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려다가 일본군을 막게 된 미국 육군 장성.
윌리엄 S 그레이브스 (1865년 3월 27일 - 1940년 2월 27일) 의 회고.
(시베리아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한 이유중 하나는 일본 황군의 지원 때문이었다. ????)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듬해인 1918년, 그레이브스는
미군 제8사단의 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적백내전이 한창인 시베리아로 파견되었다.
미군의 1918년
시베리아 간섭목적은 러시아 내전 피난민 구호, 콜차크 백파 정권 지원, 연해주 등지의 백파 정권 지원, 체코군단 귀국 지원 등이었고
이는 사실상 1917년 볼셰비키 공산혁명으로 전세계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던
공산주의를 방지하고, 시베리아라도 백파계 러시아 국가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이 무렵 미군 육군 참모총장도 소장 계급이었던 시기였고,
1차 세계대전 유럽 전선에 미군 사령관으로 파견된 퍼싱 장군도 처음에는 소장 계급으로 갔기에 준장 계급은 낮은 계급이 아니었다.
또 1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 육군의 규모는 13만명도 되지 않았기에 사단 자체도 많지 않았다.
그레이브스는 준장은 1918년 9월 1일에 시베리아에 상륙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철저히 비정치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연합국 동료들, 국무부, 그리고 여러 러시아 그룹들과 자주 갈등을 빚었다.
미국 간섭군(A.E.F.)이라고 불리는 부대에 약 7,000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참모총장인 조셉 D. 리치의 도움을 받은 그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계속 운영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결정하고 철도를 운영할 많은 철도 전문가를 영입했다.
물론 이 기간중 오인으로 인해 미군 희생자가 소수 발생했다.
미군은 콜차크 제독의 백군을 도우라는 강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적백내전에 백파를 일방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초기에 그레이브스는 콜차크와 그의 정부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키웠다.
일본 황군, 시묘노프, 칼미코프 등 살인자에 대한 고발을 노골적으로 회고록에 기술하였다.
시베리아에서의 볼셰비키 승리는 심지어 일본군 덕분?
이라는 주장도 하였다.
(그럼 일본군의 시베리아 침략(일제용어 : 시베리아 출병) 목적은 무고한 주민을 약탈 강간 학살하여 백파 러시아인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공산당과 레닌정권을 돕는 것이었다????)
그레이브스는 시베리아에 주둔한 영국군, 프랑스군, 일본군이 모두 연합국의 명시된 목표를 넘어서는 이기적인 정치적 야망을 좇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군은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오늘날 중국측 주장과 일치된다.
즉, 열강들의 시베리아 무력 간섭 목적은
이전의 제정러시아 차르 동맹국들에게 제공한 물자를 보호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러시아를 떠날 예정인 외국 연합군(주로 체코)의 안전한 행동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레이브스는 영국과 프랑스가 볼셰비키 군대를 억압하려 한다고 믿었다.
(일본군의 대규모 간섭과 끊임 없는 학살과 만행 = 일본군 때문에 시베리아에서 수십여만명이 죽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레이브스는 또한 일본이 동부 시베리아의 일부(바이칼 호수 동쪽의 아무르 지역)를 합병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일본은 시베리아에 약 72,000명의 병력을 파병했는데, 이는 시베리아에 공동으로 간섭했던 연합군이 최초 약속한 12,000명의 병력의 약 6배에 달했다.
미군은 거의 2년 동안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운영했고, 대기근과 적백내전으로 도둑, 강도 등이 시베리아 시골을 배회하면서 정치 상황은 혼란스러워졌다.
미군은 주요 목표를 달성했고 체코 군단 전체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1920년 4월 1일 마지막 미군이 시베리아를 떠났다.
역사가 벤슨 보브릭은 러시아 적백내전 시기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전투에서 죽었지만, 그레이브스에 대해 "이 슬픈 사태 속에서, 그는 유일하게 명예로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그레이브스는 1925년 7월 11일 소장으로 진급했고, 1928년 육군에서 은퇴했다.
그 후 그는 시베리아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제목은 '미국의 시베리아 모험 1918-20년' (America's Siberian Adventure 1918-1920)이었다.
러시아 적백내전 시기
동시베리아에 백파계 정권을 세워 일본군과 합세해 식민지배를 받던 조선인, 러시아인들을 수년간 학살하고 약탈 강간하던 백파계 정권은
(1) 지옥의 사람들
(2) 적
(3) 사라진 도시
(4) 니항의 죽음 (니콜라예프스크의 죽음)
등을 비롯한 많은 선전 도서와 반공(=반볼셰비키) 신문을 출판하고 볼셰비키(공산당)의 만행을 폭로했지만
당시 중립을 지키고자 했던
미국 대통령 윌슨의 지지를 받았던 그레이브스 등의 의견에 따르면
백파 군대와 일제의 잦은 민간인 학살이 러시아 적백내전 당시 시베리아에서의 주민 민심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일본의 철저한 동맹이었던
미군, 중국조차 등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윌리엄 시드니 그레이브스 저, '미국의 시베리아 모험 1918-1920년' (America's Siberian Adventure 1918-1920)
https://www.youtube.com/watch?si=r9-OzT7C8keIWWYA&v=7H3Y_qvwGdY&feature=youtu.be
※ 출처
#10 - America's Siberian adventure, 1918-1920 - Full View | HathiTrust Digital Library
America's Siberian Adventure (marxists.org)
요약편 : 1920년 러시아 내전기 일제 침략군이 전멸한 니항 사건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Николаевский инцидент)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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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려다가 일본 황군을 막게된 미군 장성 =그레이브스. 러시아 적백내전 시기 시베리아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한 이유중 하나는 일본 황군의 지원 때문이었다 ?
1918년 시베리아를 침략한 일본군. 이 사진에 나오는 일본군은 1920년 니항사건으로 전원 사망함
Allied Expeditionary Forces in Siberia, 1918-1919 - YouTube
일본군의 1918년 시베리아 침략로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