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귀담아 들어라
- 정약용이 이벽을 스승으로 모신 이유
코헬 11,9-12,8; 루카 9,43ㄴ-45 /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2020.9.26.;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는 코헬렛 11장과 12장의 말씀입니다.
본시 ‘코헬렛’이라는 책은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을 수록한 성경입니다.
코헬렛은 인명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리나 직책을 뜻하는 보통명사인데,
당시의 독자들은 솔로몬 임금을 가리키는 것임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코헬렛에 쓰인 히브리 말은 솔로몬 시대의 언어가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 가장 후대의 언어입니다.
기원 전 4세기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동방 지역을 무력으로 정벌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헬레니즘화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를 원천으로 하면서도 ‘길가메시 서사기’ 같은 고대 중동 공동의
정신문화 유산의 영향도 수용하고 ‘아멘엠오페의 지혜’라고 불리우는 이집트의 정신문화도 받아들였습니다.
아주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성향을 띠었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섬겨온 유다이즘이 희석되어 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코헬렛의 실질적인 저자들인 유다의 원로 현인들은
밀려들어오는 무신론적인 외래 사조를 개방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유다 젊은이들과 후대 유다인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유다의 신앙적인 전통 지혜를 솔로몬의 이름을 빌어 전하고자 했습니다.
헬레니즘의 영향을 나타내는 구절은,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하는 매우 개방적인 내용입니다. 하지만 유다이즘의 영향은,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같은 구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유다이즘의 결론을 보여주는 코헬렛의 이러한 사상은 이 세상에 하느님으로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
극적인 반전을 이룩합니다. 바로 십자가 수난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 군중의 반응을 전하는 오늘의 복음도 단편적이라기보다는 총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 반응은 이스라엘의 평균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께서 드디어 나타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기대하는 이 현세적 메시아 기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헛된 기대를 접도록 하셨습니다.
즉,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수난을 당하는 당신의 운명을 예고하신 겁니다.
군중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이 말씀에 담긴 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불의하고 부당한 체제 – 로마 제국의 군사적인 식민통치와
이에 빌붙은 친로마적이고 굴종적인 종교체제, 그래서 사실상 우상숭배적인 상황 - 를 타파하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독립과 유다이즘의 부흥을 이루어 줄 현세적 메시아가 너무도 절박하게 요청되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세적 메시아에 대한 열화와 같은 기대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예수님께서는 딴청을 피우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색을 하고 당신 수난의 운명을 선언하듯이 꺼내셨습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이 십자가 선언이 훗날,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들의 제1구원명제가 되어 있습니다. 바라는 바 소망이 간절하고 기대가 클수록 이 소망과 기대를 기도하는 당사자들은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전제하고 나서야 그것이 실현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를 이 말씀은 담고
있습니다.
어제의 강론에서 저는 조선천주교회의 신앙고백자로서 이벽과 정약용을 들었습니다.
이벽의 신앙이 정약용의 학문을 통해 드러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학이나 서학이 아니라 천주교를 통해서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 복음화시키기 위한 이벽의 신앙을
스승에 대한 제자의 예를 갖추어서 배우고 깨우친 정약용이 강진 땅에서 보낸 모진 18년 유배 생활을 오롯이
스승 이벽의 뜻을 학문으로 펴는 데 바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문중 박해를 받아 미처 뜻을 펴지 못하고
스러졌으나 자신이라도 받들고자 스승의 뜻을 5백여 권 여유당 전서에 담았습니다.
이 상황이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스승으로서 비장한 마음으로 밝히신 뜻과도 상통한다고 보입니다.
복음은 스승 예수님의 뜻을 소개한다면, 조선 천주교회 초창기의 현실은
제자인 정약용이 스승의 뜻을 정성을 다해서 귀담아 듣고 다산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최대의 성과로 평가받는 학술적 노력으로 펴낸 그런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글을 소개합니다. 천진암 성지에서 한평생 이벽을 창립 성조를 모시며 연구한
수원 교구 변기영 몬시뇰이 1998년 4월 13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다산 정약용과 광암 이벽
아름다운 꽃을 보며 사람들은 그 꽃잎을 감탄하면서도 그 줄기와 뿌리를 알기는 쉽지 않다.
위대한 학자나 사상가의 뒤에는 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일찍이 20여년 전 홍이섭 (洪以섭) 교수는 '이벽 (李檗) - 한국 근세 사상사상 (思想史上) 의 그의 위치' 라는
논문에서 다산 (茶山) 정약용 (丁若鏞.1762~1836) 선생에게 끼친 한국 천주교의 성조 광암 (曠菴) 이벽 (1754~1785) 선생의 영향을 처음으로 비교적 잘 서술했다. 정약용 선생과 이벽 선생은 나이가 8세 차이로,
삼촌이나 큰 형 뻘의 사돈관계였다.
그런데 다산 선생의 학식과 사상을 잘 아는 이들도 그러한 사상과 학식의 근원을 캐보며
이벽 선생과의 관계를 아는 이들은 매우 적다.
정약용 선생은 자신이 쓴 글, 특히 그의 묘지명 (墓誌銘)에서 “자신은 이벽을 추종했고 (從李檗) ,
자기 형 정약전 (1758~1816) 은 아주 일찍부터 이벽을 추종했으며 (嘗從李檗) , 뿐 아니라 권일신 (1742~1792) 은 열성적으로 이벽을 추종했으며 (熱心從李檗) , 이가환 (1742~1801) 역시 이벽을 추종했다 (從李檗)” 고 기록하고 있다.
강진에 유배돼 있을 때 정약용 선생은 중용강의 (中庸講義) 를 보충하면서 4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이벽 선생을
사모해 "나에게는 비교가 안될 만큼 출중한 덕행과 해박한 지식 (進德博學) 이 있던 이벽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누구에게 물어보랴. 책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눈물 금할 수 없구나" 하고 그를 그리워했다.
정조 임금이 중용에 관한 질문 70조목을 선비들에게 숙제로 내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수표동에 살던 이벽에게 물어 답을 올린 결과 승지 홍인호 등이 보고
"정약용의 답안을 본 즉 필시 특출난 학식을 가진 선비 (識之士)가 있어 도운 것이 분명하다" 고 했었다.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를 끝내고 1818년 고향 마재에 돌아온 정약용 선생은 우선 젊었을 때
이벽 선생과 함께 자주 찾았던 천진암 (天眞菴)에 와 "30여년만에 다시 찾아오니,
천진암은 이미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전혀 없구나 (寺破無舊)" 하며 추억을 더듬었다.
귀양가기 전 일찍이 단오날 둘째 형 정약전 선생과 천진암을 찾았던 정약용 선생은 이벽 선생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에서 “천진암에 오니, 전에 이벽이 늘 앉아서 글을 읽던 자리가 아직도 저기 있네 (李檗讀書猶有處) .
그때 짓던 시와 문장의 탁월한 그 풍류 문채는 정말 신비스러운 경지에 이르렀었지 (風流文采須靈境) ,
그리하여 지금 또다시 한나절내 술을 마시며 한나절 내내 읊어본다 (半日行杯半日吟)” 고 하고 있다.
정약용 선생이 이벽 선생으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으면 유배지 강진에서 중용강의를 손질하면서
중간 중간 이렇게 고백했겠는가. "내가 써내려온 문장은 사실 전에 광암 이벽이 썼던 문장이다 (此曠菴之文)" ,
또 한 두 쪽 넘어가다가 "이 학설은 광암 이벽의 학설이다 (此曠菴之說)", 또 몇 장 내려가다가 "이런 해석은
광암 이벽이 했던 해석이다 (此曠菴之義)".
광암 이벽 선생이 1785년 봄 세상을 떠나자 그 장례식에 참석한 정약용 선생은
존경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다음의 만사 (輓詞) 를 지어 남겼다.
신선 나라의 학이 우리 인간들 세상에 내려오시니 (仙鶴下人間) /
신령한 그 풍채가 흔연히 빛남을 볼 수 있었도다 (軒然見風神) /
그 희고 또 흰 날개와 깃털은 눈처럼 새하얗었는데 (羽핵皎如雪) /
땅 위의 닭과 오리 떼들이 샘을 내며 골을 부렸네 (鷄鶩生嫌嗔) /
울음소리 한번 내면 아홉 하늘 높은 곳까지 진동시켰고 (嗚聲動九소) /
울부짖는 소리는 풍진 세상에 바람과 먼지를 일으켰네 (瞭亮出風塵) /
어느덧 가실 때 되어 가을 타고 문득 날아가시니 (乘秋忽飛去) /
애달퍼하고 구슬퍼하며 탄식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창空勞人).
정약용 선생을 보다 정확히 연구하기 위해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광암 이벽 선생에 대한 연구를
선행하거나 병행할 필요가 있음을 제언하고 싶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정약용 요한께서 이벽을 스승으로 모셨다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