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될 참
방상복 대건 안드레아(60) 신부
얼마 전에 삼인출판사의 홍승권 선생님이 송호일 목사님을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온 적이 있었다. 머리도 식힐 겸, <풍경소리>를 통해 이름만 듣던 그 양반도 보고 싶어서 따라 나선 길이었는데, 막상 가서 만나보니, 미리내 성지 근처에 있는 <유무상통마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북수원 교회에서 장애인 복지 일을 맡아오던 송호일 목사님이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의 눈에 나서 일자리를 잃어버리자, 유무상통마을의 방상복 신부님이 불러들여 상담사로 취직을 시켜주었다는 것이다. 그날 불행히도 방상복 신부님이 <안나의 집>에 방문하는 날이라서 뵙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며칠 전에 부산 을숙도에서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단 50일째 되는 날 열린 미사에서 방신부님과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번 놀러 오라는 말을 듣곤 한번 가야지, 마음먹던 참이었다. 그 후로 송 목사님이 중간에 끼어서 연락을 주고받다가 이내 유무상통 마을을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달마대사 그림 처럼
용인에서 22-1번 군내버스를 타고 미리내 입구에서 내려 마중나온 송호일 목사님의 차편으로 유무상통 마을에 도착하니 신부님이 올 때가 되었을 텐데, 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응접실에 걸려 있는 달마대사의 그림처럼 신부님이 앉아 계셨다. 방 신부님은 동기였던 연제식 신부님과 파푸아 뉴기니아에 선교를 가셨다가 병을 얻어 귀를 다치셨다. 보청기를 끼우셨다지만 가는 소리는 잘 듣지 못하신다. 들을 말만 듣고 흘릴 말은 걸러버릴 수 있어 좋을 듯도 싶었다. 벽에는 유영모 선생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그분에 관해 석사논문을 쓰셨다고 하는데, 아마도 유무상통을 둘러싼 모든 개념과 문화적 장치들이 다 그분의 정신에서 흘러나온 것인양 싶었다. 아시아의 종교심성을 아우르면서 예수를 살았던 분이 유영모 선생이기 때문이다.
유무상통 마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닮은 예수상이다. 성당에 들어가면 제대 왼편으로 “빈 십자가 이천년 만에 내려오시다”라고 쓰인 달랑 빈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지금은 성당 문간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 자리에 계셨던 분이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상이다. 빈무덤이 아니라 빈십자가 옆에 계신 예수다. 그 예수는 자신의 손과 발목에 박혔던 대못을 뽑아 손에 쥐고 앉아 계신다. 귀가 어두우신 신부님께 그 연유를 일일이 캐묻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 ‘작은귀인’이라는 분의 블로그에서 그분이 신부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실려 있는 걸 보았다.
이제 그만 쉬게 해드려야
“먼저 안나의 집(실버요양원)을 지을 때는 예수님 상을 웃는 상으로 해 봤어요. 십자가의 고통에 찡그리신 예수님을 이제는 좀 웃게 해 드리자는 마음이었지요. 다 이루셨다고 하신 예수님이 한도 미련도 없으실 예수님이신데 그런 예수님이 언제까지 극심한 고통에 찡그린 그 표정으로 가시관의 고통만 맛보아야 하느냐 그 생각이었지요 뭐. 더구나 무료 요양원에 모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미 세상을 거의 다 사신 분들이시고 대부분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신 데다 일반인들이 탐탁히 여기지 않는 무료 요양원에 오시니 그 심정이 오죽하시겠어? 그런 어르신들에게 찡그린 예수님만 보여드릴 게 아니라 기쁨으로 하늘나라로 부활승천하시는 환희의 형상으로 예수님의 표정을 보여드려서 기쁨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시게끔 하고 싶었어요.”
역시 방상복 신부님이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예수상 때문에 수원교구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렇지만 방신부님의 고집을 꺽을 사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좀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유무상통 마을에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시게 했어요. 좀 쉬셨으면 해서... 2000년을 매달려 계셨는데 이젠 좀 쉬셔도 되는 거 아닙니까? 이를 가지고 초기에 왈가왈부들을 하셨는데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지 뭐... 아무튼 부활하신 예수님만은 내 마음을 아시는지 가끔 ‘내 아들 안드레아야. 너밖에 없구나. 2천년 만에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 편히 쉬게 해주니 참으로 고맙구나' 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마음의 귀로 들을 때마다 나는 행복해서 속으로 빙긋 웃곤 해요.”
이 말 속에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견디어 오신 노인들을 이 신부님이 어떻게 대하실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분들은 한결같이 자녀들을 위해 평생 동안 헌신하셨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그들의 마음을 그만 헤아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려드리듯이 편안히 모시고 싶은 마음이 낱낱이 읽혀진다.
이 마을에 세워놓은 그려놓은 성모의 모습도 그러하다. 짧은 윗저고리에 비하여 젖무덤이 너무 커서 반쯤 드러나 보이는 성모의 모습은 한손엔 함지박을 이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가감 없이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 어머니들을 이곳에 모시고 사는 것이다.
유무상통
‘작은 귀인’의 글에 따르면, 방상복 신부님은 십수 년 전부터 한 시골 성당 사제관에서 무의탁 어르신들을 모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도 차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되어 앞으로는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임을 미리 절감하셨다고 한다. 전국 90여개 성당에 매주 나가셔서 모금동냥을 하는 한편, 벽돌을 손수 나르며 직영 처리로 2,400여 평 규모로 ‘무료노인요양원’인 <작은안나의 집>과 <여기애인의 집>을 지으셨고, 한편으로는 복지행정대학원에서 복지이론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현재 1급 복지사 자격증까지 소지하고 손수 시설장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진 사람들도 교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귀하신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생각으로 연건평 6,500평의 유료양로원인 유무상통마을을 미리내에 세워서 미리내실버타운인 <유무상통마을>을 이루어내신 것이다. 현재 신부님이 관리하시는 (복)오로지종합복지원 산하에는 무료노인요양원인 <작은 안나의 집>과 <성베드로의 집>을 비롯해서 무료노인전문요양원인 <여기애인의 집>, 또한 미혼모와 그 아가들의 안식처인 <우리성모님댁>,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인 <초월형원의 집>, 광주시 <노인종합복지관>, 용야병원인 <대건효도병원> 등이 있으며, 유료 양로시설인 유무상통마을을 통하여 얻는 수익으로 방 신부님께서 앞으로 더욱 많은 무료 양로원을 설립하여 돈이 없어 갈 곳조차 없는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유무상통마을>의 건물 위에는 크게 “놓아라”하는 말이 쓰여 있다. “모든 것을 버리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명예든 체면이든 학벌이든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버리고 들어오라는 뜻이다. 마음을 이제 그만 세상에서 거두어 천상에 두라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하고, 사람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전갈처럼 들린다. 오로지 하느님께 마음을 두는 자에게 행복이 있다는 말 같다. 그래서 마을이 이름이 ‘유무상통(有無相通)인가? “있음과 없음이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가 모두 당신의 귀한 사람들이고, 서로 도울만한 것으로 도우라는 뜻인가 보다.
미사를 알리는 법고소리
이 유무상통마을에는 그리스도 교회의 '십계명'을 연상시키는 '우리들의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다.
1. 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노인
2. 나이를 내세워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노인
3. 늘 웃는 낯으로 칭찬을 잘해 주는 노인
4.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지혜를 보태주는 노인
5. 종교를 인정하며,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노인
6. 취미생활을 즐기며, 멋과 예술을 사랑하는 노인
7. 운동시간을 가지고 있는 노인
8.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맙게 먹는 노인
9. 세상 소식에 밝고, 컴맹이 아닌 노인
10. 돈에 집착치 않으며, 검소한 노인
방문한 날 저녁에 마침 미사가 있었다. 미사 전에 하루 세 번 친다는 범종소리가 들려왔다. 삼종기도를 알리는 범종 소리가 미리내 성지 계곡으로도 밀려들어 순교성인들을 위로할 것이다. 그리고 한 할머니가 미사를 알리는 법고를 두드린다. 이 소리를 따라서 신자들이 성당에 모이면 하루 일과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자들의 마음이 모이는 것이다. 이 날 미사에서 방상복 신부님은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풀이해 주셨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자녀들에게 꼴찌가 되게 해달라고, 종이 되게 해달라고, 말단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뒤를 따르며 자리다툼을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뭔일이냐고 물었던 예수와 암말 못하던 제자들. 신부님은 서로 꼴찌가 되겠다며 서로 일등은 네가 하라고 권하는 세상엔 분쟁도 갈등도 없고, 통일도 빨리 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신교 장로인데, 법적으로 당선자 신분인데, 놈자(者)자를 쓰는 게 기분 나쁘다고 ‘당선인’이라고 바꿔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법률용어도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국민을 잘 섬기겠느냐”고 일갈하였다. 그리곤 맹사성 이야기를 덧붙였다. 맹사성이 군수가 되어 부임하였는데, 그 지역에서 덕이 높기로 소문난 스님을 방문했다. 한 말씀 기다리자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좋은 일은 많이 하라”고 했단다. 뻔한 이야기에 실망한 맹사성이 돌아가려 하자, 차나 한 잔 들라고 하면서, 찻잔이 넘치도록 찻물을 따라 주었다. 맹사성이 발끈하자, “보세요, 군수님. 찻잔에 물이 넘치는 것은 보시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버리는 것은 왜 못 보시우”하였단다. 결국 맹사성은 황망해져서 서둘러 나가다 문틀에 이마를 부딛고 말았다.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허리를 굽힐 줄 알아야,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신부님은 말한다.
유무상통 미사는 참석한 신자들은 물론 독서자들과 사제도 의자에 앉은 채 진행된다. 노인들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고, 주님도 편안하게 앉아서 만나라는 배려인 듯도 싶다. “미사가 끝났으니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라는 말로 맺어진 미사를 봉헌하면서 마음은 편안해지고 집에 앉아 있는 듯 고요했다. 그 밤을 편안히 쉬고 일어난 아침에, 창을 여니 사방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 잠깐 행복했다.
한상봉 (이시도로)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한상봉 2008-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