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 연꽃
장마가 다가와도 비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내리지 않는 칠월 둘째 금요일이다. 전날 산성산 둘레길을 거닐었는데 이어서 이른 아침 불모산 숲으로 걸음을 나섰다. 버스 정류소에서 이웃 아파트단지 사는 김씨 노인을 뵈었는데 아내가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라 간병으로 고생했다. 올해 여든다섯으로 모산리 강가 꽤 넓은 밭뙈기에 콩을 비롯한 농사를 짓는데 그만두고 병실을 지켰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가족이나 본인이 병고를 겪으면 집안 안마당도 그늘져 보인다. 김 할아버지는 함안 대산 출신이고, 할머니는 거름강 건너 의령 지정 두곡이 친정이다. 그곳 출신 이극로가 집안 할아버지로 해방 전 독일로 가 온갖 풍상을 겪으며 신학문을 익힌 경제학 박사였으며 한글학자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겪고 광복 후 이념이 달라 북한 어문 정책을 이끌었다.
시청광장을 돌아 할아버지는 먼저 내리고 나는 시내를 관통해 안민터널 입구에서 내렸다. 남천 상류에서 제2 안민터널 입구 교각 밑을 지나 성주사로 가는 길로 들었다. 산문 입구에는 수능 100일 기도와 함께 음력 칠월 백중 우란분절을 앞둔 기도가 있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근년 새로이 세운 일주문은 단청을 입히지 않은 채 현판 편액만 단정한 글씨체로 걸려 있었다.
들머리 종각이 선 약수터에 중년 부부가 샘물을 받으며 연지 연꽃을 살폈다. 나도 그들 곁으로 다가가 무성한 잎을 펼친 연지에 피는 백련 송이를 완상했다. 이어 불모루로 오르는 돌층계에서 법당 뜰로 가니 둥근 화분에 키운 홍련 송이가 눈길을 끌었다. 설법전에서 지장전과 석탑 주변도 홍련을 심은 화분이 줄지어 놓였다. 관음전 아래 연지는 하얀 수련이 점점이 떠 있었다.
절집 경내 마당은 스님과 허드렛일을 돕는 처사가 마당을 빗자루로 깔끔하게 쓸어 놓았다. 관음전 뒤 불모산으로 가는 비공식 등산로로 들었다. 평소 산행객이 다니질 않고 어쩌다 템플 스테이로 머무는 이가 산을 찾을 때 개방하는 숲이다. 계곡은 그간 적은 강수량에 맑은 물이 돌부리를 헤집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활엽수림을 삼림욕 하듯 거닐었다.
등산로는 희미해 숲과 분간이 되지 않았다.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되어 쌓인 숲 바닥을 헤집고 누비며 참나무 고사목 둥치에 돋는 영지버섯을 찾아봤다. 인내심을 갖고 발품을 판 보람을 있어 갓을 펼쳐 자색으로 물드는 영지버섯을 몇 무더기 만났다. 여름 숲에서 찾아낸 영지는 베란다에서 말려 형제나 지인들에게 나눈다. 내가 주변에 보내는 손쉬운 호의가 영지를 안김이다.
숲속에서 영지를 찾느라 땀을 흘려 개울에 손을 담근 뒤 배낭의 삶은 감자를 꺼내 간식으로 삼았다. 물가 바윗돌에서 더위를 잊고 한동안 머물다 배낭을 추슬러 숲을 빠져나갔다. 절집으로 내려서니 아침에 한산한 경내는 차들이 빼곡하고 불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백중날까지 일곱 차례 기도와 법문을 듣는 우란분절 법회 첫째 날이다. 조상 혼령의 안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산문에서 법회 참석하려는 불심이 두터운 초등학교 동기를 만났다. 불교대학 교양과정을 마치고 봉사단체 회장을 맡기도 한 친구다. 작년에는 법회 후 공양간 식사 후 설거지하던 모습도 봤다. 시내로 나가 교육단지 도서관으로 가니 미디어실은 만석이라 용호동 중앙도서관을 찾으니 휴관일이라 발길을 돌렸다. 멀리 대산으로 나가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을 개인 서재처럼 썼다.
노트북 고장으로 못다 한 숙제처럼 밀린 생활 속 글을 2편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버스를 타서 아침나절 본 ‘곰절 연꽃’을 한 수 남겼다. “장맛비 그친 틈새 여명에 길을 나서 / 불모산 산문 지나 성주사 절집 드니 / 연지에 백련 꽃송이 염화시중 전하네 / 돌계단 층계 디뎌 마당에 올라서자 / 둥근 분 연을 가꿔 싱그런 잎을 펼쳐 / 봉긋한 홍련 꽃송이 불국정토 그리네” 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