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6:1-7절) 보혜사 성령 옛날 어머니 중에서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분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군(軍)에 간 아들이 편지를 보내면, 그 편지를 읽지 못해서 동네에서 공부한 사람을 찾아가서 편지를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주로 목사님이라든지, 이웃집에서 대학을 나온 이들을 찾아가서 편지를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편지를 읽어주면,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식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이들이 없으면, 아무리 자식이 편지를 보내어도 어머니는 자식의 소식을 알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됩니다.
만약 옆집에 사는 건달(乾達)이 편지를 엉터리로 읽어주면, 어머니는 아들이 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상당했거나, 아픈 줄 알고, 태산같이 걱정하게 됩니다.
음악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樂譜)를 읽을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악을 하는 이들 중에서도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이 하는 것을 보고, 흉내 내어서 연주(演奏)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곡을 자기 혼자 힘으로 연주(演奏)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보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해낼 수 있지만,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절대로 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기는 보아만, 실제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귀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고, 생각은 수도 없이 하지만,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현재(現在)를 다 알고 계셨으며,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으며, 모든 미래(未來)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경(聖經)을 다 알고 계셨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셨고, 귀신(鬼神)들린 자들을 다 고치셨으며, 지금 되고 있거나,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까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한평생 불들 수 있는 기둥이었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은 기둥뿌리가 뽑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만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붙잡으면, 모든 병(病)이 다 나을 것이며, 병(病)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언제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비밀(祕密) 무기(武器) 중의 비밀(祕密) 무기(武器)인 “보혜사(保惠師)”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안에 새 기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안 계셔도 계실 때 이상으로 유익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Ⅰ.인간의 완전한 무지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나. 소원은 신(神)의 경지까지 올라가든지, 아니면 신(神)과 만나는 자리까지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너무나도 불안전(不安全)하고, 유치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위치(位置)에 오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즉 사람들이 정치(政治)해서 권력(勸力)을 가지려는 이유는 권력(勸力)을 손에 쥐기만 하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무슨 죄명(罪名)이라도 걸어서 감옥(監獄)에 집어 넣어버리고, 대기업(大企業) 회장(會長)도 조사를 해서 감옥(監獄)에 집어넣어서 고생을 시키고, 높은 자리 사람들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임명하고, 엄청난 세금(稅金)을 거두어서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뛰어난 운동선수(運動選手)들이 한 명씩 있는데, 축구 천재가 되니까 일 년에 몇 백억 씩 벌고, 야구선수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그룹 가수인 BTS는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세계 최고의 행복과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의 생명은 아주 짧습니다.
조금만 더 나이 들면, 더 이상 뛸 수 없고, 가수들은 조금 만 더 나이 들면,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권력자(權力者)들은 아무리 권력을 오래 붙들고 싶어도 곧 다른 권력자들이 권력을 쥐게 되고, 그때는 가택 연금되든지, 감옥(監獄)에 가든지,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富者)도 인생의 최고로 행복할 때, 이들은 이미 늙어서 치매(癡呆)가 오고, 중풍(中風)이 와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평생을 일하는 재미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일찌감치 종교(宗敎)에 귀의(歸依)하는데, 종교(宗敎)도 권력(勸力)이고, 돈이고, 인기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농(歸農)하면 조용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원래 거기에 사는 토막이 들과의 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완전히 따돌림(왕따)이 되는 것입니다.
귀농(歸農)하면, 현지(現地)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노인(老人)은 그것을 하지 못해서 따돌림(왕따)당하다가 자기 밭에 올 물을 막았다고 해서 이웃을 총으로 쏘아서 살인(殺人)을 저질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아는 것이나, 현재 우리의 처지(處地)를 올바로 아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미래(未來)에 대하여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1절)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실족한다.”는 것은“실망한다.”혹은“넘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무식(無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宗敎的)인 타이틀(title)이나, 세상적인 감투(敢鬪)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갈릴리의 가난한 출신이었고, 어부(漁夫)였고, 농부(農夫)였고, 세리(稅吏)였고, 장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말할 처지가 되지 못했고, 권력(勸力)이 있고, 유능(有能)한 사람들이 이렇게 가야한다고 하면, 가야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은 변(變)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을 받고, 난후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길이 아닌 길을 꾸역꾸역 가고 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끝까지 우기고 있고, 불법(不法)을 마음대로 저지르고 있는 것을 보고서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무식(無識)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이런 지식인(知識人)들이 말도 안 되는 것을 믿으며, 그런 길로 꾸역꾸역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무식(無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눈으로 보게 되었고, 귀로 듣게 되었고, 정신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가장 유식(有識)한 사람들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정치인(政治人)들이나, 지식인(知識人)들이 나와서 대담(對談)하는 것을 보면, 서로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 “상식이 없다”고 합니다. 즉 서로 하는 말이“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눈이 있어서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귀가 있어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머리가 있어서 생각은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2절)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다행스럽게도 유대 사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회였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은 유대 사회와는 적어도 말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종교적(宗敎的)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머리에는 죽은 의식(儀式)과 교리(敎理)와 사상(思想)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종교(宗敎)라고 하면, 의식(儀式)을 생각하고, 교리(敎理)를 생각하고, 행사(行事)나, 사업(事業)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교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교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교리(敎理)와 조금만 맞지 않으면, 좇아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교에서 다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식과 맞지 않으면 채찍질하고 때리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유대교에 의해서 채찍질 당했고, 돌에 맞아 죽었고, 온갖 박해를 다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무지(無知)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 가야 그 무지(無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16:3절)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가는 길은 오직 아들을 아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들을 믿으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상(思想)이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같게 생기지도 않았고, 거기에는 무슨 대단한 학식(學識)이나, 업적(業績)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들을 무시(無視)해서 죽였습니다. 그 대신 많은 지식(智識)을 쌓았고, 권력(勸力)을 모았으며, 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막혀있었기 때문입니다.
Ⅱ.제자들의 이유기 요즘은 어린아이들을 키울 때, 어려서부터 이유식(離乳食)을 먹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젖을 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엄마 젖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 젖을 떼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기 젖을 떼려고 하면, 젖꼭지에 고추장을 바르고, 아기들이 싫어하는 것을 발라서 떼게 하려고 하는데, 아기들의 입장에서는 양식이 빼앗기는 것이니까 울면서 그것을 닦아 내고. 끝까지 엄마 젖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젖을 뗄 때,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젖을 먹으면 안 되고, 밥을 먹고, 다른 음식(陰識)을 먹어야 튼튼해질 수 있습니다.
또 자녀들이 자라서 군대(軍隊)에 입대(入隊)하거나, 대학(大學)을 졸업하고 직장(直腸)을 다니게 되면, 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자녀들이 집에 있을 때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즉 머리도 기르고, 컴퓨터 게임도 마음대로하고,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었습니다.
그러나 군대(軍隊)에 입대(入隊)하게 되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대에서 주는 밥을 먹어야 하며, 훈련(訓練)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군대(軍隊)밖에는 나갈 수 없습니다. 그때 빨간 8각 모자를 쓴 교관(敎官)이 얼마나 무섭고, 장교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쥐어 터지고 하면, 집이 생각나서 자연히 울게 됩니다.
또 청년들이 대학(大學)을 다닐 때는 대학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보호가 됩니다. 교수(敎授)들도 학생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직장(直腸)에 가면, 일체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윗사람은 일을 잘 못 한다고, 사정없이 야단을 치고, 거래처(去來處)에 가면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립니다. 이런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까지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온갖 사랑을 다 받았고 온갖 좋은 가르침을 다 배웠습니다. 아무리 유대 지도자들이 공격을 해도 예수님이 다 방어(防禦)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젖을 뗄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만 이 세상에 남게 되는데,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이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0:16절)..내가 너희를 보냄은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것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만 남겨 두고 떠나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양(羊)들이 어떻게 이리떼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근심(根尋)이 가득했습니다. 즉 제자들은“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 망했고,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 우리는 예수님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16:5-6절)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제자들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돈도 없고, 권력(勸力)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나마 세상적인 타이틀(title)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지만, 제자들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든 제자들의 마음에는 근심(根尋)이 가득했습니다. 이 모습은 요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미국(美國)이나, 중국(中國)같은 강대국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핵무기(核武器)도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국제적(國際的)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까지 어려운 이유는 없었는데, 정치(政治)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감당할 것이라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전쟁(戰爭)의 왕(王)입니다. 예수님은 싸우는데 있어서는 아무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략(謀略)의 왕(王)이요, 전략(戰略)의 왕(王)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돕는데,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드디어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16:7절)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이것은 엄청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두고 떠나시는 것은 제자들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유익(有益)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시므로 엄청난 분이 우리 모두 안에 오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하나님의 비밀(祕密) 무기(武器) 중의 비밀(祕密) 무기(武器)인 보혜사(保惠師)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Ⅲ.보혜사 성령이 오심 성령님은 여러 가지 비유(比喩)로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즉 비둘기나, 물로도 비유되고, 불로도 비유되고, 기름으로도 비유(比喩)됩니다. 또 성령님은 생수로도 비유되고, 지혜(智惠)로도 나타나고, 능력으로도 나타나고, 생명으로도 나타납니다.
성령님에게 분명한 것은 삼위(三位)하나님 중의 한 분이신데, 굉장히 특이하신 분입니다. 즉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부(聖父)는 우리 안에 오실 수 없고, 우리가 볼 수도 없습니다. 또 성자(聖子)는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육성(肉聲)으로 전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성자는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혈루증(血漏症)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성령(聖靈)하나님은 내 안에 오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냥은 못 오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罪)를 대신해서 죽으셔야 하고, 우리가 의인(義人)으로 인정(認定)을 받아야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성령(聖靈)을 물로 마시듯이 마시게 됩니다. 성령을 비둘기로 비유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곧장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무전기(無電機)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戰爭)을 하면서 소식(消息)을 전하려면,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비둘기는 정확하게 자기 부대에 가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식을 정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은 불이시기 때문에 불순(不純)한 것을 모두 다 태워서 녹여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마귀(魔鬼)의 불을 꺼버리는 일을 하십니다.
또 성령은 물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을 씻으십니다. 또 성령은 생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목마른 가슴을 시원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불, 음란의 불, 자살의 불, 동성애의 불, 성추행의 불을 끄는 일을 합니다.
또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 구교(舊敎)는 성경을 라틴어로 기록해서 사제(司祭)가 아니면, 읽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이 번역(飜譯)되어서 누구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片紙)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면역성(免疫性)을 주어서 암이나, 병(病)을 이기게 만듭니다. 암은 결국 면역성(免疫性)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면역성(免疫性)이 생기면, 암을 억제해서 없어지게 합니다.
또 성령은 우리의 눈을 열어서 우리 자신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눈을 열어서 시대를 보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우리가 다 겪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망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지금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고, 자유를 배우고 있고 법치주의를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배우고 있습니다. 즉 대형 교회가 무너지고 있고, 비난받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거쳐야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면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방공호에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이 방송만 들으면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쓸데없는 공상(空想)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사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우리는 죄와 유혹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전쟁(戰爭)의 왕(王)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우 실 것입니다. 가장 강(强)하신 왕(王)께서 우리의 미래(未來)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사탄(詐誕)이 마음껏 날뛰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눈먼 맹인(盲人)이 아닙니다. 우리는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언제나 통화(通話)하거나, 문자 연락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과거보다 엄청 성숙(成熟)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게으르지 말고, 멋있게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교만(驕慢), 거만(倨僈), 오만(傲慢), 할 때, 만(慢)자는 게으를 만(慢)자입니다. 성경 딛1:12절)...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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