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인, 선율을 품다
사막에도 노래가 있을까.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물결 같은 주름이 생긴다. 황량한 땅에도 누군가의 사랑이 머물렀을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며 밤새 등불을 밝혀 둔 여인도 있었으리라.
황혼이 내려앉은 사막의 천막 아래, 한 여인이 악기를 품고 앉아 있다. 검은 베일 사이로 갈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이국적인 문양이 수놓인 옷자락에는 금빛 햇살이 번진다. 그녀가 품에 안은 것은 우드라는 현악기다. 둥근 몸통에 세월을 담은 듯한 악기가 여인의 손끝을 기다린다. 여인은 조용히 현을 어루만진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는 음악은 아닌 듯하다.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 보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곱다. 그러나 그 미소 안쪽에는 말로 다하지 못한 사연 하나쯤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악기가 있다. 누군가는 그림으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삶을 연주한다. 나에게는 글이 그런 악기인지도 모르겠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종이 위에서는 비로소 제 목소리를 찾는다. 기쁨도 슬픔도 한 줄의 문장이 되어 마음을 두드린다. 젊은 날에는 인생이 아름다운 노래로만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살아 보니 높은음도 낮은음도 있었다. 때로는 현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었고, 아무리 손끝에 힘을 주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침묵의 시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인생의 연주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끊어진 현을 다시 잇고 흐트러진 음을 고르며 살아왔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깊이가 생겼고, 기다림이 머문 자리에는 너그러움이 남았다. 젊은 날의 음악이 화려한 기교였다면 지금의 음악은 한 음을 오래 붙잡을 줄 아는 여유다. 나는 여인의 미소에서 그런 세월을 읽는다. 악기를 품은 모습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처럼 다정하다. 어쩌면 사람은 평생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 하나를 그렇게 품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막은 척박하지만 그곳에도 꽃이 핀다. 오랜 가뭄을 견딘 씨앗이 한 번의 비를 만나 꽃망울을 터뜨리듯, 사람의 마음에도 늦게 피어나는 꽃이 있다. 젊은 날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이 황혼에 이르러 다시 싹을 틔우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여인은 여전히 악기를 연주한다. 햇살은 기울고 천막 안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누군가 그녀의 연주를 듣고 있을까. 아니면 오직 자신을 위해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깨닫는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는 남에게 박수를 받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이라는 것을.
나 역시 오래된 마음의 악기 하나를 품고 산다. 어떤 날은 슬픔의 현을, 어떤 날은 기쁨의 현을 건드린다. 서툰 음이 흘러나와도 괜찮다. 내가 지나온 길에서 얻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하나의 악기다. 사랑을 만나면 사랑의 소리를 내고, 이별을 만나면 이별의 소리를 낸다. 숱한 계절을 지나며 조금씩 자기만의 음색을 얻는다.
사막의 밤이 깊어간다. 여인은 마지막 현을 조용히 튕긴다. 낮고 부드러운 울림이 저녁 공기 속으로 번져 나간다. 바람은 다시 불어오고 모래는 또 다른 무늬를 그릴 것이다. 사막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한 여인이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노래를, 바람이 대신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