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나의 삶에도?
생성형 AI(인공지능)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그것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끼칠 영향에 대한 많은 예측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작업을 자동화해서 노동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세계경제포럼(WEF)은 2027년까지 1,4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로봇에 의해 많은 일자리가 대체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했습니다. 이 두 주장은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AI가 지배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예측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공통된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AI의 영향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또 다른 생각은 고도의 전문지식이나 창의력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 육체노동이나 전통적 사무직부터 일자리 위협을 받으리라는 예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상과 다른 양상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면서 AI 시대에 살아남을 영역으로 꼽히던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예술과 창작 분야에서조차 AI가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AI 기술을 개발해낸 IT 기술자들이 다른 분야 노동자들보다 먼저 퇴출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첨단 기업들에서 다른 어떤 직무보다 기술 노동자들을 많이 해고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예측을 크게 벗어났고, 전혀 뜻밖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AI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했던 나도 최근 AI가 성큼성큼 나의 삶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음을 느낀 두 가지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중 첫 번째 경험은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지도했던 여름 방학 특강 때였습니다. 수강생들에게 비평적 에세이를 쓸 때 참조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의 주제, 인물, 대사 등을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 논제를 제시한 뒤 이미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비평적 에세이를 현장에서 작성하여 제출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영어로 쓰는 에세이였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전체 글의 구조나 논지, 논리성 등 에세이 전반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어색하거나 잘못된 영어 표현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어야 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30여 명의 에세이 피드백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AI의 능력을 한번 시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미삼아 한 학생의 영어 에세이를 복사해서 붙인 뒤 Open AI에게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AI가 수정한 문장이 내가 수정한 문장보다 월등히 뛰어난 게 아니겠어요? 심지어 유료 가입을 하지 않은 터라 무료 서비스를 이용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순간 심정이 복잡했습니다. 우선 학생들 자신이 직접 AI에게 수정 요청하면 되는데, 내가 과연 영어 에세이 쓰기를 지도하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AI를 잘 이용하면 더 좋은 지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결국 내가 했던 수정에 AI의 더 좋은 의견을 더해 30여 명의 피드백을 새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AI의 도움을 받아 피드백을 해주는 것에 대해 윤리적 갈등이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AI가 나보다 훨씬 잘 고친 것을 알면서도 그걸 무시하고 나의 부족한 의견을 학생들에게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이 경험을 통해 내 업무 중 일정 부분은 AI가 대체할 수 있겠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고, AI를 잘 활용하면 나의 지도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그다음 경험은 학교 교과 과정의 개편입니다. 통역과 번역 분야는 AI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대표적인 직무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제 AI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해 그 위험성은 배가되었습니다. 따라서 기존 수업 방식으로는 이런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도태될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이미 다른 학교들은 발 빠르게 교과 과정을 개편하여 ‘번역과 테크놀로지’ 같은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이런 강좌는 이제 번역 작업은 순순히 번역가의 수고가 아니라 기계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인정한 셈입니다.
우리 학교도 이런 시대 변화에 발맞춰 교과 과정을 개편하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교육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여 여러 선생님들과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세미나에서도 현재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두 가지 태도가 존재했습니다. 우선 많은 선생님들이 향후 우리 학교에서 배출하는 번역가라는 존재가 원전을 멋진 우리말로 생성해내는 제2의 창조자가 아니라
기계가 번역한 것을 수정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는가 하는 자괴감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반면 일부 테크놀로지 친화적인 선생님들은 똑같은 상황을 기계의 실수와 한계를 잡아낼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양측의 의견 차이는 같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만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허둥지둥 교과 과정을 개편해야 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보다 AI가 너무 빠르게 내 삶에 침투해서 다소 서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향후 학생들을 지도할 때나, 번역 작업을 할 때 기계와 얼마나 역할을 나누게 될지, 또 그렇게 작업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윤리적 갈등을 느낄지. AI가 이토록 빨리 내 삶에 들어오다니, 놀랍고 혼란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