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역사스페셜 정조 독살 편을 봤습니다.
재위 19년만에 노론에 대항할수있는 힘을 얻는 정조는 수원화성 건설등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6년뒤에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노론을 정계에서 배척하고 인재를 등용할것을
선포한지 불과 한달후에.. 맞는 의문의 죽음
죽기10흘전에 홧병과 종기에 대한진찰을 받는데 이때 정조가 홧병에 좋은 탕약을 직접처방하고종기는찢어서 고름을 짜자고 의원에게 권유하는데..의원이 거절하고 오히려 상반된 약을 쓰죠 예를 들면
연훈방치료를 하면서 보약을 처방한다는가....
연훈방(수은이 굳어서 원석이 된것인데 가루를 내서 한약과 섞어서 종이에 싸서 불에 태워서 연기로 치료하는것.)수은이 2그램 정도만 들어가도 사람을 죽일수있을만큼 치명적이라는거..하지만 이때는 죽이거나 중독될정도는 아니었다네요.-_- 좀나아가고 있지만 다나은상태는 아닌데 종기를 악화시키는 보약을 써서.. 병세는 점점더 악화되고(이때 정조는 보약은 종기치료에 좋지않으니 쓰지말것을 권유하지만 역시나 의원들은 거절.) 결국 당시 정순왕후가 머물던 수정전을 지목하곤 임종한 정조.ㅠ.ㅠ
세손시절부터 무려 7차례의 죽을고비를 넘겼다는 정조 세손시절부터 밤새서 책을 보는것도 자객이
침입할까봐 불안해서 잠을이루지못해서 그랬던거라는... 즉위하자마자 자객이 침입하는데... 상궁과
내시마져도 자객이 대전으로 들어갈수있게 도왔다는... 왕을 최측근인 상궁과 내시 의원까지 노론의 손아귀에 있었다는게..참..ㅜ.ㅜ
정조만 독살당한게 아니죠...
정조의 첫아들인 문효세자는홍역을 앓았는데.. 홍역이 거의다 나은상태에서 경기를 일으키더니
다음날 죽었습니다.(뭔가 냄새가 납니다.) 정조가 가장사랑했다던 의빈성씨는 문효세자가 죽고
임신한태 였는데 아들이 죽은지 6개월도 채안되서 죽습니다.(실록에는 아예 독살이 의심된다고 나와있을정도죠..) 조카 상계군또한 멀쩡하다가 갑자기 죽고요자신뿐만아니라 아버지와 부인과 자식 조카마져 노론손에 죽었는데 최고의 르네상스를 이뤘다는게 대단할따름입니다.
학자가 끝에 한말이 생각납니다.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대에 정치가 맞물려갔다면 세종때 이후로 조선의 역사가 달라질수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걸 당파싸움때문에 날려버렸고 정조의 죽음이후로 정조의 모든 정책들은 폐지가되고 조선은 암흑기에 접어들었다고 정조가 죽은후에 독살설이 나돌고 왕의 죽음에 분개하는 선비들이 역모를 꾸민것도 이런인물 이런시대가 다시올수없음에 아쉬워하는 백성들의 마음이었다고....
그럼 의문이 가는게 있는데요..
정조의 첫째아들과 그부인이 거의 독살되서 죽었는데... 둘째아들인 순조가 태어나고 원손으로 있을때
노론은왜 원손인 순조는죽이지않았을까요? 자신들이 죽인 사도세자의 손주를 왕으로 모시는거보다
안동김씨가 나무꾼하던 철종을 허울뿐인왕으로 세운것처럼 노론도 그러는게 자신들에게 이득이 아닐까싶은데?
첫댓글 정치는 명분이라는 말이 있듯이...순조가 원손으로서 가장 큰 정치적 대의명분을 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봅니다. 순조와 마찬가지로 나이 어린 헌종이나 나무꾼이었던 철종을 내세운 것 또한 영조의 혈통으로서 정치적 명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군요.
그리고 순조가 11살로 즉위하였으니 노론과 함께한 외척과 권문세가들이 얼마든지 어린 왕을 좌지우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 명분도 확보하고 국정도 입맛대로 이끌 수 있는 순조가 선택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물론 정조가 노론에 독살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 입니다.)
기득권세력의 그들 만을 위한 권력욕으로 말미암은 정조의 미완의 개혁이 조선의 국운을 결정짓는 큰 요인이 된 것은 참으로 안타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 정치판(여건 야건 모두 또 같음)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유리사랑님의 정조독살설편 감상평을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