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 미워 미워』(정풍송 작사/작곡)는 1981년 「조용필」의 3집
정규 앨범 타이틀 곡으로 벌써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용필」은 두 번의 결혼을 했으나 자녀는 없습니다.
그는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중, 보컬이 갑자기 군 입대를 하게
되어 대타(代打)로 노래를 한 것이 가수로서의 시작 이었다고 하며,
1975년 '연예인 대마초 파동'으로 활동 정지를 당하게 됩니다.
이 시절, 팬으로 출발하여 연인(戀人)으로 발전한 사이가 그의 첫
부인인 '박지숙' 입니다. '박지숙'은 당시 3선 국회의원의 따님으로
집안에서는 가수와의 결혼을 엄청나게 반대하였죠.
그러나, 둘은 비밀 결혼처럼 산사(山寺)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교적이지도, 다정다감 하지 못했던 「조용필」의 성격과 함께,
인기 가수로서의 바쁜 스케쥴은 '박지숙' 을 힘들게 했습니다.
'박지숙' 은 "당신은 나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며
그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고통의 절규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박지숙' 은 1986년 한 차례의 음독 자살 미수 사건을 거쳐
1988년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 몇 년 후 「조용필」은 자신의
행동들이 얼마나 부인을 힘들게 했는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부인은 재미교포 사업가 '안진현' 이었습니다. 미국 공연
에서 누나의 소개로 만났는데, 동갑내기 '안진현' 의 순종적인
모습에 반해 6개월의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했습니다.
둘 다 재혼이었고, '안진현' 은 첫 결혼에서 자녀가 있었으나, 이혼
당시 전 남편이 양육 하기로 하였습니다. 「조용필」과 '안진현' 은
결혼할 때 나이도 45세로 많은 편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충실하기
위해 자녀를 갖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둘은 너무 도 사랑했고 서로 의지하며 지냈습니다. 「조용필」도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맡겨둘 정도로 신뢰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했던 '안진현'이 약 48억 원의 유산을 남기고
심장병으로 2003년 사망하고 맙니다.
아내의 죽음 앞에 「조용필」 은 "내가 유산을 남겨두고 먼저 죽
어야 하는데..." 하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후 「조용필」은 아내의
유산에 자신의 재산을 더하여 심장병 어린이 돕기 등 자선 활동을
널리 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조용필」은 스스로가 인정하듯 목소리가 미성(美聲)이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하기에 적합하지 못한 단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랬기에 더욱 노력하였고, 평생을 음악이라는
한 우물만 파고 살았습니다.
데뷔 50년을 넘긴 지금도 매일 몇 시간 씩 연습하는 것으로 유명
합니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음악을 더 파고 또 파고 했습니다.
또한 아이들도 좋아할 노래를 만들기 위해, 최신의 음악 흐름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음악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을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일과가 되었습니다.
<인천 아이러브색소폰클럽 대표 윤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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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떨어져 바람결에 뒹굴고
내 마음도 갈 곳 잃어 낙엽 따라 헤매네
잊으라는 그 한마디 남기고 가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미워 미워 미워
잊으라면 잊지요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 것 못 잊을까 봐
이슬 비가 내리네 소리 없이 내리네
님을 잃은 내 가슴을 하염 없이 적시네
잊으라는 그 한마디 남기고 갈 바엔
사랑한다 왜 그랬나요 미워 미워 미워
잊으라면 잊지요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 것 못 잊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