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권리로 기뻐하는 게냐? 가난뱅이 주제에!“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가난은 불행이고, 부富는 구원이다’라는 것, “돈에는 돈 이외엔 친구가 없다는 것,” 권력은 씨앗과 같다는 것“ 그것이 세상의 이치고 진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내가 열일곱에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큰 아들 드미트리 미쨔가 한 말을 지금도 나는 마치 어제 읽은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수 백만금(數百萬金)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사람 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금과옥조처럼 따르며 살았는데, 오늘의 이 시대에는 그 말은 낡고 헤진 망토와 같은 것이라서 내 버려도 어느 누구도 가져가려 하지 않는 구시대적 유물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문학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소설이나 영화로 접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그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그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약한 수전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유령들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차례로 지켜본 뒤 개과천선하여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한다.
”스크루지는 자신의 사무실 건너편에서 일하고 있는 서기를 감시하기 위해 방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서기는 비참할 정도로 비좁은 골방에 앉아 편지들을 베껴 쓰고 있었다.
서기 방에서 타고 있는 난로 불꽃은 너무 작아 한 알의 석탄이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냉정하고 인색한 구두쇠 노인이다.
그는 “기쁨이란 잉여의 산물”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스크루지는 공기 속에 서 느껴지는 수천 가지 향기들을 감지해 냈다.
그 향기들에 얽힌 수천 가지 향기들, 희망과 기쁨, 고통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기억해 냈다.
아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들이었다.
…
“별 것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제가 데리고 있는 서기에게 따뜻한
말 한 두마디만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소설 속이나 오늘의 세상 풍경들은 어떤가?
“응당 천사들이 왕좌를 차지하고 앉아 있어야 할 그곳에 악마들이 도사리고 앉아 위협적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성에 아무리 심한 정도의 변화, 타락, 왜곡이 생긴다고 해도 놀라운 창조의 온갖 신비를 통틀어 이들의 반만큼이라도 소름 끼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 > 3절 두 번째 정령 중에 실린 글이다. 109페이지
그리고 아래의 구절이 가슴 구석구석을 바늘로 찌르듯 파고든다.
”대체 무슨 권리로 기뻐하는 게냐? 가난뱅이 주제에!“
What right have you to be merry? You’re poor enough.
”삼촌은 대체 무슨 권리로 우울하신 거죠? 삼촌은 돈도 많잖아요.“
What right have you to be dismal? You’re rich enough.
언젠가 우리 땅 걷기 도반 이 했던 이야기 ”오빠? 돈 많아?“보다 더 슬프고 가슴이 아픈 이야기이다. 가난하면 기뻐할 권리 조차 없는 것일까? 돈이 많은 사람은 우울할 수 조차 없는 것인가? 이렇게 풍자와 해탈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지은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이 짧은 유령 이야기 책에서 나는 내 머릿속의 유령을 끄집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독자 여러분이 스스로에 대해서나 다른 이들에 대해서, 이 절기에 대해서 혹은 나에 대해 언짢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나의 유령이 여러분의 가정에 즐겁게 깃들기를,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쫓아내고자 하는 이가 없기를!
1843년 12월., 여러분의 충실한 친구이자 하인 찰스 디킨스
그리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라고 다음과 같이 덕담을 건넸고, 그 자신의 묘비명으로 썼다.
“깃털처럼 가볍고, 천사처럼 행복하고, 학생처럼 흥겹군.
술 취한 사람처럼 아찔해. 여러분, 모두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십시오!
이 세상 모든 분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이 세상에 악한 기운들이 물러나고 선한 기운이 봄의 햇살처럼 펴지고,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이 도래할까?
현실은 어둡고 슬프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세모歲暮를 모든 분들에게 기원합니다.
2025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