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이번 들살이 때 아이들한테서 ‘관종’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관심은 주어야 할 것인데 왜 받고 싶게 되는 것일까?
슈타이너는 자주 인간(특히 아이들을 교육, 양육하는 자)은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려는 관심. 그 이유는 그래야만 진정한 사고의 가능성이 펼쳐지고, 그래야만 나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이해하며 이기심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그래야만 건강한 사회를 바탕으로 세계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릴 적에 모든 게 궁금하고 우리 자신 자체가 호기심 덩어리였는데 무엇 때문에 세상에 대한 관심,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커갈수록 잃어버리게 됐을까?
아마 ‘나’라는 존재를 조금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내면세계가 형성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거기에 고립되고 말아서일 것이다. 나는 정말 누구이며, ‘나’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 중 이에 대한 답을 정말 아는 자가 있나? 우리는 이 답을 모르면서 ‘내가’ 이러하고 저러하고, 무엇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므로 내 안에 갇히게 된다. 사실 착각 속에 갇힌 것이다.
이 뭐꼬? 나와 세상은 무슨 관계일까? ‘나’와 ‘너’는 무슨 관계일까?
그에 답, 그 관계를 찾는 시발점이 관심이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이상에 대한 꿈, 추구함이 없으면 공허함이나 허영심, 그리고 무기력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위에 말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동물적) 본능에만 충실하게 된다. 다른 말로는 본능적인 관심만 갖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이상의 토대인가? 경외심과 상상력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삶이, 세상이 경이롭다고 느낄 때가 몇 번이나 될까? 우리가 못 느끼는 것은 삶, 세상이 경이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못 알아보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면(이해하면) 매 순간이 경이로울 텐데..(물론 나도 제대로 못 본다;;). 내가 음대 다닐 때 한 일화가 생각난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 공연을 보러 가면서 한 친구가 음악 공부가 깊은 친구에게 곡의 구조와 이론을 다 이해하면 재미없어지지 않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오히려 알 수록 더 신비롭고 경이로워진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진정한 교육은 경외심에서 상상력으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을 잘 실현하지 못 하고 있다ㅠㅠ)
무엇이 아이들의 경외심과 상상력을 깨뜨리는가(이른바 동심 파괴)? 일 순위는 아이들을 너무 일찍 '깨우는' 말, 어른들의 위선적, 상투적, 추상적인 말과 꼰대질, 그리고 그에 따라 보여주는 행위, 그리고 미디어다.
이번 들살이에서 이 생기 넘치는 아이들이 걷는 내내 하는 얘기들 속에서 그들의 관심사가 드러난다. 크게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졌다: 맛있는 음식(건강보단 자극), 미디어(아이돌과 노래, 영화, 게임, 등), 그리고 야구. 이런 것들이 꼭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런 것에 끌리게 되는 것도 무지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변 세상에 그런 것들이 널려있으니). 단지 아이들이 (사실 우리도) 그런 것에 관심사가 매혹되고 획일화되면서 창의성은 죽어가고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맞이하고 있는 현재 사회 현상이다.
들살이 마지막 숙소에서 아이들이 깨어났지만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아 장난삼아 침대 옆 책상에 놓인 책을 막 펼쳐 동화 읽어주듯이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 불타는 집에서 놀이에만 정신이 팔린 상태인 아이들을 구해내려 아버지가 부르지만 놀기에 바쁜 아이들은 아버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결말 미포함 ㅋ)
10월4일 금요일(7일째 - 20.5km)
10월5일 토요일(8일째 - 23.5km)
10월6일 일요일(9일째)
오늘은 하루 휴식!~
첫댓글 2탄 금욕에 이어 관심!
선생님! 글이 너무 좋아 곱씹어가며 다시 읽게 되네요( 반성하며 ;;)
쉬는날 여자방(카페에선 너무 깨져 안들리네요)과 남자방 몰래듣기 ㅎㅎ 노는것도 귀여운 아이들~ 😊
작년 목요공부 교재 '예술로서의 교육'을 보면 슈타이너가 학생들에게, 우리 인간은 날개가 없어서 새처럼 날 수는 없다.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에 '부지런함' 이라는 날개와 오른쪽에 '주의력'이라는 날개를 가지고서 정신적인 것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고 한 대목이 나와요.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곧 나의 '주의력'을 대상에 쏟는다는 것이고,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대상을 이해하려는 관심'은 어떤 것을 꾸물대거나 미루거나 하지않고 열심히 하는 태도를 '부지런함'을 정의하는 한 측면이라고 한다면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에 필요한 것은 부지런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 슈타이너는 "부지런함과 주의력이라는 날개는 우리가 인생을 비행할 때 유능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고, 우리가 부지런하고 주의 깊은 어린이로서 부지런한 선생님만 곁에 있다면 인생에서 값진 것들은 우리에게 올 것이다고 했습니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도 부지런하고 주의력을 가지고 있으면 멀리 높게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글이 목요공부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어 길게 썼습니다. 아이들이 부럽고요.
감사해요.ㅎㅎ
제 말이... ㅎㅎ
목요인지학 공부 쉬면서 노는 줄 알았더니...ㅎㅎ
그래도 어딘가에 남아 생각하고 계셨군요.
걸으며 찾아온 생각들은,
서서 가르치시며 잘 나누시길 바라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