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미국, 1887~1986
검은 접시꽃, 푸른 참제비고깔
Black Holymock Jue Larksput,
뉴욕 디스로리 미술관
미국 대중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여류 화가로 20세기 미국의 전설이 된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그녀는 미국을 대표하는 표현주의 작가였지. "세상의 광활과 이로움을 가장 잘 깨닫게 해주는 것은 바로 자연이다!" 이렇게 말한 오키는 자연을 사랑하고 끝내 자연 속에서 생을 마친 화가란다. 사막과 하늘이 맞닿은 오지, 대평원으로 없이 펼쳐
지는 하늘을 그렸던 거야. 그리곤 사막에서 수집한 말라비틀어진 동물의 뼈나 , 해골 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단다. 여기에 꽃과 나무 등 자연의 소재를 확대시켜 추상성과 구상성을 결합시켰지. 또한 대도시의 거대한 빌딩, 마친루도 즐겨쓰던 소재한다.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태어난 오키프는 시카고 미술학교, 뉴욕의 스튜던트 리그에서 공부를 했단다. 이때만 해도 그녀는 평범한 화가 지망생에 불과했지. 그러다 1916년 사진예술계 거장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tired Sieglitz)를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뉴욕에서 '갤러리 291' 을 운영하며 피카소, 세잔 등의 작품을 미국에 소개하던 최대 실력자였거든 스티글리츠의 추천으로 데뷔한 오키프는 잠재된 실력을 왕성하게 발휘하기 시작했고, 곧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되었지. 1924년 30세의 오키프는 53세의 스티글리츠와 결혼했단다. 23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사랑의 결실이었지. 그 후 두 사람의 관계는 1946년 스티글리츠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단다. 예술가 내 예술가로서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대한 관계를 지속했어.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가 세상을 떠난 뒤 1919년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사막으로 떠났단다. 그곳 황량한 사막의 풍경에 사로잡혀 고스트 랜치(Ghost Ranch)라는 보금자리에서 1986년 일생을 마쳤지. 오키프는 포드와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와 예술의 훈장을 받을
정도였어. 그 외에도 많은 명문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를 받는 등 그녀는 20세기 미국이 사랑한 화가였단다. 당시 여성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왕성히 활동한 조지아 오키프는 수집가나 화랑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믿고 나갔단다.
오키프가 가장 즐겨 그렸던 꽃은 그녀 빛나게 한 주요 테마었단다. 오키프는 화면 전체에 확대한 꽃의 형태의 색의 조화로운 구성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려 했었지. 이를테면 지금 보고 있는 검은 접시꽃과 푸른 참제비고깔처럼 말이다.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집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꽃들을 확대했단다. 꽃의 전체 형태가 커지면서 평소 우리가 인지하지못하던 환상적 세계가 펼쳐졌단다. 기괴하거나 관능적이고 혹은 수렁으로 빨려드는 아름다움, 그 모든 영역이 오기프의 꽃에 있었지. 친숙한 지연적 소재는 대담한 현대적 스타일을 거치면서 낯설고 신선한 추상회화의 세계를 이루었단다. 이는 오키프만의 독자적 세계었던 것이지.
검은색 접시꽃과 푸른색의 참제비고깔 이 두 가지 꽃은 실제 크기로 볼 때 전혀 이렇게 어울릴 수 없단다. 그럼에도 오키프는 점과 아기자기한 참제비고깔을 한 화면에서 비슷한 비율로 확대해 놓았구나. 사실 이 꽃의 생김새나 생물학적 특이성을 이해하는 것이 아나라 색과 형태로서 화면을 점령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단다. 대담한 색의 배치 그리고 꽃으로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압도감은 자연의 아름다움나 중요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구나. 어떤 이들은 오키프의 꽃에서 여성과의 생물학적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지. 그러나 오키프는 표현의 장엄함을 극대화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그린다. 나는 대상을 크게 그려 사람들이 놀랍고 신기해서라도 오래 긴장하도록 하고 싶었다.
대다수의 도시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꽃을 볼 시간이 없다. 아주 바쁜 뉴요커들에게 내가 꽃에서 본 그 무엇을 찾아보기 만들고 싶었다" 그녀가 보이는 이 과감한 꽃세계를 공감할 수 있겠니?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