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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배낭 여행 2편
- 중동 및 남유럽
세계일주 배낭여행의 첫 여행지인 아프리카는 초기인류의 발상지이며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이 펼쳐져 있어 감동 그 자체였지만 2개월 동안 드넓은 대지에서 텐트생활을 하고 킬리만자로의 정상 등정은 나그네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였다.
이제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세계 2대 종교를 탄생시킨 중동을 향하여 떠난다. 초기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는 길목이기도 하고, 현재는 많은 나라가 전쟁과 갈등으로 피로 얼룩진 곳으로 역사와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1. 이집트
나일강변
카이로 공항에서 나와 동양인 몇 명에게는 여권을 압수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란다. 3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설명하여 주지 않다가 보내 준다. 은근히 동양 여행객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 여행사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냥 통과시키던데...
9월 이집트 카이로의 낮 시간은 숨 막힐듯한 더위와 거리를 메운 여행객으로 정신이 없다.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가득한 거리를 돌아 다녔다. 숙소에 들어 와서 TV를 켜니 공영방송에서 우리나라 연속극 대장금이 나온다. 너무 반갑다. 외로움에 지친 마음이 풀린다.
첫날 저녁은 나일강 유람선을 타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강변에는 세계 유수 호텔이 즐비하고 네온사인이 화려하다. 배안에서는 이집트의 전통 춤과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다. 여행이후 처음으로 가져 보는 휴식과 평화다.
나일강변에 우뚝 서 있는 기자 피라밋과 스핑크스를 낙타를 타고 돌아보았다. 석회암으로 쌓아 올리고 겉면을 화강암으로 마무리한 이 거대한 작품 앞에서 토목을 전공한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피라미드 건설에 대한 비밀이 많이 밝혀져 있지만 나는 4,500년 전의 이 곳 날씨가 많이 궁금하다. 푹푹 빠지는 모래는 걷기도 힘든데 이런 더위 속에서 어떻게 이런 대역사를 할 수 있었을까? 당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왕과 국민을 설득 하고 추진하였을까?
물론 현재 기상학자들은 그 당시에는 남북 지축이 달라 지금보다 더 좋은 기후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일강 대삼각주가 아무리 비옥하여도 유휴 노동력이 충분 하였을까? 고대 이집트 왕조는 어떻게 주민을 설득하였을까? 종교의 힘인가? 의문의 꼬리가 꼬리를 문다. 어째든 대단한 인류 발자취를 남겼다.
카이로 박물관은 유물이 빼곡히 차 있어서 비좁아 보인다. 그 많은 유물 중 투탕카멘실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내 눈으로 보아도 그 당시의 디자인은 지금 어느 명품 시장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4,000년 전 고대인의 예술 감각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집트 가이드가 뒤에서 묻는다. 너희나라에도 이런 박물관이 있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우리나라도 훌륭한 박물관이 있고, 우리 역사도 5,000년 정도 된다고 대답하였더니 여기보다 못 할 것이라며 피식 웃는다.
우리나라 7~8,000년 전의 고대사를 들쳐 내며 싸우고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각 나라의 문명이나 문화를 갖고 우위를 다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고유한 문명과 문화는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여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카이로에는 예수가 어린 시절 피난하여 살았다는 거리와 교회가 있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이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평화스럽게 잘 지내고 있어 의외다. 카이로 언덕 위에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가 있다. 이 이슬람 사원 내부의 기하학 문향과 스테인드글라스는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시내 큰 건물 높은 곳에 거대한 시계가 있다. 유럽 한 국가와 오벨리스크를 바꾸었다는 시계인데 멈추어 서 있다. 너무 구식이라 고칠 수 없단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친구들 찬란한 고대 이집트왕국을 건설한 후손들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스완댐이 있고 거기에 필레신전(이시스신전)과 아부심벨신전을 볼 수 있다. 아스완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있던 신전들을 강 위로 옮겨 놓았다. 이시스는 이집트의 대지 여신인데 신전 앞에는 강 수위를 측정하는 돌기둥이 있다. 농사를 중요시 하던 이집트인에게는 나일강 수위를 측정하는 중요한 신전이었을 것 같다.
룩소르에는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이 있고 왕가의무덤 계곡이 있다. 룩소르 신전에는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돌기둥이 줄을 지어 서 있고, 각 기둥에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빼곡히 쓰여 있다. 글자들을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왕가의무덤은 많이 도굴되어 볼 것이 없다지만 각 무덤마다 많은 글씨와 그림이 인상적이고 색이 선명하다. 사후 세계를 그린 그림에서 동양과 서양의 사후 세계관이 비슷한 면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시나이반도
무전 배낭여행객의 쉼터로 유명한 후루가다와 다합으로 향하였다. 시나이 반도 내륙은 풀도 보기 어려운 척박한 사막지대이고 마을은 홍해바다 연안을 따라 주로 형성되어 있다. 덜컹거리고 창문도 깨진 시외버스를 타고 후루가다에 도착했다. 춥고 힘들다.
후루가다는 홍해바다에서 스쿠바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여기에 한국인 처녀자매가 운영하는 다이빙 샾을 들렀다. 태국에서 다이빙을 배우고 여기까지 왔단다. 다이빙후 샤워실에 갔더니 물이 안 나온다. 이 도시에는 상수도가 없고 매일 물탱크로 물을 날러 주는데 요즈음 가뭄이 들어 물이 말랐단다. 어이쿠~~ 이 큰 도시의 도시계획국장은 뭐 하시나?
홍해바다는 다른 바다와 달리 염도가 높아 부력이 크고 프랑크톤이 적어 물이 맑다. 또한 해양생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고 실하다. 우리나라 바다와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다이빙을 하던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다합에도 한국인 처녀가 근무하는 다이빙 샾이 있다. 역시 한국 여인들의 생활력은 대단하다. 여기서 배낭여행을 하는 우리나라 처녀 총각들을 많이 만났다. 유럽 언어연수 후에 들른 친구들, 방학 중에 여행 나온 대학생, 회사를 몇 년 다니다가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잠깐 여행 나온 젊은이 등등
우리 젊은 시절에는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88올림픽 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었다. 나는 운 좋게도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한 덕에 80년 중반에 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유럽에서는 한국에서 왔다면 대부분 물어 온다. ‘그 나라는 어디에 있어요?’ 그러면 서투른 영어로 ‘China와 Japan의 .....‘ 하며 열심히 설명하여 줬었다. 지금은 한국에 대하여 모르는 세계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가끔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여행 중에 만난 우리나라 처녀 총각들을 보면 일본 젊은이보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행동 하여 보기 좋다. 가끔 미국 젊은이들은 본인이 미국인이라고 밝히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 아마도 당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에 대하여 세계인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같다.
나의 생각으로는 세계 여행의 적기는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직장 생활도 조금하여 세상에 대하여 눈이 띄었을 때 해외로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내 여행도 제대로 다녀 보지 못 한 젊은이가 무작정 해외로 나와 고생만하고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귀국하는 젊은이를 보면 안타깝다.
젊은 시절 여행하면서 철없이 보았던 세상을 나이가 들어 오륙십대에 다시 보면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보고 느낄 수 있겠고 또한 자신의 변화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여행을 적극 권한다. 분명한 여행의 목적을 세우고 필수 여비만 갖고 세상 사람들과 많이 부딪혀 보라고 한다.
경이로운 자연을 감상하거나 혹독한 자연 환경을 경험하거나,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헤매고 다니거나 이해가 안가는 종교를 관조하다 보면 종종 새로운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행사를 따라 다니며 넉넉한 돈을 갖고 편안한 여행을 하면 얻는 것이 별로 없다.
다합에서 세계일주 2년을 계획하고 온 고등학교 후배 부부를 만났다. 나의 이력을 알고 있던 후배가 처음에는 피하였지만 제수씨가 은근히 남편이 후배라고 말해 준다. 허긴 이런 오지에서 14년 선배를 만나는 것이 부담되겠지...
이 젊은 부부는 유럽여행을 2개월 마치고 이집트에 왔단다. 정보와 교통이 편한 곳에서 이집트에 왔으니 많이 불편하고 힘든가 보다. 나는 힘든 아프리카 여행을 마친 후라 여기는 거의 낙원 수준인데. 여행 일정을 짤 때는 힘든 곳에서 시작하여 편한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2. 요르단
몇몇 한국 젊은이들과 요르단을 갔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평생지기가 되는 것이다. 한의사2명, 사법고시를 보고 여행 왔다가 귀국후 합격 통지를 받았다는 대학생, 발레리나를 꿈꾸는 처녀 등. 이들은 아직도 종종 만난다.
요르단에서 이집트인과 우연히 택시를 같이 탔는데 이런 저런 애기를 걸어온다. 이곳은 이집트인이 지배하고 있고 요르단인들은 사막에 산단다. 또한 자기가 알기로는 한국에 이집트인이 100만명이 살고 있고 주요 요직을 맡고 있단다. 으잉! 이건 무슨 소리지?
일부 이집트인들은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에 와서 고대 문명을 보고 경탄을 하는 것을 보고 이집트가 세계의 중심이고 우월 민족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무역업을 한다는 친구가 세상 물정에 이렇게 어둡다니...쯧쯧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탄 차는 거의 한국산 차들이었고, 큰 건물에 들어가면 삼성 평판TV가 대부분이고, 건물 뒷벽은 LG 에어컨 냉각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허긴 리조트에서 종업원이 LG TV를 보고 일본산이라며 우리에게 자랑을 하길래 웃어 주었다.
요르단의 명물은 과연 페트라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소개되어 더욱 유명하게 된 곳으로 도시 입구는 길고 좁은 계곡으로 감추어져 있고 도시 주위는 절벽과 산으로 싸여 있어 천혜의 요새다. 신전과 집들은 광장 주위 붉은 절벽을 파서 만들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과거 중동의 무역 중심지로 대단히 크고 멋진 도시였음을 짐작케 한다. 당시 이곳은 기후가 좋아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농업과 무역이 번성하여 살기 좋았을 텐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된 것을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3. 시리아
시리아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반미 국가로 상당히 호전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국경비자 신청도 까다롭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여행자는 국경에서 방문비자를 받을 수 없단다.
그러나 수도 다마스커스를 가보면 사람들은 아주 평화스럽고 친절하다. 옛부터 풍요로운 지역이어서 그런지 시장 인심이 좋다. 또한 유럽, 중동, 이집트의 관문으로 고대 문명이 싹 터서 고대 유물이 많다.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고 시리아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놀란다. 국제 언론을 지배하는 유태인들이 얄밉다.
시리아인들은 대통령과 팔레스타인 종교 지도자의 사진을 택시 안이나 집에 같이 걸어 놓는다. 국민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는 아주 적극적이어서 정치인들이 외교하기가 힘들겠다. 사실 정부는 외교상 미국과 잘 지내고 싶지만 국민 정서는 아니란다.
다마스커스의 왕궁과 모스크(이슬람 사원) 주위에 큰 시장이 있다. 싱싱한 과일과 각 나라의 기념품, 양탄자 등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고 싸다. 돈 없는 여행객들에게는 최상의 지역이다.
4. 레바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유럽인의 휴양지로 일찍이 개방되어 여자들의 복장은 자유스럽다. 도시는 17년간의 내전에 철저히 파괴 되었지만 지금은 거의 복원이 되어 복고풍의 멋스러운 건물이 들어 서 있다.
일주일 전에 이스라엘 미사일이 날라 와 여러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데 시내에는 밤 늦게까지 젊은이들이 멋진 드레스를 입고 술을 마신다. 국경에서 미사일 공방을 하여도 여기 시민들은 전쟁 불감증이 되었나 보다.
레바논에는 발백(Baalbek)신전이 있다.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 있는 로마유적으로 제우스 신전에 남아 있는 몇 개의 기둥을 봐도 이 사원의 크기에 기가 질린다. 옆에 거의 원형이 남아 있는 박하우스 신전 크기도 예사롭지 않다.
일찍이 콘크리트 기법을 개발하여 거대한 기단을 만들고 돌을 깎아 쌓아 올렸다. 돌기둥을 쌓아 올린 실력도 대단하고 거대한 돌 지붕을 어떻게 올렸는지 궁금하다. 고구려 산성이나 석굴암을 보면 우리 민족도 돌을 아주 잘 다루는 민족인데 이 곳 사람도 예사롭지 않다.
5. 이스라엘
이스라엘 국경 통과는 사뭇 살벌하다. 무장한 군인들이 질문도 많이 하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가족 관계 직업 등등 다른 나라 국경 비자에서 받지 못했던 조사를 받았다. 2주전 레바논과 미사일 포격전으로 비상상태인가 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이다. 솔로몬왕 시대에 지었다가 지금은 기단만 남았다는 통곡의 벽이 있고, 바로 옆에는 마호메트가 승천하였다는 황금돔 모스크가 있고, 시내 언덕에는 예수가 부활했다는 곳에 교회가 있다.
통곡의 벽은 특이한 랍비 복장을 한 유대인들이 벽을 보고 신들린 듯 기도를 하고 있었고 주위에는 기관단총을 멘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남녀가 기도하는 장소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고,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 키파를 쓰고 들어가야 한단다.
황금돔 모스크는 벽면과 바닥을 청도자기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금 500kg로 돔을 덮어 아름답다. 내부는 이슬람교인이 아니면 들어 갈 수 없단다. 아랍 경비원들은 맨손으로 경비를 서고 있다. 물어 보니 이슬람교인들은 무기소지 허가를 안 해 준단다. 무장한 이스라엘군은 감시를 하는 건지 경비를 서주는 건지 알 수 없다.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골고다 언덕에 큰 교회가 서 있고 많은 사람들이 매일 예배를 드린다. 그리이스정교회, 로마카톨릭, 루마니아정교회, 아루메니아정교회 등 여러 그리스도교단들이 연합하여 교회를 지키고 있다.
마침 로마카톨릭에서 온 한국인 신부를 반갑게 만났다. 이런 저런 설명을 듣다가 한 청년이 질문 했다. 여기에 목사님은 안 계세요? 신부님 대답은 ‘신교는 이단이야 여기에 올 수가 없지’ ‘........’
이 구도자(?)의 눈에는 그리스도교의 구약은 유대교 경전의 일부이고, 이슬람교 코란은 유대교 경전을 기초로 만들었다는데..., 즉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형제들인데 서로 인정하지 않고 미워하며 살인까지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유럽과 중동의 역사에 종교는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기도 했지만 엄청난 파괴와 갈등을 초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서로 종교를 물어 보는 것이 실례라고 하겠지. 내가 아는 한 동양 역사에서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없어서 다행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유대인의 설 명절을 보았다. 아랍계 거리는 북적거리고 유대인 거리는 한산하다. 며칠후 이슬람 라마단이 시작한다. 이때는 해만 지면 아랍계 거리는 썰렁하다. 다들 밥 먹으러 가기 때문이다.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교인들은 낮시간에 밥을 먹지 않는다.
저녁시간에 랍비 복장을 한 남자가 어깨에 기관단총을 메고 멋진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 비상상태 중이어서 총을 휴대 했는지? 밤거리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우스꽝스럽다.
아랍계 사람은 이스라엘 땅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 몇몇 장소는 높은 장벽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출입시 엄격한 검열을 받는다. 베들레햄도 출입이 까다롭다. 아랍계 청년이 검문 중 큰소리를 치니 어디선가 군인들이 나타나 총을 장전 한다.
이천년 전의 땅 소유권을 주장하는 유대인들도 문제가 있지만 팔레스타인들도 반성할 점이 많다. 팔레스타인들은 2차세계대전후 유대인들에게 자기 땅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외지인들에게 돈만 보고 땅을 쉽게 팔아 버린 것도 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을 거다.
사해바다의 엄청난 부력을 직접 느껴 보고 2,000년 전 유대인 최후 요새였던 마사다를 방문하였다. 로마군을 상대로 3년동안 항전하다가 전원이 자결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꼭 방문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6. 터어키
터어키는 관광 대국이다. 도시를 연결하는 버스터미널은 웬만한 작은 나라 비행기 터미널 수준이고 대형버스는 고급 벤츠이다. 버스 출발과 동시에 남자 승무원이 물휴지를 갖다 주며 손에 향수를 뿌려 준다. 탑승시간이 길면 중간에는 간식도 준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고생한 생각을 하면 천국에 온 기분이다.
특이한 지형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를 방문하였다. 삿갓 모양의 머리를 갖고 있는 돌기둥과 그 돌기둥 하단을 파서 만든 동굴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거주 한다. 새벽에 일어나 바깥을 나가 보니 열기구 50대 정도가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아무리 비싸도 꼭 타고 싶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오른 열기구는 특이하고 멋진 돌기둥사이를 요리 조리 잘 다닌다. 좌우 조정성이 없는 기구로 이렇게 운전을 잘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20년 경력의 파일롯트 비행 실력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침 햇살을 받은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외계에 온 듯 환상적이다.
카흐타에 있는 넵루트산(2,150m)에 올랐다. 2,100년 전 콘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쿠스1세의 묘가 산 정상에 있다. 자갈로 거대한 피라밋 형상으로 쌓아 올리고 주위에 신상을 세웠다. 이 높은 곳에서도 피라밋 형상을 보다니 기가 막힌다.
자갈로 묘를 만들면 도굴이 어렵단다. 아랫단을 파면 위에서 계속 자갈이 무너져 내려 터널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없다. 인가는 1,000m 아래에 있다. 그러면 이 많은 자갈을 어떻게 이 정상까지 갖고 올라 왔지? 머리가 복잡하다...
에페수스는 터키 서쪽 해안에 있는 해안 도시로 로마의 유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대극장, 도서관, 황제분수대 아테나 신전 등등. 고대 로마나 그리스 유적을 보려면 터키나 레바논을 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천년동안 동로마시대의 수도이며, 600년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 도착하였다. 마주 보고 있는 아이야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인상적이다. 쌍둥이처럼 비슷하지만 나이는 1,000년 차이가 난다. 소피아 성당은 AD537년 동로마 시절 교회로 재건 되었고 블루 모스크는 1557년 오스만제국이 이스람 사원으로 지워 졌다.
중동을 다니다 보면 그리스도교에 의한 파괴 현장을 많이 볼 수 있다. 오히려 이슬람교의 파괴 현장은 드문 편이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들어서면서 소피아 성당은 수난을 당했다. 성당 내부 벽면의 그리스도교의 그림을 회로 칠해 없애 버리고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덧칠한 회를 벗겨내 아름다운 모자이크 그림들이 살아나고 있다.
구시가지에 로마시대 물탱크가 있다 하여 들렀다. 이미 1,500년 전 동로마 시대에 300여개 거대한 돌기둥으로 크기 가로140m 세로 70m 높이 8m의 거대한 물탱크를 만들어 놓았다. 익살스럽게 기둥하나 밑에 메두사의 머리가 놓여 있다.
오스만 투르크의 전성기 위세를 보고 싶으면 왕궁(술탄) 박물관을 찾아 가면 된다. 진열되어 있는 보석들은 너무 크고 아름다워 여성들이 발을 띄지 못한다. 멀리 영국부터 이집트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생일 선물로 보낸 것들이 박물관에 즐비하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가면 가장 압권이 알렉산더 대왕의 관이다. 사암으로 만들어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을 해 놓았다. 전차를 타고 달리는 왕, 사자, 말 등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동안 다닌 나라 중에 한국인에게 많은 호의와 관심을 가져 준 나라는 터어키이다. 고대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언어는 알타이어족이고, 훈족의 후예여서 그런지 서로 남모르는 친근감이 있다.
7. 그리이스
터어키에서 그리이스로 기차를 타고 들어 갔다. 저녁 10시에 그리이스 국경 작은 역에 도착하니 연결 기차가 없단다. 분명히 스케줄 표엔 있는 것으로 확인했는데.... 불친절한 역무원은 내일 오후에나 연결 기차가 있단다.
이 늦은 시간에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도 없어 몇몇 젊은 친구들과 함께 기차역사에서 잠을 자고 내일 열차를 타기로 했다. 밤 12시에 역무원이 다가 와서 문을 닫는다고 나가라며 쫒아 낸다. 초겨울 날씨에 거리 광장에서 슬리핑백을 덥고 잤다. 배낭여행 4개월 만에 처음 노숙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둘러보아도 별 흥미롭지 않다. 터키와 레바논에서 본 신전이 더 크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유명하여 기대가 컸나? 이 곳 시민들의 불친절과 건방짐에 평가 절하가 되었나?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하여 ‘에게 해의 진주’라는 산토리니 섬에 갔다. 호화 여객선을 타고 도착하니 해안선 산 주위에 하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젊은 여성들은 이쁘다고 칭찬 하지만 나는 자연과 별로 조화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즈음 지질학계에서는 물속으로 사라진 고대 아틀란티스 대륙은 산토리니 섬 중앙에 있다가 화산 폭발로 사라졌다는 주장이 있다. 거대한 분화구가 반만 남아 바닷물 속에 잠겨 있어 섬모양은 초생달 처럼 생겼고 사면은 전형적인 분화구 모양이니 일리가 있다.
8.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가우디 성당, 가우디 구엘 공원, 가우디 건축물 등이다. 나는 피카소의 그림과 작품을 보아도 별 감흥이 없지만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는 그 작품 속에 쏙 빠졌다. 공간과 색의 조화는 나의 미천한 눈에도 너무 멋있다.
각 도시마다 있는 성당은 아주 크고 잘 만들었다. 남미를 침략하여 얻은 재물과 금을 갖고 성당에 많은 투자한 것 같다. 건물 풍은 중부 유럽에서 본 교회와 약간 다르다. 삐죽 삐죽 올린 성탑은 가우디 성당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베리아 반도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아랍문화가 짙어진다. Gordova에 들르니 멋진 이슬람 사원 겸 성당이 있다. 내부가 기둥과 아치보가 어울려 환상적이다. 그런데 일부를 헐어 그리스도교 예배용 제단을 만들었다. 당시 교황도 이 건물을 훼손시킨 것에 대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과 세빌리아에 있는 왕궁은 아랍 건축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왕실 내부 천장과 벽면에 있는 기하학 무늬이다. 너무 다양하고 아름다워서 사진에 열심히 담았다.
스페인 여행 마지막 도시 세빌리아에서 안달루시아의 집시들이 추었다는 플라멩코 춤을 보았다. 조그마한 선술집에서 멋진 남자와 화려한 의상의 여인들이 손과 발 박자를 맞추어 신명나게 춤을 춘다. 역시 정열과 낭만이 있는 곳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그 나라의 민속춤은 기회가 있으면 꼭 본다. 여인들의 몸짓 에는 가사일과 농사일이 묻어 나 있고, 남자의 춤에서는 사냥과 격투기가 배어 나온다. 또한 남녀의 춤에는 사랑과 애정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어 아주 흥미롭다.
스페인의 북부와 남부는 날씨도 다르고 문화도 너무 다르다. 이 나라는 남북 간의 다름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서로 잘 이해하고 존중하여 주는지? 여행자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다. 어디서든 갈등의 소지는 존재 하겠지만 서로 예의를 갖추고 욕심을 버리고 이해하여 주면 문제가 해결 될 터인데.
이제 세계 일주 배낭여행의 중반을 넘어 간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지만 빙하기 때 아시아 동북부에서 신대륙으로 넘어가 중남미에 멋진 고대 문명을 세운 인디오에 대한 호기심으로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특히 인디오들은 우리와 먼 친척뻘 되는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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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홍해바다에서 다이빙 샾을 운영하는 자매 이야기를 얼마전 TV 다큐에서 본 것 같습니다. 사진을 곁들어서 되어있으면 좋았을텐데... 잘 읽었습니다.
그 자매들이 운영하는 샾에서 다이빙 했지요.. 사진은 http://club.cyworld.com/clubV1/Home.cy/51683869 에서 볼 수 있어요.. 사진양이 너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