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 망인, 사자, 고인 등이 함께 쓰이고 있는데, 이 가운데 ‘고인’을 표준용어로 삼는다.”
“조문은 쓰지 말고 ‘문상’을 표준으로 한다.”
“상제나 주상은 버리고 ‘상주’를 표준용어로 한다.”
2003년 1월 정부에서 장례식장 표준용어 제정에 나섰다. 국어정책을 책임지는 문화체육관광부도, 우리말 실태를 조사하고 표준을 정하는 국립국어원도 아니었다. 표준 장례용어를 발표한 곳은 국가기술표준원이었다.
기술표준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으로 국가 산업규격을 관장하는 곳이다. 2000년대 들어 장례산업 규모가 급속히 커지자 이용자 편의와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장례용어의 KS(Korean Standard)를 정한 것이었다. 일제 이후 왜곡된 의례(儀禮)의 본래 의미를 되찾는다는 명분도 더해졌다. 부음을 ‘부고’로 바꾸고 방명록을 ‘부의록’으로, 영안실을 ‘안치실’로 쓰도록 한 게 그런 사례들이다.
하지만 ‘말글 시장’에선 정부가 표준을 정한다고 해서 곧바로 실생활에 뿌리내리는 것은 아니다. 언어에는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언중이 망자나 망인, 사자 같은 말보다 ‘고인’을 더 많이 쓰는 것은 그 말이 돌아가신 이를 높여 부르는 표현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언중에 의해 쓰임새가 커졌다.
그러나 조문과 문상의 관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부에서 KS를 정할 당시 조문(弔問)은 ‘일본식 표기며 문의를 애도한다는 뜻이 돼 엉뚱한 의미’란 점을 들어 ‘문상(問喪)’을 쓰도록 권장했다. 하지만 언중은 문상보다는 조문을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 그것은 지난달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 기간 내내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주(喪主)’도 조심해서 써야 할 말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지난달 25일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공동취재단이 보내온 사진설명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중략) 조문한 뒤 상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고 돼 있었다. 고인과 전 전 대통령 간 오랜 ‘악연’에 마침표를 찍는 상징적 장면으로 여러 언론사에서 이 사진을 실었다.
그런데 이 사진설명에는 이상한 표현이 하나 있다. ‘상주들’이란 게 그렇다. 상주란 ‘주가 되는 상제’로 대개 장자(長子)가 맡는다. 여기서 ‘상제(喪制)’란 부모나 조부모가 세상을 떠나 거상 중에 있는 사람으로, 이는 여럿이 될 수 있다. 상제 가운데 맏이를 ‘맏상제’라 하는데, 이 사람이 곧 상주다. 장례식 과정에서 최고결정권자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상주들’이라고 하면 잘못 쓴 말이다. ‘상주’와 인사를 나눈 것이거나 아니면 ‘유족들’과 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흔히 ‘맏상주’란 말도 쓰지만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치상 맞지 않는 말이다. 그냥 상주 또는 맏상제라 하면 된다.
요즘엔 상가에서 곡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지만 본래 우리 장례 문화에선 곡을 하는 게 예법이었다. 문상객이 들면 상주가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론 쉬운 게 아니다.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슬퍼서 자연스레 나오면 별 문제가 없겠는데, 집안 어르신들이 시켜서 하는 경우라면 여간해선 잘 나오지 않는다.
어찌 됐건 이 곡소리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 ‘표준 곡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이구’도 아니고 ‘아이구’도 아니며 ‘아이고’라고 해야 한다. 우리 사전(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우는 소리, 특히 상중에 곡하는 소리’를 ‘아이고’라고 올려놓았다. ‘어이구’는 고인 앞에서 어감이 좀 건방져 보일 듯하니 안 될 것 같다. ‘아이구’라고 한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깔끔하게 표준어인 ‘아이고’라고 하는 게 좋겠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소중한 정보 갑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