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저항과 거룩한 도전 (시2-137)
2026년 6월 4일 (목요일)
찬양 :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본문 : 시 137:1-9
☞ https://youtu.be/mcDUWB1U7ss?si=cHxo589KYQCFwGOz
어제는 국민의 권리인 일꾼을 뽑는 투표를 한 후 오늘 있을 세미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사랑하는 작은교회와 사역자를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체력의 부족함으로 온전하게 준비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오시는 분들에게 나처럼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시편 137편은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탄 뒤, 포로로 끌려가 살아야 했던 바벨론의 강가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대운하(그발 강가 등) 건설 노동에 동원되어 비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때 바벨론의 압제자들은 노동이 끝난 후 술자리에서
"너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우리를 위해 불러보라"며 영광의 찬양을 유흥의 도구로 조롱했다.
그러니까 시편 137편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던 성전 찬양이 이방인들의 술안주 거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영적 수치의 현장에서 고백된 신앙인의 가슴을 찢는 믿음의 저항이며 눈물로 드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노래다. 3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이런 현실에 시인은 이렇게 저항하고 있다. 4-6절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이들은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고,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심지어는 내가 기억하지 않거나 가장 좋아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하면 내 손의 기술이 마비되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기를 바란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즐거워하는 것"의 히브리어 원어는 ‘로쉬 쉼하티(רֹאשׁ שִׂמְחָתִי)’로, 직역하면 ‘내 기쁨의 머리’, 즉 내 인생의 최고 정점의 기쁨을 뜻한다.
바벨론에 끌려온 포로의 신세로 시인은 내 손의 기술이 마비되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 음악가로서의 생명이 끝날지라도,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를 내 인생의 가장 최상위 기쁨으로 삼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세상의 성공이나 안락함이 내 기쁨의 이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내 삶의 유일한 목적임을 다짐하는 견고한 정체성의 고백이며 저항이다.
이 말씀이 오늘 내게 큰 은혜가 된다.
나는 산 믿음은 이 땅의 삶이 주는 현실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왜곡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을 당하는 현장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그곳에 이 시인처럼 저항하고 도전하는 삶이 믿음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와 성과주의라는 거대한 ‘현대판 바벨론’은 교회의 사역과 사명자들의 헌신마저도 하나의 ‘유용한 도구’나 ‘효율적인 프로그램’으로 전락시키려 끊임없이 유혹한다.
내 사역과 영성이 세상의 가치를 만족시키는 수단이나 기술이 되지 않도록, 인간적인 동력과 기획을 과감히 멈추고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두는 정직한 무력함으로 바벨론의 요구에 저항해야 한다. 사역은 세상에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향한 제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본질적인 자리로 되돌아가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기 위한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오늘 인공지능을 비서로 활용하는 목회에 대해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세상의 도구를 따라가는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의 노래가 되지 않게 하려는 몸부림이다.
아울러 새로운 지평을 열어내려는 몸부림이다.
특히 시인의 고백처럼 이 거룩한 꿈의 나의 가장 즐거워하는 것이 되기를 다시금 다짐한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 사라진 느낌으로 살아왔다. 은퇴라는 단어가 나로 가장 큰 즐거움을 앗아가는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회복하고 나의 삶 전부가 이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기억하며 그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는 삶 되기를 다짐한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세상이 요청하는 대로 움직이거나 세상에 인정받으려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빛이 되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돌이키며,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위해 나의 삶을 전부 드린다.
주님, 오늘도 부족하지만,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며 저의 믿음을 드립니다. 성령으로 임하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역이 되게 하소서. 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이 나의 최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오직 온 세상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그 날을 위해 나의 삶을 드려 사는 삶이 내 인생 최고의 기쁨으로 알고 오늘을 살아가라.>
적용 질문 :
1. 사역의 성과를 내어 세상에 나를 증명하거나 청중의 만족을 구하려는 은밀한 조바심이 세상의 유혹임을 알고 과감히 멈추겠습니까?
2. 나의 모든 사역이 복음의 신비와 예배의 절대성이 세상의 가치관에 오염되지 않도록 저항하는 거룩한 방어선이 되고 있습니까?
3. 인공지능 문명 한복판에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강력한 복음의 도전장을 내미는 참된 빛의 사명자로서 오늘 무엇을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