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없는 사람에게 안부를 물었다.(25년 전 금강을 함께 걸었던 김재승 선생을 추억하며).
몇 개월 전에 2000년 가을에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 첫 번째 여정이었던 금강을 함께 걸었던 하천사랑 운동 김재승 회장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았다. ‘바쁜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끊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뒤 잊어버리고 있다가 11월 초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씨로부터 지난 해인 2024년 겨울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구나.”
공군 대령으로 예편해서 아시아나 항공사에서 7년 동안 기장을 했던 김재승 회장과 열나흘 동안 걸으면서 함께했던 추억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주와 부여 접경인 지천에 도착하여 우리들은 난감하다. 하류에 어떤 식으로 든 다리가 놓여져 있기를 바랬던 우리들의 기원이 무위로 끝난 것이다. 점심때는 다가왔는데 규암연 금암리 장주마을까지는 3km쯤 될성싶다. 가는데 3km 오는데 3km 누가 우리를 대신해서 저쪽까지 가줄 사람 없을까? 그렇지 않으면 농사용 차량이라도 이쪽으로 왔으면 좋으련만. 걱정이 태산처럼 밀려오며 다리가 더욱 아프다. 나는 건널 수 없는 강 때문에 더 아픈 다리를 어루만지며 시 한편을 떠올린다.
강
구광본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오랜 날이 지나서야 알았네
갈대가 눕고 다시 일어나는 세월,
가을 빛에 떠밀려 헤매기만 했네
한철 깃든 새들이 떠나고 나면
지는 해에도 쓸쓸해지기만 하고
얕은 물에도 휩싸이고 말아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그래 건널 수 없는 저 강처럼 나와 수많은 사람 사이에도 얼마나 많은 건널 수 없는 강들이 놓여있을까?
그러나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던가.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지천에서 고기를 잡은 사람 둘이 세워둔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그물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백마강교까지만 데려다 주면 기름 값이라도 주겠다. 오토바이 하나에 두 사람이 타고 하나에 한 사람이 타면 될 것 아닌가.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지만 빠졌던 힘이 샘솟는다. 그런데 재수가 없다보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50대인 두 사람 다 농아가 아닌가. 우리가 아무리 손짓발짓으로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으니까 저기 저 백마강교까지만 데려다 달라 후사하겠다.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수화를 배워 두었을 텐데 다리가 몹시 아픈 김재승 회장은 다리가 아프다는 표시로 다리를 손으로 두드려도 보지만 두 사람은 한사코 안 되겠다는 표시다.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아픈 다리를 앞세우고 제방 둑을 걸어가고 채성석씨도 내 뒤를 따라오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은 김회장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쓴다. 아무래도 그 사람들은 불법으로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가다가 누구를 만나는 걸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저 멀리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져가고 김재승 회장은 맥이 빠진 채 축 늘어져 걸어온다. 작은 다리를 지나 장주 마을에 도착한다. 슬슬 배는 고프고 비는 다시 굵어진다. 강 답사는 이런 때가 가장 낭패다.
지류와 본류가 만나는 지점에 다리가 없으면 2km건 3km건 한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장주마을에서 마을 사람에게 백마강교까지 걸어가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혹시 가는 버스가 언제 있느냐고 물어보자 “백마강교까지 먼데요. 가만있자, 열두 시 버스가 있는데 지나갔네요. 다음 버스는 세시 차가 있어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기다릴 수도 없고 걸어갈 수도 없고 차 길 옆 은행나무에 우산을 받쳐 들고 기대앉아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린다. 어느 차든 먼저 오는 차를 세워 사정을 해야겠다.
지천이 지천이 아니로구나, 지천에서 지쳐버리니까 사람이 땀이 나고 그 땀에 흠뻑 젖으니 힘이 들 수밖에 다행스럽게 지나가는 트럭이 우리들의 사정을 들어주었고 백마강교를 건너 부여 관광 호텔에 도착한 때는 2시쯤이었다. 나이들 수록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던가. 오이소박이며, 된장국에 점심밥을 든든히 먹고 또 다시 백마강 다리로 가기 위해 우리들은 지나가는 승용차들을 세우려 했지만 우리 몰골을 보고 그랬는지 아무도 태워주지 않고 결국 썩음 썩음한 트럭이 우리를 태워 주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던가.“
하루 종일 걷고서 숙소에 들어갔고, 저녁을 먹은 뒤 어둠이 내린 강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재승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밤에 야간비행을 할 때, 어디에나 불빛들이 보이거든요. 바다에는 고기 잡는 배들이 더 많지만 어쩌다 불빛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고비사막을 지날 때 또는 환태평양을 지날 때 불빛이 없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 느끼는 심정은 외로움입니까”
내 물음에 “글쎄요”하고 그는 말문을 닫고 말았다.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전시 조종사>중의 한 구절에서 한참 비행하는 도중에 눈앞에서 확산 되어 가는 구름을 ‘얼음으로 된 별들이 달린 옷자락’에 비유하다가 시시한 글 장난에 몰두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낯익은 것들이 사라지고 낯설음이 물밀 듯이 밀려올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혹해하거나 문득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추억들을 공유했던 사람이 어느 사이 먼 곳으로 가고 전화 통화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는 저승에서 외로울까, 행복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은 그저 슬프다.
2025년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