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에 대한 기억
고구마는 조선시대 중반(1600년 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재배하는 대표적인 열대성 농산물이다. 6월 중순경 보리· 밀을 베어 수확 뒤에 그 밭에 곧바로 심을 수 있는 이모작 농작물이며, 다른 작물에 비하여 특별한 재배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최근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고구마에 대한 관찰은 지역과 생활습관에 따라서 조금은 차이가 있다.
내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는다. 씨고구마에서 새순 내고, 순을 잘라서 밭에 심은 뒤 가을에 거둬들이고, 끼니 대용으로 먹을 때까지의 전 과정을 적어본다. 나는 1949년 1월 말 충남 보령군 웅천읍 구룡리 화망(고뿌래)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구마를 재배하는 전 과정을 보면서 자랐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 일꾼아저씨(머슴)는 건넌방(윗방) 아랫목의 왕골자리*를 걷어낸 뒤 밭흙을 삼태미에 퍼담아 가져와서 방바닥에 부었다. 씨알이 굵은 고구마를 흙속에 파묻고, 그 위에 왕겨*로 덮고, 물을 촉촉이 자주 뿌렸다. 방바닥을 따듯하게 덥히려고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더 자주 지폈다.
한 달쯤 지나면 씨고구마에서 새싹이 노랗게 돋아났다. 추위가 많이 가신 5월 초에 싹이 제법 길쭉하게 솟아오른 씨고구마를 텃밭에 옮겨 심었다. 물을 자주 주어서 고구마 줄기가 더욱 기다랗게 클 때까지 가꾸었다.
6월 초·중순경 보리바슴(타작)을 하려고 보리를 베어서 거둬들인 밭 흙을 소가 이끄는 쟁기로 깊게 갈았고, 쇠스랑으로 밭이랑을 만들었다. 비 내리는 날이거나 비가 갠 뒤에는 줄기가 많이 자란 고구마순을 대략 한 뼘 길이로 잘랐다. 두세 마디가 있었다. 일정한 길이로 자른 순을 흙속에 살짝 파묻었다. 그러면 고구마 줄기 마디에서 실뿌리가 새로 나왔다. 이 실뿌리(줄기)가 새끼손가락처럼 점점 굵어졌다.
뜨거운 여름철에 한두 차례 풀을 뽑아낸 뒤에 밭이랑 사이에 퇴비(거름, 두엄)를 두텁게 덮어주면 풀이 더 이상 자라나지 못했다. 줄기가 길게 뻗어 날수록 잎사귀가 많아졌고, 잎사귀가 넓어서 햇볕을 더 많이 흡수했다. 그늘과 두엄 속에서는 풀은 잘 자라지 못했다. 이처럼 고구마 재배는 무척이나 수월했다.
10월 찬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구마를 캐야 했다. 고구마 넌출(넝쿨)을 낫으로 베어서 걷어냈다. 넝쿨에서 배어 나오는 하얀 진(수액)이 손에 묻으면 손바닥이 진득거렸고, 물에도 잘 씻어지지 않았다.
알이 굵은 고구마가 들어 있을수록 긴 이랑의 겉흙이 툭툭 터지고 벌어졌다. 호미로 생고구마를 찍지 않도록 겉흙을 살살 걷어내며 조심스럽게 캐야 했다. 상처가 생기면 거죽이 썩었고, 속까지 상했다.
잘 캔 고구마이라도 겨울철에는 저장하기가 어려웠다. 겨우내 얼지 않도록 따뜻하게 저장해야 했다. 고구마를 많이 캔 농가에서는 뒤켠(장독대 뒤편의 땅)에 커다란 구덩이를 깊게 팠다. 마치 지하동굴이나 방공호 같았다. 선선한 구덩이 안에 고구마를 묻어두었다. 때로는 마룻장 밑을 파서 고구마를 저장했다. 가장 확실하게 저장하는 방법으로는 *구들장이 있는 건너방 안에 볏짚-방석 등으로 둥그렇게 엮어서 만든 곡간 안에 고구마를 차곡차곡 재어 넣었다. 방의 온기로 겨우내 얼지 않았다.
고구마는 뿌리, 잎사귀, 줄기 등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넝쿨이 무성하게 자란 9월에 순(가지)를 따서 겉껍질을 벗겨 밑반찬을 만들어서 먹었으며, 고구마를 캐려고 거두었던 줄기는 겨울철 소 여물(사료)로 썼다.
1970년대까지도 촌에서는 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쌀과 보리가 귀해서 밥먹기가 어려웠던 때였다. 점심밥을 걸르는(먹지 못하는) 가난한 집에서는 고구마로 끼니를 떼웠다. 삶은 고구마를 잔뜩 먹으면 목이 팍팍하게 메였다(얹혔다). 그래서 동치미, 짠지(김치)와 함께 먹으면 목이 덜 메였다.
고구마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메주콩을 찌는(삶는) 가마솥에 생고구마를 함께 넣었다. 오랫동안 콩을 삶는 동안에 콩에서 나온 국물이 고구마에 달작하게 스며들었다. 고구마는 물렁거렸으며, 맛도 좋았다.
또 추운 겨울철에는 고구마를 뒤켠 장독대 위에 쌓인 눈 속에 파묻었다. 고구마가 냉해를 입어서 얼고, 상해서 껍데기(겉껍질)이 빨개졌다. 살짝 언 고구마는 맛이 더욱 좋았다. 군불 때는 부엌 아궁이 장작불 속에 고구마 서너 개를 묻었다. 군불/잿불에서 꺼낸 군고구마는 정말로 맛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1950~70년대의 가난하고 어려웠던 농촌에서 겨울철 끼니때마다 먹었던 고구마는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억 속에서 자꾸만 사라져 간다. 고구마 재배 면적도 점점 줄어든다고 하니 안타깝다.
고구마는 건강식품이므로 변비예방과 기호식품으로 아이들의 요깃거리(간식거리)와 맛탕, 튀김 등을 해서 많이 먹었으면 싶다. 그래서 주말농장을 가진 사람에게 고구마를 재배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고구마에 얽힌 옛 기억과 추억을 더듬을 수 있고, 재배하기가 쉽다. 아이들과 함께 심는다면 아이들에게는 산 교육이 될 것이다.
지금은 수경재배(水耕栽培)로도 간단히 고구마 새순을 내고, 줄기를 키워서 밭에 정식(이식)할 수 있다. 고구마 재배가 더욱 수월해졌다고 본다.
2004. 6. 24.
* 구황작물(救荒作物) :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을 수 있는 농작물
* 왕골자리 : 왕골껍질을 짚에 싸서 엮은 자리
* 왕겨 : 벼의 겉에서 맨 처음 벗긴 굵은 겨
* 구들장 : 방고래 위에 덮어 바닥을 만드는 얇고 널찍한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