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佛 오픈 테니스
 
스페인 아가씨, 흑진주를 울리다
스물두살 무구루사, 테니스 세계 1위 세리나 잡고 佛오픈 우승
 
- 세리나보다 13세 어려
182㎝ 장신에서 나오는 파워로 '자신의 테니스 우상' 완벽 제압
메이저 최다우승 실패한 세리나, 22번째 트로피 눈앞에서 놓쳐
 
4일 오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스타 드 롤랑가로 센터 코트인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 올해 두 번째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프랑스 오픈의 여자 단식 결승전을 앞두고 스페인의 가르비녜 무구루사(22·세계 4위)가 혼잣말로 자신에게 속삭였다.
"가르비녜, 한번 해 보자. 실력으로 결승까지 온 거잖아."
세 살 때 테니스 라켓을 처음 잡은 무구루사가 늘 꿈꿨던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앞으로 1승. 하지만 그의 상대는 여자 테니스의 '지존'이자 자기의 우상이었던 세리나 윌리엄스(35·미국)였다. 윌리엄스는 1999년 US 오픈에서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지금까지 21차례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여자 테니스의 지배자였다.
무구루사는 결승 진출까지 단 1세트만을 내주는 무결점 플레이를 선보였다. 하지만 테니스계에선 온통 윌리엄스 얘기뿐이었다. 윌리엄스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역사상 최고의 여자 테니스 스타로 꼽히는 슈테피 그라프(독일)의 메이저 대회 22회 우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빨간 하이힐 신은 파리의 여인 - 클레이 코트 위에서 땀과 흙에 범벅이 돼가며 경기를 치렀던 가르비녜 무구루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사진은 베스트 드레서 1위(미국 폭스스포츠)답게 5일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 분수대 앞에서 옆이 트인 원피스와 붉은색 하이힐로 단장한 채 트로피를 들고 있는 무구루사의 모습. 테니스화와 양말에 가려졌던 그녀의 발과 검게 그을린 종아리가 대비되는 모습이 이채롭다. /EPA 연합뉴스 |
무구루사는 윌리엄스 상대 전적이 1승 3패로 열세였다. 그는 지난해 윔블던 대회 결승에서 윌리엄스에게 0대2로 완패했다. 무구루사는 "당시 너무 긴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면서도 "이후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무구루사는 윔블던 패배 이후 11개월 만에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윔블던에서 윌리엄스에게 주눅이 들어 제 플레이를 하지 못했던 무구루사는 이날 182㎝의 큰 키에서 내뿜는 파워로 윌리엄스에게 맞섰다. '힘' 하면 윌리엄스였지만, 무구루사는 스트로크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세계 1위 세리나 윌리엄스도 꼼짝 못하게 만든 가르비녜 무구루사의 파워 넘치는 백핸드 샷. |
7-5로 1세트를 따낸 무구루사는 2세트 들어서는 더욱 자신감 있는 플레이로 윌리엄스를 몰아붙였다. 무구루사는 2세트 게임 스코어 5-4에서 회심의 로빙 샷이 엔드라인 끝에 걸쳐 들어가면서 1시간 43분 만에 2대0(7―5 6―4) 승리를 이끌어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무구루사는 그대로 코트에 누워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우승 상금으로 200만유로(약 26억4000만원)를 받았다. 무구루사는 "우승 순간 심장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호주 오픈에 이어 메이저 두 대회 연속 준우승에 머물게 된 윌리엄스는 '허벅지 부상'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나는 경기에 패한 뒤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나는 오늘 이길 수 있는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무구루사는 그것을 해냈다는 것이 차이"라고 말했다. 무구루사의 우승으로 스페인은 1998년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이후 18년 만에 프랑스 오픈 여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축구 강국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은 무구루사의 여자 단식 우승에 이어 남자 복식에서도 펠리시아노 로페스-마크 로페스 조가 스페인 조로선 26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한편 주니어 남자 복식에서는 정윤성(18·양명고)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의 오를란두 루스와 한 조로 출전한 정윤성은 5일 열린 결승전에서 이샤이 올리엘(이스라엘)-패트릭 리클(체코) 조에 0대2(3―6 4―6)로 졌다.
[석남준 기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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