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자매결연 고아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인도에서 나온 후 10년 동안 자매결연을 맺은 고아들과 편모나 편부 슬하의 아동들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후원자들에게 10여 년 동안 똑 같은 사진을 보여주며 기도 덕분에 잘 지낸다는 인사로 얼버무렸지만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았다. 책임자인 사람이 급하고 힘들 때는 날마다 파발을 보내다가도 조금 형편이 좋아지면 금새 잊어버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자매결연 프로젝트를 그만둘 생각을 여러 번 하였다. 특별히 뿌렘담고아원이 그러하였다.
만 10년 만에 뿌렘담을 찾아 가는 마음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였다.
공항에 많은 아이들이 나왔지만 나는 예약을 한 숙소로 와서 흔들리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긴 세월이었는지 많은 변화가 한 눈에 보였다.
들어가는 길 양쪽에 번듯한 주택가가 형성되었고 길이 안쪽으로 쭉 뻗어서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뿌렘담은 그 마을에서 한 구역을 넓게 차지한 사회복지센터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길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진 정면에 직업훈련원이 3층 건물로 당당하게 서있고 그 우측 대문 안에는 본체인 뿌렘담 고아원이 예전대로 있었다. 정면 건물 앞뜰 우편에는 노인요양원과 사무실이 2층 건물로 나란히 서있었다. 요양원 뒤쪽에는 부속 초등학교가 있었고 길 건너편에는 병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그리 눈에 띠지 않았던 입구의 님트리가 거목으로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쉬는 것이었다.
10년 사이에 120명의 아이들을 다른 고아원에 빼앗긴 아픔과 2년 동안의 지난한 재판과 4년에 걸린 아이들의 복귀, 힌두들의 방해와 탄압 그리고 코로나팬데믹으로 인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뿌렘담은 명랑하게 건재하고 있었다. 스타학교에서 아이들 50여명을 한 자리에서 만났으나 10년 전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10년 이라는 세월이 아이들을 고아원에서 세상으로 밀어낸 것이다. 그 때 그 아이들은 청년이 되어 고아원 밖으로 나가서 독립된 생활을 하며 대학교에 다니거나 취업해서 일하거나 결혼하였다는 말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고맙게도 간호사가 되어 일하는 뿌남이 나를 보려고 휴가를 내서 찾아 왔다. 구르가온에서 온 마누와 저녁 시간에 학교에서 돌아온 굴나즈를 만난 것으로 위로를 받았다. 세 명의 아이들이 다 건강하고 명랑하고 단단해 보였다. 다른 힌두 고아원으로 붙잡혀 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해진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하고 뿌렘담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고아원에서 나가게 될 때까지 훈계나 야단을 친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하였다. 이제 그들이 고아원 후원자가 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에 감사를 드렸다.
10년 만의 방문은 풍성한 열매에 대한 이야기로 하늘 기쁨이 넘쳐흘렀다. 나는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자매결연 아동들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매씨 원장님께 간단한 보고서를 만들어 줄 것을 청하였다.
다음은 보고서는 10년 동안 소식을 제대로 주고받지 못한 채 우리가 자매결연으로 지원하였던 아동들의 현주소이다. 아이들은 뛰어나거나 눈부시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성실하게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10년 동안 묵묵히 후원해주신 후원자님들에게 개별로 인사를 드리기 전에 기쁜 소식을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정리하였다. 그 동안 제대로 보고를 드리지 못했던 죄송한 마음이 이제야 편안해졌다.
할렐루야!
후원자님들과 청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자비가 충만하길 빈다.
1) 상기따 : 그는 김아름 님의 후원을 받았다. 부모님이 나환자이다. 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바로 뉴델리에서 가까운 신도시 구르가온에 있는 회사 취업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고아원에서 독립하여 혼자 생활하고 있으며 결혼을 준비하는 중이다.
2) 아니따 : 그는 권낙현 님의 후원을 받았다. 나환자의 자녀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뉴델리에서 가까운 신도시 구르가온에 있는 회사에서 몇 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인근의 호스텔에서 숙식하고 있다.
3) 루시 : 그는 김부한, 김정인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델리에 있는 신발 전문매장에서 취업하였다. 그는 매장의 매니저를 꿈꾸고 있다.
4) 사리카 : 그는 김조아 님의 후원을 받았다.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는 올 4월에 전문대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자신의 전공대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하고자 한다. 그는 고아원에서 독립하였으며 학교 호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5) 잔위 : 그는 이동연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컴퓨터 트레이닝 센터에서 2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그는 델리 망골르뿌리에 있는 전기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뿌렘담에 함께 위탁받은 친 언니 가리마와 함께 집을 얻어서 살고 있다.
6) 라니 : 그는 권우재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정신장애자의 자녀로 태어났다. 현재 스타학교의 6학년에 적을 두고 있으며 델리의 직업훈련원에서 기술 훈련도 함께 받고 있다. 그는 기술 훈련원 호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7) 나글라쉬미 : 쉴만한 물가교회 고영숙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나환자의 자녀이다. 그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중매로 결혼하였고 남편을 따라서 안드라푸라데쉬로 이주해서 잘 살고 있다.
8) 굴라즈 : 문혁주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났다. 현재 에버그린 고등학교 9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교사의 꿈을 꾸고 있다. 아직도 뿌렘담의 보호를 받고 있다.
9) 죠띠 : 오현주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사고무친한 고아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였다. 고아원에서 독립을 한 후에 첸나이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며 자기 사업의 꿈을 꾸고 있다.
10) 마누 : 선교사 공동 후원을 받았다. 정신박약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하리야나 구르가온에 있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곳 대학교에서 취업하였다. 하리야나 호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치열하게 공부하였고 대학교 재학 시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11) 니띠쉬 : 강은혜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고아이다. 경찰들이 길거리에 버려진 갓 난 아기를 발견하여 고아원에 데려 왔다. 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뉴델리 할디람스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성실하며 자립 의지가 강하다.
12) 디뿌 : 이해학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고아이다. 경찰이 거리에 버려진 어린 아이의 부모님을 찾지 못해서 고아원에 데려 왔다. 그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뉴델리 할디람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취업과 함께 독립하였으며 니띠쉬와 함께 호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13) 라훌 : 이순희, 감상연 님께서 후원하였다. 나환자의 자녀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쇼핑몰에서 일하며 자신의 숍을 가지는 꿈을 꾸고 있다.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인정을 받고 있다.
14) 난디니 : 하름교회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나환자의 자녀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였고 현재 학교 행정실 접수처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고아원에서 나와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15) 세크라즈 : 하름교회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현재 난드나그리에서 일하며 어머니를 만나서 함께 살고 있다.
16) 키란 : 하름교회의 후원을 받았다. 나환자 자녀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훈련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현재 전기제품 판매 및 시공사에서 일하고 있다.
17) 빠반 : 그는 선교사 공동 후원을 받았다. 그는 정신박약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현재 전문대학교 졸업반으로 졸업 준비와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누나와 함께 구르가온에서 함께 살고 있다.
18) 뿌남 : 하름교회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정신박약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간호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현재 구르가온의 종합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한다. 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다.
19) 쁘라샨뜨 : 김성겸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간에 어머니를 만났고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였고 취업해서 어머니를 돕고 있다.
20) 리테쉬 : 권태현 님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초등학교 취학 이전에 경찰에 이끌려 고아원에 왔다. 9년 동안 고아원에서 우리와 함께 지냈다. 우리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의 이름으로 계속 그의 가족들을 추적하였고 마침내 부모님을 찾았다.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상 20명 아이들이 10여 년 동안 자매결연으로 우리의 기도와 관심 속에 있었다.
처음 우리가 자매결연을 시작할 당시 아이들이 10~15세 정도였으나 지금은 모두가 20세 중초반의 청년들로 성장하였다. 이런 식으로 5,6년 세월이 지나면 모두 다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계급차별과 천대, 무관심과 소외가 일상화 된 인도사회에서 그릇된 길로 나가지 않고 고등학교나 직업훈련원, 전문대학교나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아이들이 귀천을 가리지 않고 자기에게 적합한 직장을 찾아서 성실하게 일하며 자립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고아들을 자신의 자녀처럼 먹이고 입히며 사랑으로 지도한 매씨 목사의 수고와 헌신의 열매가 풍성하고 아름다워서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괘씸죄도 자연스레 풀렸다.
부모님의 사랑의 보살핌을 받아도 잘못된 길로 나가기 쉬운 세태 속에서 아이들에게 건강한 신앙과 자기를 책임지는 자립정신을 고취시켜 준 매씨 원장과 직원들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졌다. 무엇보다 불우한 상황과 불편한 환경에서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넙죽 엎드려서 큰 절을 하고 싶었다. 아! 아! 우리 아동들이 고아원에서 살면서 한 명도 실족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늘의 기적이요, 은혜요, 축복이다. 성령님께서 우리 아동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지켜주신 것이리라.
할렐루야!
우리의 자매결연 후원금 5만원은 그리 큰돈이 아니다. 그 돈이 없어서 죽거나 망할 사람은 한국에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 돈이 인도에 건너가면 고아들과 불우한 아동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작은 돈에 담긴 큰 사랑과 기도가 그들을 받쳐 주며 크고 작은 위험과 유혹에서 구해냈을 것이다.
1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한 채 깜깜이 후원을 계속 해주신 교회들과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할렐루야!
고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돌리며 아이들이 결혼하여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간절히 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군가의 후원자가 되어 선한 이웃으로 세상을 따스하게 품으며 인도를 밝히는 작은 빛이 되길 축원한다.
2024년 3월 16일 축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