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4절까지 말씀으로 「끝까지 사모할 복」이라는 주제로 들었던 부흥회에서 들었던 수원제일교회 김근영 목사님의 은혜로운 금요일 설교 말씀을 옮깁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3~4)
본립도생(本立道生)은 사물의 근본이 서면 도는 저절로 생겨난다는 뜻으로, 기본이 바로 서야 나아갈 길이 생김을 이르는 말이며, ≪논어≫의 <학이(學而)>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데 기초인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충실하다면 주님이 주목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바탕 위에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감사함으로 나아가면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자기만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처녀가 누군가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라는 말씀을 듣고서 부모님의 기도 제목이 응답하게 해달라고 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갈멜산 기도원을 갔는데 거기에 「기도 시간을 확보하라. 기도 응답을 확신하라. 기도 범위를 확대하라.」 라는 표어가 적혀있어서 신앙의 기본인 기도에 충실하자는 말씀으로 은혜가 되는 문구였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복과 세상이 추구하는 복은 분명히 다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8가지 복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애통하는, 온유한, 의에 주리고 목마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청결한, 화평하게 하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받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중에서 두 가지 복이 우리 인생 끝까지 사모할 복입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부하게 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유하게 사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진정한 복은 심령이 가난하게 사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헬라어로 가난이 페니 크로스라는 말로 성경에서 과부가 두 렙돈을 가진 의미로 쓰였습니다.
또 하나는 프토코스로 타인이 도와주지 않으면 궁핍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한 가난이 프토코스입니다.
이 말은 지금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구원도 스스로 얻을 수 없으므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나타나 있습니다.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누가복음 18:38)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마태복음 14;14)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태복음 15:32)
저는 부모님이 믿음이 좋은 장로님도 목사님도 아닌 세상에서 말하는 흙수저로 신앙을 시작하였습니다.
총신대 다닐 때 제가 섬기는 교회는 신학생에게 사례비를 적게 주는 작은 교회에 전도사로 시작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기도굴에 들어가 나는 신학생들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사례비를 주겠다고 기도를 하였는데 지금 8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간증문을 들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팔복이라는 태명을 가진 예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르기가 우스워서 이름을 보은이라고 지었으며 8살입니다.
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양쪽 무릎에 종양이 있는 장애아였습니다.
삼 개월 전에 제가 팔복에 대한 설교를 하였고 그 아이가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신다는 말을 믿는다고 정확히 말을 하였습니다.
3개월 후에 종양이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나았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육신의 질병, 자녀들 문제 등을 놓고 하나님께 진실히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나침반은 북쪽을 가리키고 있지만 흔들리면서 방향을 가리킵니다.
흔들리지 않고는 꽃이 필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역설적으로 우는지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나면 내가 주님의 영광을 가렸던 과거가 생각나며 회개를 합니다.
이단에 빠진 형제들을 보면서 애통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세상이 어둠에 빠져있는 것을 보면 가슴 아파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7)
하나님이 엎드러진 우리를 일으키시는 예배를 드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울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흘린 눈물은 영혼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져의 아들이 중학교 때 하루는 집에서 불이 났으니 빨리 오라는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불이 나면 산소공급을 차단하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이불로 콘센트에서 붙은 불을 껐다고 합니다.
다행히 가보니 집은 다 탔지만 동생이 그곳에 없었고 불은 아들이 많이 제거하여서 얼마나 감사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이 사건 때 오 신실하신 주를 찬양하였습니다.
우리를 진실로 위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하심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갑니다.
충현교회에서 사역할 때 일입니다.
제가 맡은 역삼동에 있는 룸살롱이 많고 원룸에는 룸살롱에서 일하는 자매들이 많이 삽니다.
어느 집사님이 빨리 오라고 해서 달려갔습니다.
가서 보니 한 자매가 앉아 있었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고 합니다.
자신이 교회에서 반주도 하고 어머님은 권사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매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를 하였더니 눈물을 흘리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집사님으로부터 이곳을 떠나 다시 신앙생활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처음과 마지막이 천국 백성이 되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길이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되며 결국은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도움으로 여기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