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63/200112]어느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100일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막역한 친구가 11일(토) 오후 잘 아는 고교후배가 완주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큰 도움은 안되겠지만 세몰이勢 차원에서도 가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주일 전 같은 당의 예비후보가 같은 장소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는데, 3000여명이 왔다는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절대로 질 수 없지’ 팔 걷고나서는 것은 결국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이 아니던가. 실제론 지역구 유권자도 아니건만. 서울에서도 내려오는 성의가 ‘괘씸’하여 가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런 행사에 가고 싶지 않았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운봉에 사는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하니, 동문들이 기氣를 몰아주어야 한다며 무조건 오케이다.
넓은 운동장이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신했다. 아,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이런 거구나 싶었다. 더구나 ‘도당道黨위원장’이라던가, 현역의 프리미엄도 상당히 있었으리라. 그러니 원내대표까지 달려와 축사를 했을 터. 출판기념회가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급조’하다시피 하여 만든 책 한 권을 받으려, 말 그대로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었다. 학교 강당 정문에서 ‘독자讀者들’을 맞이하는 ‘금배지’와 눈인사, 악수를 하려고 적어도 200∼300여명이 행사 1시간 전부터 줄을 서 있는 게 아닌가. 내 체질로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이지만, 이왕 힘을 실려주려고 온 것, 한참을 기다리다 악수를 했다. “6회 누구요. 열심히 잘 하시오” 면식面識도 거의 없는 후배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 친구는 14회라고 했다. 그러니까, 해 넘어 56세가 아닌가. 정말 좋은 나이다.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더구나 그 사람 자체가 ‘1인입법기관’인 ‘권력權力’의 소유자가 아닌가. 4년 동안 ‘맛’을 본 정치의 세계에 어찌 발을 뺄 수 있으랴. 완주-무주-진안-장수가 지역구인 초선 의원. 행사 후 어느 신문에서는 4000명이 운집雲集했다고 썼던데, 정치는 어쩌면 ‘이런 맛’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진정한 정치인이 되려면 가장 먼저 하늘이 두쪽나도 흔들리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뚜렷한 정치철학政治哲學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순진한가? 순진하다고 말하지 마라. 시간만 있다면 초년병 정치후배와 이런 주제로 담론談論을 나누고 싶다. ‘그래, 모르는 넘보다 학교후배가 하는 게 더 낫겠지’ 하다가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은 ‘백성(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한, 정치인의 자격이 없을뿐더러, 정치의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얘기는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보시라. 내 금쪽같은 자식이 아무 죄없이 ‘살해’를 당했다고 생각해보자. 선박 사고로 죽은 게 아니고, 충분히 구출할 수 있었는데도 죽도록 방치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묻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거대한 역사적 거짓말(Historic lie)들의 진실이 ‘싹 다’ 청천백일 아래 드러났으면 좋겠다. 네 살짜리 손자도 말했다. “할아버지, 헬로 카봇 제트크루저를 인터넷으로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석의 말대로, 우리의 정치가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은 결코 진실을 감출 수 없다는 진리를 알게 하라. 최근 방영된 TV 드라마 ‘보좌관’을 보셨으리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법무부장관(김갑수 분)의 허울을 악착같이 벗겨내는 보좌관 출신의 초선 의원. 왕년에 김홍신이 지은 ‘인간시장’의 ‘장총찬’만큼의 분노와 행동 실천은 못할망정, 어영구영하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정치 모리배謀利輩들이 무릇 기하인가. 한 나라 대통령후보가 되어 대권大權을 다투었던 한 정치인은 오로지 금배지를 위한 일념으로 10여년 동안 자기와 인연이 있던 후배정치인의 ‘자리’를 유권자의 힘으로 빼앗았다던가. 난 그래서 정치가 싫다. 가짜정치이다.
김대중-노무현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던, ‘오직 돈만을 벌려고’(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듯하다) 대통령이 된 어느 정치인은 지금도 억울하다며 법정에서 필리버스터처럼 3시간여 하소연했다던가. 망할 놈의 보석保釋이라는 제도는 무엇인가. 그 뒤를 이은 ‘독재자의 딸’은 아무 생각없이 청와대 주인(안주인이 되었으면 나라를 위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이 되어, 시정잡배 어느 아주머니의 말만 맹신했다던가. 그 아줌마 역시 엄청난 음모와 모함이라며 옥중에서 자서전을 쓰고 있다던가. 처음에는 구구한 변명, 나중에는 함구緘口로 일관하는 ‘우아한 공주’같던 우리의 여자대통령은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서 지금도 유유자적하며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고 있을까. 아지 못게라. 그분의 석방을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주말마다 광화문광장 등 서울 도심을 휘젓고 다니는 저 무리들은 또 무엇인가. 어느 미치광이 목사는 ‘광화문광장’을 ‘이승만광장’이라고 해야 한다며 자기를 감옥에 가두면 ‘하느님이 나쁜 놈’이라는 막말을 지껄이고 있다. 하느님을 욕하는 그넘이 성직자일까.
아아, 구천에 계신 DJ 선생님이여! 우리의 눈물대통령, 바보대통령이여! 응답하시라. 당신들이 꿈꾸었던 정치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래도 되는 것인지? 지역감정地域感情으로 망할 뻔한 나라가 이제 해방된 지 70년만에 이념理念으로 갈라질대로 갈라져버린, 이 현실이 대체 말이 되는가? 이건 숫제 ‘막걸리’인 것을. 그 추운 겨울에 여의도광장에 모인 백만 군중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당신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질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가? 끝끝내 “민주주의의 승리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신념을 믿고 가셨는가? 부디 응답해 주시라. 빨갱이나라, 주사파공화국, 정권을 북조선에 갖다바치는 현 대통령이 되레 탄핵되어야 한다고 미친 듯이 주장하는 저들은 누구인가. 같은 민족, 같은 동포일 것인가. 나는 도저히 아지 못한다.
아니다. 한 초선의원의 출판기념회를 다녀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재밌는 일화를 이야기하자. 줄을 서있는데, 뒤에서 자꾸 ‘전라여고’라는 말이 들려 되돌아봤다. 아니, 전라여고는 우리 친구들이 만든 가상의 여자고등학교로서, 우리 동창들과 같이 사는 옆지기 부인들의 출신 고등학교를 ‘싹 다’ 전라여고로 통칭한 용어가 아니었던가. 하여 물었다. “진짜 전라여고를 나오셨어요?” 한 아주머니,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한다. “남편이 전라고를 나와서 우리도 ‘전라여고’라고 하는 거예요”. 아하-그렇구나. 우리만 썼던 교명校名이 아니었구나. 대한민국에 이런 여고가 있을까? 재밌다. 웃음이 나왔다. 역시 동문同門의 힘은 제법 막강했다. 여기도 전라고, 저기도 전라고. 서울에서 재경동문회 임원들이 한 차로 내려와 악수를 하고 다닌다. 우리때 ‘깡패학교’로 소문났던, 전설傳說의 1회 선배 10여명의 백발모습도 보인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몸소 걸음을 했나보다. 아니, 후배가 아니래도 정치를 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몇 페이지 떠들어봤다. 진안 동향면 능금리 출신이다. 그렇다면 그 마을에서 곧 국무총리로 등극할 국회의장 출신의 ‘거물’ 정치인 정세균씨와 같은 마을? 초등학교 동문이다. 그 마을이야말로 행정명을 바꿔야 하리라. 진안군 개천면 용출리. 개천에서 용들이 났구나. 가난해 학교를 무려 3년이나 늦게 다닌 정세균씨는 호를 ‘진촌鎭村(진안촌놈)’이라고 했다. 바라건대, 대통령을 잘 보필하시라. 안의원은 대학시절 우상호라는 정치인과 학생운동을 같이 했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은 ‘도농상생都農相生에 관한 철학과 실천에 있어 뜻을 같이 하는 믿는 동지’라며 추천사를 보탰다. 무엇보다 지역구 주민들의 여론이 중요할진대, 한 주민은 무슨무슨 대책위 천막이나 회의장에서 자주 만나 얘기를 했다는데, 어찌나 자주 방문하여 악수를 나눴던지 ‘손의 촉감’이 기억될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 됐다. 그가 2010년 전주 시내버스들이 파업으로 멈춰섰을 때 변호사로 동분서주하며 이런 문제를 해결해고자 ‘여의도 입성入城’을 처음으로 꿈꾸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됐다! 제발 적선하고, 낯 모르는 후배님이여! 초심初心을 잊지 마시라. 초심을 잃으면 허수아비(우리 방언은 허새비)에 불과한 것임을 명심하시라.
그대가 펴낸 <살만한, 그렇게 사랑할만한>이라는 책 제목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랑할만한 세상,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그대를 비롯한 우리의 책무責務인 것을. 건승을 빈다.
첫댓글 여기 찢어지게 가난했던 두 사람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은 상고 졸업 후 사법고시(60명 선발할 때) 패스 후 판사-> 변호사가 되어 원하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돈을 뒤로 하고 (억울한 사람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그 가치관은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의 통치철학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사시 선발인원: 60명- 100명- 120명- 300명(전두환)- 1,000명(김영삼))
다른 한 사람은 상고 졸업 후 서울로 유학을 와서 대학까지 졸업한 것을 보면 노무현보다 부자였던 것 같다.
그는 졸업 후 時運도 함께하여 승승장구 으마 으마~한 돈을 벌고 대통령 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개인의 富에 집착했다.
그에게는 포스코도 자기 지갑으로 보였고, 4대강도 자기 지갑으로 보였다.
그의 통치철학은 '대한민국은 개인회사, 대통령은 사장'이었다.
둘 다 어려운 환경이었고, 둘 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두 사람의 가치관, 철학은 정 반대였다.
나는 그것을 先七後三 즉 그들의 타고난 본질(유전자, DNA, 씨앗(種子))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종자라는 것은 환경에 따라 수확량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환경과 교육에 따라서 콩이 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뒤 최순실(박근혜)은 통치철학 자체가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