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역사는 다시써야 한다. 고구려는 요서지방에서 발흥했고,, 북연이 항복해 온 거대 왕국이었다
○고구려는 초기에도 요서에서 후한과 싸웠고, 고구려 발상지는 압록강이 아니라,요서지방이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 비류수 부근에서 도읍을 하고 나라를 세웟는데, 이 비류수는 압록강 지류가 아니라, 요서지방에 있는 비류수로 보아랴 한다.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 침략 당시 비류수에서 크게 싸워 처음에는 대패 했다가, 후에 비류수에서 크게 이기고 고구려를 침략한 것도 압록강 지류에 있는 비류수가 아니라, 요서 지방에 있는 비류수이어서 최소한 난하 이거나, 난하 서쪽 요서 지방의 조백하 등 다른 강이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고구려 주몽이 압록강변이 아니라, 요서지방에서 나라릉 세우고 이 지역에서 후한과 싸운 사실을 반드리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참고: 고구려 5대 모본왕이나 6대 태조왕이 상곡, 어양, 북평, 요서 등 요서지방에서 싸웠고, 또 태조대왕은 요서지방에 10성을 쌓고 서안평까지 점령하였다고 한 것은 고구려가 압록강 지류가 아니라, 요서지방에 있는 비류수에서 나라를 세우고, 또 나라 초기에 후한(동한)과 요서지방에서 싸워 이기고 따을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 고구려에서 빼앗겼던 옛 땅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다물”이란 말을 썼는데, 이 말은 고구려가 압록강 지유의 비류수를 되찾아서 “다물”이 아니다. 이는 한나라에 빼앗겼던 요서지방의 땅을 되찾았기 때문에 “다물”이란 말을 쓴 ᄀᆞᆺㅇ,러 되찾은 땅 “다물”의 위치에 대해서도 역사적 고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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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5대 모본왕은 상곡, 어양, 북평,태원을 침략하고 싸웠다
***참고: 고구려 고주몽이 건국한 졸본 지역은 압록강 부근이 아니라, 여서지방으로 보아야 한다. 6대 모본왕이 어양, 상곡, 우북평, 태원 등지에서 싸운 것은 당시 고구려가 요서지방에 있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며, 6대 태조대왕이 요서 10성을 쌓고 서안평을 점령한 것도 고구려가 요서지방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고주몽이 건국한 비류수 지역도 요서지방이며, 걸코 압록강 지류가 될 수 없다. 한국 역사학자들은 한국의 고대사를 제대로 밝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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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6대 태조대왕은 유주사자, 요동 및 현도태수와 싸워 이겼고,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참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 초기인 6대 태조대왕 때 요서에서 후한(동한)과 싸워 이기고 10성을 쌓았다고 하였다. 이는 고구려의 발상지가 이병도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주장하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이 아니라 요서지방 부근에서 일어난 나라이며, 그 결과 6대 모본왕 때는 상곡, 어양, 우북평 등 요서지방에서 후한과 싸웠고, 6대 태조대왕은 후한과 싸워 이겨 요서 10성을 쌓은 것이다. 요서 10성은 환단고기에도 분명히 그 장소가 기록되어 있는데, 압목강변일 수가 없고, 지금의 난하인 요수 서쪽에 10개의 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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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동천왕 때 현도, 낙랑은 모두 요수 부근, 평양은 개주시 부근이었다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 출발한 곳이 중국 땅의 현도이며, 멀지 않은 곳에 비류수(沸流水)가 있음을 보인다. 현도는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조에 나와 있드시 요수(遼水)와 요동성(遼東城)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현재 주류사학자들이 엉뚱하게도 현도(玄菟)가 압록강 중류와 동가강 유역에 있다가 무순(撫順)으로 옮겼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또 유유가 거짓 항복하면서 적장을 찔러 죽이자 동천왕은 급히 위군을 공격하였고, 위군은 낙랑으로 물러갔다고 했는데(AD 267년) 위군이 물러간 낙랑이 요동에 있는 낙랑이지, 일부 한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금의 평양에 있는 낙랑이 결코 될 수 없다. 낙랑 평양설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동천왕은 21년(AD 268년) 환도성이 난리로 파괴되어 다시 도읍할 수 없으므로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사직을 옮겼다.”고 했는데, 여기에 표시된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지금의 평양은 장수왕 15년(AD 506년)이므로 동천왕이 천도한 평양은 현도군(玄菟郡) 개마현(蓋馬縣) 개마대산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현재 요령반도 중간의 개주(蓋州)시다. 단재 신채호는 ‘평양패수고’에서 개주시 조금 위의 요령성 해성(海城)시를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고 위당 정인보(鄭寅普)도 1946년 ‘조선사연구 상(上)’에서 ‘낙랑군 조선현은 지금 평양과 원래 무관하다’면서 신채호처럼 해성현을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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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속국이었던 중국 북연은 장수왕때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참고: 북위와 함께 중국 대륙의 북쪽에서 중국을 양분하고 있던 북연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곡구려의 속국이 되었으며, 장수왕 때는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기록되지 않고 있으며, 북연이 항북한 후 북연의 영토 중에서 어느 정도가 고구려 땅에 편입되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의 업적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확인하고 그 영토를 확인해야 하며, 그 이후 수양제가 고구려가 갈발지간(갈석과 발해 지역의 땅)을 숭취해 있었다고 한 점을 상기하여 갈석산의 위치와 하북성 발해현의 위치를 재 확인하고 고구려의 영토 범위를 재 정립히야 한다. 삼국사기의 해설서나 고구려의 역사는 식민사학이 아닌 정통사학으로 다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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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도 한사군은 대륙 요서에 있었다. 한강이북 한사군설은 폐지되어야 한다
***참고: 삼국사기 기록을 보더라도 한사군은 결코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요서지방에 있었다. 또 고구려가 건국한 비류수 지역도 압록강 중류가 아니라, 요서지방에 있었고, 고구려 건국지역은 요서지역에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삼국사기에 펴양에 대한 기록이 여러번 나오는데, 연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수축한 평양을 비롯하여 여러 평야으로 기록된 지역이 지금의 평양이 아닌 요서지방(개평 또는 진황도시 노룡현 추정)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수양제가 침략할 당시 수양제는 고구려가 발갈지간(하북성 발해신구과 진황도시 갈석산)을 점령하고 있다고 하면서 112만 대군을 징발하여 고구려를 침략하였는데, 수양제의 좌12군과 우12군의 침략경로인 조선현(지금의 진황도시 노룡현)을 비롯한 한사군의 대부분 현들이 모두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어서, 강단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한반도 내 한사군설은 해괴하고 왜곡된 일본인의 주장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며, 틀린 학설이고 틀린 주장이다. 반드시 바로 잡고 역사를 바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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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삼국사기를 보면, 수양제는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좌12군(左十二軍)은 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道)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은 1) 점선(점제현),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道)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진서(晉書)에 나타난 서진 당시 또는 그 이후 낙랑군은 (朝鮮조선, 屯有둔유, 渾彌혼미, 遂城수성, 누方누방, 駟望사망)이고,
대방군은 (列口열구, 長岑장잠, 提奚제해, 含資함자. 海冥해명,呑列탄열) 6개의 속현이 기록되어 있는데, 낙랑군과 그 속현도 대부분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었고, 대방과 그 속현인 잠잠, 명해, 함자, 제해도 모두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어서 이들 낙랑과 대방 지역은 모두 요소 고구려 국경지역의 수양제 침략경로에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루속히 훌륭한 역사학자가 나와서 잘못된 한국고대사를 바로잡고, 고조선의 역사, 한사군의 역사와 위치 및 고구려의 역사를 바로잡고 새로 써 주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