동 당시 제주도에서 맹 처음 독립 만세를 부른 곳이다. 이를 기념 조천리 만세 동산이 있다. 신촌리 덕인당은 당일 만든 보리빵이 떨어지면 즉시 가게문을 닫는다. 서광다원 오설록의 녹차아이스크림이 인기다. 일류 음식점의 반찬이 맛있는 것도 팔고 나면 버리는, 밥도 나물도 곧바로 해서 주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일류가 이류가 된다.
• 호텔의 아침 커피는 그 집 얼굴입니다. 다시 내려 오십시오.“ 문화느 소비자가 만든다. 소비자의 입이 까다로워야 좋은 음식이 나오고,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야 상품도 작품도 질이 향상된다.
• 제주 4.3 사건은 2000년 1월 12일 제두 4.3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비로소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착수되었고 2003년 10월 31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제주도민에게 사고하고 덧없이 죽은 영혼들이 폭도가 아니라 양민이었음을 확인했다. 2008년 3월에는 제주시 봉개동 한라산 기슭에 제주 4.3 평화공원이 조성되었다, 350명의 남로당 무장대를 토벌하려고 3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킬링 필드였다. 이 사건을 처음 다룬 작품이 현기영의 <순이 삼촌>소설이다. 1949년 북촌리 주민 400여 명이 학살당한 사건 때 기절하여 살아난 ‘순이 삼촌’이 후유증에 시달리다 두 아이를 잃고 끝내 자살하는 이야기다. 사실상 이 소설이 4.3 사건 진상 규명의 첫 기폭제가 되었으니 현기영은 이 작품 발표 뒤 정고 기관에 끌려가 지금도 한쪽 귀가 안 들린다. 무장대 총책 이덕구가 전봇대에 효수될 때 그의 주머니에 숟가락이 꽃혀 있었다. 이것은 현기영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주제가 되었다. 4. 3 사건으로 희생된 이는 약 2만~3만 명, 당시 제주도민의 10분의 1이었다. 양민 학살 때 같은 이름이 있으면 같이 처형되었다.
땡볕에 무르익은 노랑참외의 단내가 들길에 석어 넘실거릴 때 먼바다는 쪽빛이다. 능선 고운 오름 잔디가 금빛으로 옷갈이하고 맑은 바람 속에 작은 산꽃들이 하늘댄다. 능선에 올라선 순간 뻥하고 뚫린 분화구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다랑쉬 오름. 오름은 제주의 빼놓을 수 없는 표정이자 제주인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다. 거문오름 이름은 검고 음산한 기운을 띠는 데서 생겼으며 신령스런 산이란 뜻도 있다.
<용천 동굴>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될 자격으로 인간의 간섬을 전혀 받지 않은 용암동굴이 하나라도 있다면 가능하다고 할 때 설문데 할망이 도와주었는지 용천동굴이 발견되었다. 닻치물동굴과 1km 덜어진 도로에서 전신주 교체작얼을 하다 전신주가 갑자기 아래로 쑥 빠져버려 둟린 구멍으로 들어가보니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처녀동굴이 나타난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 동굴을 그달 25일에 즉시 천연기념물(제 466호)로 가지정했다. 전체 길이 3.4km, 폭 14m, 높이 20m, 동굴 입구에서 바다 쪽으로 3km 구간에 용암생성물과 석회 생성물이 신비스럽게 펼쳐진다. 동굴 천장의 하얀 빨대 같은 종유관, 바다의 황금빛 석순, 석주, 동굴산호, 동굴진주 같은 탄산열 생성물도 있ㄷ. 동굴 끝에는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길이 800m, 수심은 8~14m, 폭 20m 천년의 호수였다. 용천 동굴은 용암동굴이면서 석회암동굴의 성질도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사 석회동굴이다. 천장에서 종유석이 생성되고 가느다란 명주실 같은 것이 동굴을 가듣 메우고 있어 그 분위기가 환상적. 2010년 2월 11일, 재조사 결과 국립제주막물관팀은 토기 22점, 칠기 4점, 조개류 28점, 동물뼈 등 생활 유물을 60개 지점에서 수습했다. 토기는 통일신라 8세기 유물로 확인. 1200년간은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동굴이다. 하와이 화산국립공원에도 용암동굴이 여러 개 있으나 규모나 상태, 접근성 면에서 제주도에 따라오지 못한다. 용암동굴은 총천연색의 ㅌ난산염 생성물이 동굴 바닥과 천장을 장식, 탄산염 침전물들이 용암벽에 벽화를 그린 듯 퍼져 있다.
• 하도리는 현재 가장 많은 해녀가 물질하고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에 기념탑도 있고 해녀박물관도 있다. 해녀는 제주의 상징이자 재ㅔ주의 정신이고 제주의 표상이다. 잠수할 때 수자는 물수자가 아니고 형수님 할 때의 수자로 존칭의 의미다. 물위로 솟아오를 때마다 ‘호오이’하면서 한꺼번에 막혔던 숨을 몰아쉴 때 소리를 숨비소리라 한다. 음정이 날카롭고 짙은 애상을 간직한 정 깊은 생명의 소리다.
• 세화리 갯갓할망당은 어부와 해녀를 전담하는 해산당이다. 만선을 기원하는 용왕님께 빌 때는 살밥, 삽채나물(고사리, 미나리, 콩나물) 한 보시기, 사과, 배 한 알, 구운 생선 한 마리, 무영실 타래, 감주 한 병, 양초 한 자루를 바친다. 그리고 지드럼을 하는데 지는 쌀알을 한지에 싼 다음 무명실로 빙빙 돌려 여민 것이다. 이때 온전한 쌀알을 골라넣는다. 손주 이름과 생년월이르 또박도박 써서 지드림한다.
어부들이 오색 깃발을 세워놓을 때도 있고 할망은 들어오고 나가는 배 모두에게 영험이 좋은 여신이다.
• 세화리에서 하도리는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다. 왼쪽은 우도를 배경으로 바다 풍광, 오른쪽은 설치미술 같은 밭담이, 앞쪽은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제주에 삼보가 있어 자연, 민속, 언어를 말할 때 그 자연 속에 오름, 용암동굴, 나무 들을 떠올리지만 기암괴석도 장관이다.
“아주머니 이 꽃 진달래요? 철쭉이에요?”
충청도-“진달랜디유.”
경상도- “진달래나 철쭉이나.”
제주도가 아니면 팔도 아줌마들을 어떻게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까?
• 백록담- 정지용도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아내”를 말한 그 허허로움이다. 새벽공기가 아직 차게 느껴지지만 육ㄹ지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신선한 공기에 절로 심호흡을 한 번 해본다. 수령 500년 노송, 구멍에 물이 고이지 않는 것은 제주 화산 지역의 한 특징이고 나무가 이쪽으로 향하는 것은 식물의 항일성 때문이지만 그것이 삼성혈 전설과 어울린다.
• 삼성헐
삼신인은 수렵생활을 하다 온평리 바닷가에 떨밀려온 나무궤ㅉ작 안에서 나온 세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 벼랑국 공주들이 발견된 해안을 황루알이라 하고, 나했는데 그것이 일도, 이도, 삼도의 내력이다. 삼신인과 결혼하여 낳은 자손이 제주 고씨, 제주 양씨, 제주 부씨다.
• 젲주의 심장, 관덕정
단층 팔자 지붕. 내부는 사방을 개방, 우물마루를 넓게 깔아 시원한 느낌, 활짝 날개를 핀 지붕선이 제법 웅장하면서 날렵함을 자랑하는데 처마를 받치려고 기둥 위에 얹은 새 부리 모양 장싱이 아름답다.
•오헌단-제주로유배온 287명 중 숭 받는 다섯 분을 모신 곳
•줄기에 잔가시가 많아 잘 찔리는 해당화의 별칭이 찔레꽃이다.
<빈산>
김지하
빈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안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파라
찌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즐도 몰라라
-작곡가 이종구 교수, 김민기 노래로 불려짐 -
CD도 없다. 아아 참으로 명곡인데.
• 추사에게 내려진 형벌은 “위리안치‘였다. 유배지의 가시 울타리 안에서만 기거하는 중형이다.
• 인성리 방사탑(거왁, 극대라고도 부른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어느 지형의 허한 곳을 비조한 탑이다. 탑 꼭대기엔 돌하르방이나 동자석처럼 생긴 석상, 또는 까마귀난 매 닮은 돌을 올린다. 까마귀와 매는 주로 돌로 만들지만 비자나무나 참나무처럼 비바람에 좀처럼 썩지 않는 단단한 나무로 만들기도 한다. 까마귀가 궂은 것을 모조리 쪼아 먹게 한다는 ㄸ듯으로. 탑 속에는 밤주걱이나 솥을 묻어두는데, 밥주걱을 묻는 이유는 솥의 밥을 글어 담듯 재물을 마을로 당마들이라는 뜻이고, 솥을 묻는 이유는 솥이 무서운 불도 끄떡없이 이겨내듯 마을 재난을 없애달라는 뜻
•모슬포는 모실이 모래의 한자어, 개는 갯가를 뜻함.
책명-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흥준.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