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기도하는 집
주님께서 수난하심을 여러 번 예고하시지만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수난예고입니다.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사흘 뒤에는 살아나실 것이라고 부활을 예고하시지요. 그렇지만 제자들은 슬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활은 부활하신 뒤에도 믿을 수 없는 대 사건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어 함께 먹고 마시고 이제 겨우 2년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님의 기적을 보고 믿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벌써 죽음이라니요. 예수님은 서른 몇 살의 젊은 나이로 사람들 손에 죽을 것이라니요. 그러나 당신이 계시지 않으면 성전이 아무 쓸데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시는 이 죽음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보통으로 무시하게 됩니다.
교회나 회당이 존속하기 위해서 돈을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유대교 회당에서는 그리스도인 교회처럼 헌금 바구니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모금 방법은 거룩한 축제일들을 앞두고 예약된 좌석 표를 파는 것이었는데 그 때가 교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가장 너그러운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거룩한 어느 날, 한 꼬마가 회당에 아버지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수위가 표를 안 가져왔다고 들여보내지 않았는데 꼬마는 “있잖아요? 매우 중대한 일 때문예요.” “다들 그렇게 말하지.”하고 문지기는 냉정하게 말하자 꼬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좀 들여보내 주십시오. 아저씨, 이건 생사에 관한 문제라고요 일 분만 있다가 나올 꺼예요.” “좋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이라면.” 수위는 아주 부드러워졌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다가 나한테 들키기만 해 봐라!”(앤소니 드멜로, 개구리의 기도 1권)
우리는 규칙이나 조직 때문에 교회의 본질이나 성전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살기도 합니다. 제가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유명한 산에 등산할 때면 입장권 속에 문화재 관람료를 슬그머니 부과하여 입장권을 파는 것입니다. 매번 유명한 산에 갈 때마다 절 관람료와 문화재 관람료를 받아서 절에 기부를 하는 것을 보면서 오늘 복음의 성전 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전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성전세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오늘 그 모범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면서 성전세가 합당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명동성당이나 유명한 성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성전 세를 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합당한 생각이라고 동의하시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남들에게서 성전 세를 받는지, 자녀들에게서 성전 세를 받는지’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교회의 종사자들에게서는 성전 세를 받지 않는 것을 아시면서도 성전자체이신 주님은 성전 세를 내고 남들처럼 회당에 당당하게 들어가십니다.
어느 파문을 당한 신자가 하느님께 신세타령을 했답니다. “저들이 저를 성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제가 죄인이라고요.” “뭘 그걸 가지고 투덜대느냐? 저들은 나도 못 들어가게 하려 하는데.”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앤소니 드멜로, 개구리의 기도 1권)
우리는 자주 성전의 주인이신 하느님도 제쳐놓고 삽니다. 성전을 돈을 버는 방법으로 활용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흔히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 예수님께서 그 일을 당하시면서도 위선자들에게 궂이 대항하시지 않으시죠.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세상을 사는 지혜로 가르쳐 주십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란 말이 있는데 내 주장대로 하지 않고 예의범절을 따라서 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의범절은 아예 상관없이 규칙만을 주장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 x 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시는 > 것입니다. 그 것도 물고기의 입에 들어있는 동전을 가지고 내게 하십니다. 베드로의 직업이 어부였으므로 생업에서 번 돈으로 성전 세를 내게 하시지만, 한편으로는 <생선을 싼 종이는 악취가 나고, 향 싼 종이는 향내가 난다.>는 말과 같이 물고기의 입에 있는 동전으로 성전 세를 내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성전의 주인인 하느님을 제쳐놓고, 우리가 성전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5.24-28ㄷ
제삼십년 넷째 달 2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갯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축일8월 12일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Jane Frences de Chantal)
신분 : 설립자, 수녀
활동 연도 : 1572-1641년
같은 이름 : 방지가, 샹딸,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프란체스카, 후아나
1572년 1월 23일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디종(Dijon)에서 귀족 가문의 둘째 딸로 태어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은 18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가톨릭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폭 넓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세 때에 크리스토프 드 샹탈(Christophe de Chantal) 남작과 결혼한 그녀는 충실한 아내이자 헌신적인 어머니요 검소하고 알뜰한 주부로서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던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城)에서 매일미사를 봉헌하는 관례를 만들었고, 다른 성의 신심활동을 도입하여 소개하면서 자선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그들 부부는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둘은 유아 때 사망하였다. 게다가 1601년 남편이 사냥을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시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몽틀롱(Monthelon)으로 오지 않으면 손자들의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위협을 받고 할 수 없이 몽틀롱으로 가서 7년 동안 자녀교육에 힘쓰며 살았다.
1604년 사순시기 동안 친정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디종을 방문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마침 그곳을 방문한 제네바(Geneva)의 주교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설교를 듣고 대단한 감명을 받아 그의 영적 지도를 청하였다. 처음에 다소 망설이던 주교는 결국 그녀의 간청을 받아들였고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 영성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과 주교에게 순종할 것을 서원하였다. 디종의 카르멜회 수녀들과 만남을 통해 큰 영향을 받은 그녀는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고자 원했으나 주교는 좀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도록 했다.
1607년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그녀에게 영성적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에 드러내었던 덕들을 따르고, 활동적으로는 노인들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하는 수도 공동체를 세우려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이에 뜻을 같이 한 그녀는 주교의 도움으로 자녀들의 장래 문제와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한 후 안시(Annecy)로 떠났는데, 그곳은 주교가 새로운 수도회를 세우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1610년 6월 6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는 안시 수도원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녀와 2명의 동료들이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해 주교로부터 정식으로 회칙을 받았으며 이듬 해 그들 모두 수도 서원을 하고 그녀가 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회의 이름과 회헌은 여러 번 바뀌어 오다가 마침내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공식 명칭으로 확정하였다. 이 수도회는 1612년 1월부터 병자방문을 시작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그녀는 시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후 더욱 영성적인 성숙에 힘쓰며 수도회의 새로운 분원 설립에 주력하였다.
1614년 리옹(Lyon)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많은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도움을 받아 수도원을 급속히 확장해 나갔고 많은 여성들이 입회하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확장은 육체적인 고행보다는 겸손과 온화함을 강조한 주교의 가르침과 그녀의 신중함과 헌신 덕분이었다. 1619년에 그녀는 파리(Paris) 분원을 설립하면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만나게 되었는데,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초기 정신과 활동 방향을 옹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한 후에는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주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사망하던 1622년 당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분원은 13개였고, 프랑스 전역으로 확장되어 그녀가 사망할 당시 약 86개의 분원이 있었다.
그녀는 수도회 내적, 외적인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계속해서 분원을 설립하기 위해 거처를 옮겨 가며 생활하였다. 1628년 흑사병으로 많은 수도자들이 사망한 후 안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금 장상을 역임하다가 1641년 마지막으로 파리에 가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만나고 돌아온 후 느베르(Nevers)에서 병을 얻었다. 결국 물랭(Moulins)의 분원에서 몸져누운 그녀는 1641년 12월 13일에 그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안시로 옮겨져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의 무덤 곁에 묻혔다. 그녀는 1751년 11월 21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어 1769년부터 로마 전례력에 포함되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가 쓴 “신심생활 입문”(The Introduction to the Devout Life)에 잘 나타나 있다.
2001년 12월 18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에 의해 성녀 축일의 전례적 기념일이 12월 12일에서 8월 12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1999년 3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자로 선포한 ‘과달루페(Guadalupe) 성모 축일’과 같은 날이어서 전례적인 기념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8월 18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