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제법 늘었다. 어느덧 나도 나이를 먹은 티가 난다. 더 이상 두고 보기가 민망하여 상점에서 염색약을 샀다. 머리카락을 갈색으로 염색하고, 눈썹도 갈색으로 그리고, 구색에 맞게 옷마저 갈색으로 입으니 마치 가을 여인이 된 것 같다.
처서에 이어 한로까지 지나니 저녁 무렵이면 서늘한 바람이 느껴진다. 햇살도 그 강렬한 빛을 누그러뜨렸고, 나뭇잎들도 어느새 초록의 푸른 기상을 잃고 갈색을 띄고 있다. 가을이 온 것이다.
가을은 갈색과 함께 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누렇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 알알이 영글어 가는 밤, 이렇게 세상은 온통 갈색으로 변해간다. 자연과 맞추어 거리의 쇼 윈도우 속의 마네킹들도 벌써부터 갈색 옷을 입고 서있고, 여인들의 옷차림도 갈색으로 바뀌고 있다.
갈색은 대지의 풍요로움과 원숙함을 느끼게 하는 색깔이다. 가정적인 따스함과 모성(母性)의 분위기가 깃들어 있어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도 한다. 자연적인 목재 가구로 꾸며진 실내에 있으면 마음이 빠르게 안정된다는 보고도 있다. 갈색은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않는 평범하고 겸손한 색이며, 대중적이고 친근한 색이다. 자제와 금욕을 상징하여 중세시대에는 수도자와 신분이 낮은 가난한 농부, 노예들이 주로 이 색깔의 옷을 입었다. 이런 까닭으로 왕족들은 공식행사에서 갈색의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갈색의 계절인 가을이 오면 한 번쯤 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 갈색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의 작은 찻집 창가에 앉아, 갓 구운 갈색 빵이 곁들어진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이다. 거기에 마음을 나눌 친구가 곁에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음악은 ‘한혜진의 갈색 추억’이나 가을이 주제가 된 노래가 흐른다면 한층 좋을 것이다.
갈색은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갈색으로 잘 볶아진 커피 알을 분쇄기로 갈 때 그윽하게 퍼지는 커피 내음은 황홀함마저 느껴진다. 나는 커피를 고단한 일상을 잠시 잊게 하려는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갈색이 나도록 익힌 갈비나 스테이크에 격자무늬로 지져진 진한 갈색 자국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빵도 갈색이 나도록 구워진 것이 더 먹음직스럽다. 순간적인 힘을 나게 하는 쵸코릿도 갈색이다. 달콤하고도 쌉쌀한 맛이 좋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즐겨 먹는다.
갈색은 건강을 상징하기도 한다. 구릿빛으로 태워진 피부는 건강한 매력을 발산한다. 최근에는 복근(腹筋)을 단련시키고, 인공적으로 그 부분을 갈색으로 그을린 ‘쵸코릿 복근’이 젊은 남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음식도 자연주의를 추구하여, 도정을 적게 한 결이 거칠고 갈색이 도는 곡류로 만든 음식을 선호하고 있다. 달걀도 흰색보다는 갈색 달걀이 더 맛이 좋다. 독일에서 생산되어 유명한 복비어(Bockbier)란 갈색 맥주도 있는데 영양이 아주 풍부하다.
미술에서 갈색은 주황과 검정을 합친 색이다. 혹은 빨강, 노랑, 파랑과 검정을 배합하고 약간의 흰색이 첨가되기도 한다. 갈색과 어우러진 색은 본래의 특성을 상실한다. 갈색의 옆에서 빨강은 약해지고, 파랑은 명확함을 잃고, 노랑은 광채를 상실한다. 무언가 쇠퇴한 느낌을 주어 갈색은 주로 불경기 때 유행한다. 색깔이 주는 느낌처럼 갈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차가운 경향이 있다. 보수적이며 차분한 성격으로 주위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기도 한다. 때로는 우울함과 그리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분홍색 다음으로 이 색깔을 좋아한다.
갈색의 보석에는 금록석(Chrysoberyl), 자마노(Sard), 갈색 호박(Brown Amber), 연수정(Smoky Quartz), 갈색 토파즈(Brown Topaz)가 있다. 나는 갈색 호박으로 된 목걸이와 반지, 브로치 세트를 가지고 있어 갈색 옷을 입거나 가을철에 착용하면 은은한 멋이 풍긴다.
신발장에서 갈색 구두를 찾아 신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갈색이다. 가을도 깊어 가고 있다. 갈색의 이 계절이 떠나기 전에 갈색의 세상을 만끽하려 밖으로 나선다.
오늘은 한의원에서 침을 50대 맞고나니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아 공원에서 가을을 노래 했습니다 흥얼흥얼 그리고 조그만 갈대 숲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은빛 고운 갈대를 고운님 보듯하고 돌아 왔는데, 난 왜 그 좋아던 시간들을 글속에 풀어내지 못할까요. 부러워요. 글 잘쓰는 사람 가을속에 푹 빠져 노닐다 갑니다.
첫댓글 깊어 가는 가을에 글 한 편 올립니다.
가을을 몰고 오셨군요~~~ 늘 감사하고 ~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해요 ^^
황토 지킴이 쿠사님, 님이 계셔 카페가 더욱 정겹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려요.
갈색으로 탈바꿈한 오드리님 보고싶네요.^^
지난 번 서울 모임에 가려 하다가 쉬었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기관지 천식을 갖고 있어
늘 조심해야 한답니다. 보고 싶고 가고 싶지만 팔자려니 하고 참아야죠.
감사해요.
갓 구운 바게트와 진한 커피... 가을의 밋이군요!
빨리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흰색을 주제로 오드리님 멋진 글이 나올 것 같아서 말예요.
늘 졸은 글 볼 수 있음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어쩌면 제 마음을 그리도 잘 아시는지요.
눈이 오면 하얀색을 주제로 한 글을 쓰려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아~~ 가을을 맞이하러 떠나고싶당
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군요.
이 가을을 만끽하러.
감사해요.
가을이 우리곁으로 영원이 떠나가는 느낌이 오늘군요 자연현상이라고 하는군요 ㅠㅠ 님 건필하세요 ^^
영원히 떠나지는 않죠. 내년을 기약하니까. 우리가 떠난다는 느낌입니다. 고맙습니다.
가을은 남성의 게절이라더니 여성의 계절인가 봅니다. 온통 갈색으로 치장한 가을의 한복판에서 고요하게 서있는 갈색여인을 생각해 봅니다. ㅎㅎㅎ 건강하셔요.
메모리스 모임에 오셨더군요. 갈색으로 치장을 하고 꼭 갔어야 했는데... 다음에 뵈어요. 쌩유 !
키도 적당하고 갈색치마에 흰색 부라우스 그리고 조끼를 걸친 40대중반의 여인 '''''대청댐 휴게소에서 본적이 있는데 아''저렇게 멋잔중년 여인도 있구나 하고 한참 멍하니 바라본 기억이 남니다
저 말고도 그런 여인이 또 있었군요. ㅋㅋ 저도 대청댐 휴게소로 가보아야 겠어요. 샘 나서. ㅎㅎ
오늘은 한의원에서 침을 50대 맞고나니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아 공원에서 가을을 노래 했습니다 흥얼흥얼 그리고 조그만 갈대 숲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은빛 고운 갈대를 고운님 보듯하고 돌아 왔는데, 난 왜 그 좋아던 시간들을 글속에 풀어내지 못할까요. 부러워요. 글 잘쓰는 사람 가을속에 푹 빠져 노닐다 갑니다.
설마... 입 크게 벌리고 목젖이 보일정도로 크게 노래하진 않았긋찌요?? 흥얼흥얼~~~~^^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요? 건강 조심하세요. 댓글을 읽어 보니 글을 잘 쓰시는데요. 습작을 많이 하면 된답니다. 감사. 수마석님 위트 만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