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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설산순례(2) – 소백산(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
1. 소백산 비로봉, 그 뒤는 국망봉
석름봉(石廩峰) 동쪽 몇 리 되는 거리에 자개봉(紫蓋峰)이 있고, 또 그 동쪽 몇 리에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오른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국망봉(國望峰)이다. 만일 청명한 날씨를 만나면 용문산(龍門山)으로부터 서울까지 바라
볼 수가 있는데, 이날은 산 안개와 바다의 운무(雲霧)가 자욱하게 끼어서 용문산도 바라볼 수 없었다. 오직 서남쪽
구름 사이로 월악산(月嶽山)이 희미하게 비칠 뿐이었다. 동쪽을 돌아보면 구름과 산이 천 겹 만 겹 첩첩으로 쌓여서
어렴풋이 상상만 되고 진면목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 것이 태백산(太白山)ㆍ청량산(淸凉山)ㆍ문수산(文殊山)ㆍ봉황
산(鳳凰山)이고, 남쪽으로 보였다 숨었다 하며 구름 속에 아스라한 것이 학가산(鶴駕山)ㆍ팔공산(八公山) 등 여러
산이며, 북쪽으로 형상을 감추고 자취를 숨기어 하늘 한쪽에 아득히 보이는 것이 오대산(五臺山)ㆍ치악산(雉岳山)
등 여러 산이었다.
――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
▶ 산행일시 : 2025년 2월 22일(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코스 : 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 갈림길,비로봉,천동탐방지원센터,천동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9.3km(이정표 거리 20.3km)
▶ 산행시간 : 7시간(09 : 35 ~ 16 : 35)
▶ 교 통 편 : 반더룽산악회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2번 출구 100m 앞 마을버스 승강장
07 : 31 – 치악휴게소( ~ 07 : 50)
09 : 35 – 죽령(689m), 산행시작
10 : 18 – 바람고개전망대
10 : 55 – 제2연화봉(1,324.0m), 휴식( ~ 11 : 05)
11 : 17 – 제2연화봉전망대
11 : 52 – 연화봉(蓮花峯, 1,376.9m), 비로봉 4.3km, 휴식( ~ 12 : 05),
12 : 45 – 제1연화봉(1,395.0m), 휴식( ~ 12 : 55)
13 : 43 – 천동갈림길, 비로봉 0.6km
14 : 00 – 비로봉(毗盧峯, △1,439.7m)
14 : 10 – 국망봉 갈림길(1,410m), 비로봉 0.4km
14 : 22 – 비로봉, 천동주차장 7km
14 : 57 – 천동쉼터, 휴식( ~ 15 : 13)
16 : 09 – 천동탐방지원센터
16 : 22 – 다리안폭포
16 : 35 – 천동주차장, 산행종료, 휴식( ~ 17 : 07)
18 : 37 – 덕평자연휴게소( ~ 18 : 47)
19 : 23 - 양재역
2. 소백산 지도(영진지도, 1/50,000)
예전에는 소백산을 가기로 죽령을 들머리로 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임도 7km
를 걷기가 퍽 지겨워서였다. 대개는 청량리역에서 열차 타고 희방사역(2020.12. 폐역되었다)으로 가서 연화봉부터
오르기도 하고, 안내산악회 버스가 비로사 입구로도 가서 곧바로 비로봉을 오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죽령이 대세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열차 타고 영주로 가서 택시나 버스 타고 희방사나 배점리 비로사 입구로 갈 수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 희방사로 가서 연화봉을 올라 모데미풀꽃과 홀아비바람꽃을 관상하고 비로봉을 오른 다음 국망봉
으로 가서 석륜암골과 초암사, 죽계구곡을 거쳐 배점리로 내리고 싶다.
우리 버스는 서울에서 죽령 오기를 3시간을 예상했는데 막힘없이 달려 30분 가까이 빠른 2시간 35분이 걸렸다.
그만큼 산행마감시간도 17시 10분으로 앞당겨졌다. 주어진 산행시간은 7시간 30분이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이 1960년 10월 삼척부사로 부임하는 길에 죽령을 넘었을까? 그가 본 죽령은
험난한 준령이었다. 그의 시 「죽령(竹嶺)」의 구절이다.
石棧盤回危且險 꼬불꼬불 바위 잔도(棧道) 위태롭고 험하여서
行行脅息頻側望 걸음마다 숨죽이고 자주 옆을 바라보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평지처럼 오른다. 고작 해발 689m이다.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콘크리트 포장한 임도 7km이다. 다른 때는 걷기 팍팍한 오르막이었지만 오늘은 사뭇 정취가
풍기는 눈길이다. 빙판이거나 천문대 오가는 차들로 다져져 여간 미끄럽지 않아 갓길 눈발자국 따라 또박또박 오른
다. 봄날에는 도랑 옆에 참꽃마리와 제비꽃, 선괭이눈이, 산비탈에는 처녀치마가 눈길을 사로잡던 이 길이다. 심심
한 발길은 40분 남짓 올라 바람고개전망대에서 잠시 파적한다. 미세먼지가 많아 원경은 흐릿하다. 눈비비고 다시
보니 일월산이다. 일월처럼 보인다.
이다음 파적할 데는 제2연화봉이다. 죽령에서 4.3km, 1시간 10분 거리다. 산상전망대 강우레이더관측소는 0.4km
이다. 거기까지 올랐다가 뒤돌아 와야 한다. 우리 일행 대부분은 산상전망대를 들르지 않고 간다. 나는 당연히 들른
다. 갈지자 크게 그리다 데크계단 오른다. 관측소 너른 마당을 그 가장자리로 동남서북 돌아 동남서북 경치를 둘러
본다. 연화봉 넘어 비로봉에 이르는 장릉이 장쾌하고, 죽령 건너편 도솔봉은 미륵보살 정토려니 다가가기 아득하게
보이고, 날 맑을 때 또렷이 보았던 두악산과 덕절산 그 너머 월악산은 캄캄하다.
온 길 뒤돌아 내리는 중에 헬기장 쪽으로 눈밭에 두어 사람 발자국이 났다. 따라간다. 헬기장 벗어나 수 미터 가파른
설사면을 내리면 연화봉 가는 임도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이다. 허우적거려 내린다. 산모퉁이에 임도 약간 벗어나
제2연화봉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보는 비로봉과 연화봉은 더욱 웅장하다. 비로봉에 이르는 쉼터 또는 전망대마다
행성들의 안내판이 있다. 여기는 토성(Saturn)이다.
“지구에서 12억 7천7백만km 떨어진 토성은 물보다 밀도가 낮은 행성으로 지상에서도 볼 수 있는 환상적인 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 고리는 수 cm ~ 수 m에 이르는 수많은 얼음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두께는 1km 정도로
매우 얕다. 이 고리는 15년을 주기로 지구에서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한다. 또한 토성의 고리와 고리 사이에는 좁은
틈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넓은 것이 ‘카시니의 틈’이다. 과학자들은 위성이 접근하다 부딪혀 고리가 만들어진 것
으로 추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시니(Cassini, Jean Dominique, 1625~1712)가 1675년에 최초로 토성의 고리에 있는 틈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틈은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카시니 틈(Cassini Division)’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 틈을
통해 카시니는 토성의 고리가 단단한 고체가 아니라, 수많은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추론했다고 한다.
1997년 8월 15일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타이탄 4 로켓에 실려 발사된 탐사선 카시니호는 우주에서
20년 가까운 임무를 마치고 토성 대기권에 진입하여 ‘그랜드 피날레(Grand Finale)’를 맞이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컬러 토성 사진은 모두 카시니호가 찍은 작품이라고 한다.
3. 멀리 가운데는 일월산
4. 왼쪽이 도솔봉, 맨 오른쪽 뒤는 흰봉산
5. 비로봉, 맨 왼쪽은 제1연화봉
6. 오른쪽 뒤는 원적산
7. 왼쪽이 도솔봉, 가운데는 삼형제봉, 맨 오른쪽 뒤는 흰봉산
8. 맨 왼쪽이 삼형제봉
9. 제2연화봉 서릉 1,293m봉
10. 앞 오른쪽은 연화봉
11. 비로봉, 왼쪽 뒤는 민봉
12. 연화봉
13. 제2연화봉 서릉 1,293m봉
14. 제2연화봉
15. 도솔봉
눈길 임도는 천문대 앞을 지나 좀 더 이어지고 계단 길게 돌아올라 연화봉이다.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인다. 북동쪽
하늘금으로 흐릿하지만 태백산과 문수봉을 짐작한다. 동쪽으로는 일월산이 아련하다. 칼바람이 분다. 연화봉 정상
표지석 뒤에 웅크리고 앉아 점심밥 먹는다. 탁주에 살얼음이 얼었다. 탁주를 씹어 먹는다. 이런 때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인증사진을 찍어달라는 등산객이 있다. 장갑을 벗어야 한다. 여러 포즈를 취한다. 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비로봉 가는 길(4.3km)은 연화봉부터 좁은 눈길이다. 지난날 울퉁불퉁하던 돌길이 눈으로 포장되었다. 잰걸음 하
기 좋다. 등로 주변의 이 광활한 설원이 봄날이면 모데미풀꽃과 홀아비바람꽃의 화원으로 변한다니 지금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서도 사스래나무를 본다. 지난주 태백산 문수봉에서 보고 알았기에 반갑다. 숲속에 들면 칼바
람이 건들지 않는다. 1,299.7m봉을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고 안부에 내려 깔딱고개 데크계단을 오른다. 길다.
계단마다 경점이다. 숨 가쁘면 뒤돌아 산 첩첩을 살핀다. 계단 중간의 전망대에서는 발걸음 멈추고 차근하니 원경까
지 살핀다. 고갯마루는 널찍한 공터다. 여러 사람들이 쉬고 있다. 나는 배낭 벗어놓고 제1연화봉 정상을 다니러간
다. 한 사람 묵은 발자국이 보인다. 그에 발맞춘다. 그나마 몇 미터 오르니 끊긴다. 눈이 높아 교목이 관목으로 변했
다. 엎드려 뚫는다. 그러니 눈 위를 기어가는 모양이다. 좁다란 바위 위에 올라 사방 둘러본다.
깔딱고개로 내리는 방금 내가 러셀한 눈길이 한층 수월하다. 무철 산행대장님이 컵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하다가
나를 보고 쉬어가시라며 술을 권한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 산에서 독주가 제격이라고 50도 고량주를 뜨거운 물로
칵테일 해준다. 아닌 게 아니라 내떨리던 몸이 금방 훈훈해진다. 더하여 발걸음이 한층 용감해진다. 봉봉을 넘어 ┫
자 천동갈림길 안부다. 비로봉 0.6km. 칼바람이 마음껏 횡행하는 황량한 벌판에 올라선다.
비로봉은 많은 사람들이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 있다. 둘러보는 사방은 여전히 미세먼지가 심하게 끼어 있다.
그래도 민봉에서 국망봉, 연화봉을 넘어 도솔봉에 이르는 소백주릉은 장중하다.
흔히 태백산과 소백산을 일컬어 이백(二白)이라고 한다. 태백을 두고서 소백이라고 한다.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의 「급재에 대한 기문(岌齋記)」에서도 이점은 분명하다.
“급산(岌山)은 순흥(順興)의 옛 이름이다. 순흥이 소백산을 등지고 있으니, 급산은 혹시 소백산의 별칭이 아닐까?
글자의 의미로 보자면 작은 산[小山]이 큰 산[大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급(岌)이라고 한다. 소백산이 참으로 높기
는 하지만 태백산에는 미치지 못하니 소백산을 ‘급산’이라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盖岌山興古號也。
興負小白山。或是小白之一名耶。字義小山不及大山曰岌。小白儘高矣。猶不及太白。謂之岌不亦宜乎。)
(한국고전번역원 | 이규필 (역) | 2018)
16. 멀리 가운데는 문수봉(?), 그 왼쪽은 태백산
17. 맨 오른쪽이 비로봉
18. 연화봉 정상 표지석, 멀리 가운데는 일월산
19. 멀리 가운데는 일월산
20. 희끗희끗한 나무는 사스래나무, 이 설원이 봄날이면 홀아비바람꽃 화원이다
21. 왼쪽이 제2연화봉, 오른쪽은 제2연화봉 서릉 1,293m봉
22. 멀리 가운데는 일월산, 그 앞 맨 오른쪽은 묘적봉
23. 비로봉
24. 왼쪽은 연화봉, 그 뒤는 도솔봉
25. 멀리 가운데는 일월산, 그 앞 맨 오른쪽은 묘적봉
26. 뒤쪽은 민봉과 신선봉
27. 소백주릉, 뒤가 비로봉
28. 가운데가 슬음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대의 소백산 등산기를 찾아보았다. 영주 출신의 향토사학자인 유계 송지향(幽溪 宋志香,
1918~2004)의 「小白山探勝記」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조선일보 풍기지국을 운영하면서 동 탐승기를 조선일보에
6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다음은 그중 1940.7.10.자 탐승기이다.
“밀림 속으로 길도 업는 비탈을 오르고 또 오르니 하눌이 안 보이도록 꽉 들어섯던 숩이 약간 성글어지며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 절정이 올려다 보이고 비로봉 북맥을 타고 넘은 민백령(閔百嶺)의 등넝쿨 더핀 살립 속 샛길이 나
타난다. 이 샛길을 조차 한 언덕을 올러서니 한 일정가량 되엄즉한 사방으로 석축을 돌려싸흔 평탄한 풀밧이 잇는데
욱어진 풀쿨숩 속에 깨어진 개와장이 발끗에 재인다. 바로 이 뒤 고개가 민백령인데 고개 일홈이 민씨(閔氏) 백명이
피난할 곳이라 하여 오륙십년전 명성황후가 백여간이나 되는 큰 집을 세웟던 것이라는데 이십여년전에 화재로 타버
리고 말엇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이름하여 대궐터라고 일러 온다.”
“(…)해발(扼拔) 일천칠백여메 돌의 비로봉 우에 오르니 키를 잴 듯한 새강 바더요 듬성하게 몃 백년이나 모진 풍상
에 찌도른 듯한 교목(喬木)이 서 잇는데 한 특이한 기관은 교목이 밋둥은 아름이 넘지만은 키는 그중 높은 놈이라야
한길이 남줏한데 꼭댁에 만 가지가 쫙 발여서서 마치 그 형상이 우산을 펴들은 듯하다. 이윽고 눈을 들어 둘러보니
하게의 대소 여러 산은 눈 아래 내려다보인다. 북편 산기슥에 가로 비낀 세 봉은 그림자가 매우 운치 잇게 보인다.”
이대로 하산하기는 어쩐지 좀 서운하다. 민봉과 신선봉, 국망봉을 더 가까이 보고 싶다. 민백이재(유계 송지향이
위 글에서 말하는 ‘민백령’이다)를 지나 국망봉 갈림길인 1,410m봉까지 가기로 한다. 거기까지 0.4km이다. 서풍이
세차게 불어댄다. 멀티스카프로 귀때기를 싸맸지만 불감당이다. 소백산 비로봉의 세찬 바람은 예로부터 악명을
떨쳤다. 1927.5.23.자 조선일보의 ‘小白山麓에 大旋風亂 十九名又復 慘死’라는 제하의 기사다.
“영주군 단산면 소백산록(小白山麓)에 대선풍(大旋風)이 일어나 즉사삼명(卽死三名) 행방불명삼명(行方不明三名)
이라 함은 당시 본보에 보도한 바와 갓거니와 (…) 소백산중(小白山中)에서도 폭풍과 우박으로 인하야 산에 올라
갓든 세 명은 급히 나려오다가 도중에서 바람에 날려 즉사(卽死)하엿는바 방금 주소 씨명을 됴사하는 중이라는데
궁벽한 산중에서 일어난 참극이기 때문에 (…)”
국망봉 갈림길인 1,410m봉에서 목책 넘어 그 끄트머리에서 바라보는 국망봉 연봉은 ‘아름답다’라고밖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비로봉을 오르고 서둘러 천동을 향한다. 숲속에 들어 칼바람을 피하니 살 것 같다. 줄곧 내리
막이다. 완만한 너른 눈길 슬랩이다. 쭉쭉 내린다. 군데군데 소백산이 자랑하는 식물생태안내판을 들여다본다. 사스
래나무도 있고 소백산 깃대종이라는 모데미풀이 빠지지 않는다. 모데미풀은 연화봉과 비로봉에 자생한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위치는 알려주지 않는다.
천동쉼터 지나고 등로는 평지나 다름없다. 낙엽송 숲길에 이어 이정표의 신선암을 지난다. 신선암이 대체 어디인가
아무리 가늠해도 모르겠다. 천동탐방지원센터 지나고 다리안 연성전단대 아래 다리안폭포를 들른다. 나는 여태
‘다리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안내판에 “이 폭포가 위치한 지역으로 들어오려면 입구 골짜기에 놓여
있었던 구름다리를 건너야만 했다고 하여 다리안폭포(橋內瀑布)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라고 한다. ‘다리안’이 ‘다리
안’이다!
확성기 소리가 조금은 쓸쓸한 다리안관광지 지나 천동주차장에 내려선다. 60일 후쯤 될까? 그때 모데미풀꽃을 보려
고 또 와야지 다짐하며 버스에 오른다.
29. 설원 너머 비로봉
30. 멀리 가운데는 일월산, 그 앞 맨 오른쪽은 묘적봉
31. 멀리는 묘적봉과 도솔봉, 그 앞은 연화봉
32. 비로봉
33. 비로봉 사면
34. 비로봉 서쪽 사면
35. 비로봉
36. 비로봉 정상
37. 소백주릉
38. 국망봉
39. 왼쪽은 신선봉, 오른쪽은 국망봉
41. 국망봉
42. 다리안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