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故 양무웅 원장 |
양무웅 전 옥천문화원장(중앙양국 약사)이 향년 75세로 24일 별세했다.
대학 졸업 후 23살 고향에 정착한 이후부터 약사의 본업 외에 지역일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활동해 온 양무웅 전 원장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옥천문화원(원장 김승룡), 옥천군 새마을회(회장 강정옥), 옥천군장애인협회(회장 육동일)에도 각각 500만원을 기탁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양무웅 전 원장은 24일 오후 4시55분께 대전 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웅 전 원장의 별세 소식을 들은 옥천문화원은 24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옥천문화원장으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27일 오전 8시10분에 영결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안장식은 27일 오후 2시 군북면 이평리 봉안당에서 치러질 계획이다.
■ 38세에 문화원장, 중봉충렬제 시작도 양무웅 원장은 23세에 고향에 내려와 중앙약국을 운영하며 교통대 상우회를 조직하고 관성우표회, 옥천JC회장, 옥천중학교 총동창회 조직, 중앙어린이집 개설, BBS지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38세에 옥천문화원장으로 취임해 6년을 재직하며 도내 세 번째 문화제인 중봉충렬제를 처음 만들어 지역 문화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새마을협의회 회장으로 대학유치추진위원장을 맡아 도립대학이 들어오는 데 상당부분 기여했고 내고장 학교보내기 운동, 교육발전협의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말년에는 사비를 들여 마성산 등산로를 개설해 주민들에게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오랜 지인으로 알려진 옥천예총 안후영 전 회장은 "지역의 원로로 옥천을 지키다가 이순의 나이에도 투병생활을 잘 이겨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유고 소식을 접해 가슴이 미어진다"며 "지역 많은 분들의 건강 하나하나를 그리도 살뜰이 챙겨주시던 양무웅 원장이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옥천군 장애인협회 육동일 회장은 "돌아가시면서까지 지역의 소외된 사람들에 관심을 기울여줘 참 고맙다"며 "돌아가신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옥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주호 양무웅 원장 추모사 사랑하고 존경하는 양무웅 원장님! 우리 친구들과 당신을 좋아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어찌하라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까? 옥천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하늘로 가기엔 너무도 아쉬운 일흔다섯의 나이지만, 성취한 많은 봉사활동과 문화 사업들이 100세 이상의 삶과 같은 업적입니다. 양 씨 가문과 중앙약국과 교통대상우회와 옥천을 함께 사랑하고 아름다운 고장을 만들어가고 있던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옥천은 어쩌라고, 혼자 돌아오지 못할 먼 여행길을 가셨나이까? 주호 양무웅!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아무리 찾아도 이 땅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우리의 맏형과도 같은 원장님! 우리 모두에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안타까운 마음 가눌 길이 없어 이렇게 글로나마 추모의 마음을 대신합니다. 약국 개업 50년 동안,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원로로, 옥천을 지키다가, 이순의 나이에 병마와 9년간 의지의 투병생활을 잘 이겨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유고 소식을 접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 친구와 함께 등산하고 식사도 하고 친교 하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더는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없으며 그 카랑카랑한 음성을 들을 수 없다니, 너무나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집니다. 평소에 강직하고 자상하고 인자한 성품인 당신은 너무나 건강하였기에, 우리는 모두 굳건하게 일어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군요. 서울 가서 중앙대 약학대학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약국을 개설한 시절은 1965년 23세의 젊은 청년의 나이였습니다. 지역에서 악착같이 부만 축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봉사활동과 문화 사업을 차근차근 시작하였습니다. 관성우표회, 약사회장, 옥천걸인자활단을 만들어 많은 지원을 하였고, 옥천JC를 조직하고, 청초회와 옥천중학교 총동창회를 조직하고, 용촌에 중앙농원, 중앙어린이집 개설, BBS 지부장, 교통대상우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옥천의 문화와 지역발전을 위해서 38세의 젊은 나이에 옥천문화원장으로 12년을 재직하면서 충북에서 세 번째 문화축제인 중봉충렬제를 처음으로 만들어 지역의 문화발전과 화합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옥천JC회장으로, 새마을협의회 회장으로, 대학유치추진위원장, 내 고장 학교보내기운동을 추진하였으며, 교육발전협의회장 등 많은 사회단체의 회장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옥천의 마당발로 철인과 같은 열정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만년에는 동마성산 “꿈의 등산로” 개설에 많은 경비와 열정을 쏟아서 지역주민과 전국 등산객들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농가의 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살기 좋은 고장이 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사회봉사활동 못지않게 슬하에 8남매 모두 사회의 당당한 일꾼으로 잘 키워서 자랑스러운 아버지 역할을 잘하였습니다. 이제는 병마의 고통과 아픔이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서 진정한 평안과 참된 안식을 누리소서! 사랑하는 친구여 꽃길 하늘길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당신을 먼저 보내고 애통해하는 그토록 믿고 사랑하던 천사 같은 아내와 가족들에게 하나님과 부처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하시길 우리 모두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당신이 떠난 빈자리를 우리가 함께 따르며 채워나가겠습니다. 옥천지역의 많은 분들의 건강 하나하나를 그리도 살뜰이 챙겨주시던 내 사랑하는 친구, 입지전적인 옥천의 인물 양무웅 원장님! 영면하시옵소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5월 27일 친구대표 안 후 영 올림 |
첫댓글 옥천의 큰 별을 잃으셨군요.
상심이 크시겠어요.
다시 올수 없는 이 길을 우리도 가고 있네요....ㅜ
가신님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에서 부디 평온하소서...!!
고맙습니다.은혜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