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수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살게 하소서.
나는 논어의 많은 말씀 중에 이인편에 있는 이 말씀을 가장 좋아합니다.
자왈; 삼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 유.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자출, 문인문왈; 하위야? 증자왈 ;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되어 있다.” 증자는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제자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다.”
어느 날 한문 공부를 하다가 ‘유’(唯 : 오직 유)자를 공부하면서 그 글자가 바로 교회에서 말하는 아멘(Amen) 이라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 증자는 공자의 말씀에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공자의 모든 도는 충서(忠恕)에 있다고 말합니다. 충(忠)은 성실함이며, 모든 일이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충(忠)은 하느님을 중심(中心)으로 이어져 있으며 매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과 매여져 있는 그 끈은 절대로 끊어질 수 없으며,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그 인연도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 약속한 그 맹세로 절대로 깨질 수 없으며, 인간이 서로 맺은 인연에도 하느님이 개입되어 있으면 절대로 끊어질 수 없고, 풀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공동체도 교회도 주님께서 세워주셨고, 그 안에서의 인연과 약속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조하십니다.
1.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갈 때 나와 하느님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2. 그래도 그 사람이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같이 공동체를 이루어 나와 그의 하느님이 함께 찾아가자고 하십니다.
3.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에서 찾아간다면, 공동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도 같이 찾아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공동체까지도 나서야 한다고 하십니다. 땅에서 맺은 것을 하늘에서도 맺어 주신다는 그 소중함을 사람들이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소중한 기도임을 다시 새겨 주십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 받는 사람이 같은 마음(如心)이어야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과 죄를 용서하는 사람이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인(仁)의 최고 가치로 두고, 모든 도(道)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한다는 것은 푼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일을 해놓고 일이 힘들거나 일을 끝마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그만두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풀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은 교회 공동체를 세워주시고 그 용서하심에 당신이 직접 개입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의 권한을 위임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권한을 당신의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위임하시며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그렇게 용서하면서 살기를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당신이 항상 옆에서 보증을 서 주시겠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겠다고 하시니 용기를 내어 용서하는 일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역거운 짓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1-7; 10,18-22
주님께서는 1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2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3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5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6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7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10,18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 커룹들 위에 멈추었다.
19 그러자 커룹들은 날개를 펴고, 내가 보는 앞에서 땅에서 치솟았다.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들도 옆에서 함께 나갔다. 그들이 주님의 집 동쪽 대문 어귀에 멈추는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 나는 크바르 강 가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떠받들고 있는 생물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커룹임을 알 수 있었다.
21 그들은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넷인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형상이 있었다.
22 또 그들의 얼굴 형상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보았던 모습,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축일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Maximilian Mary Kolbe)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 연도 : 1894-1941년
같은 이름 : 꼴베, 막시밀리아누스, 막시밀리안, 막씨밀리아노, 막씨밀리아누스, 맥시밀리안, 맥시밀리언
1894년 1월 7일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Zdunska Wola)에서 태어난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Maximilianus-Maria Kolbe, 또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는 라이문두스(Raimund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부모의 신앙교육 덕분에 강한 성모 신심을 갖고 성장한 그는 1907년 10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레오폴리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10년 9월 4일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면서 막시밀리아누스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이곳에서는 그는 중등 교육과 수련을 받고 1911년 9월 5일 첫서원을 하고 1912년 12월 로마로 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로마의 프란치스코회 국제 신학원에 머물면서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보나벤투라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 23세였던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는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신학원장 신부의 허락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Militia Immaculatae)라는 모임을 결성했다(1917년 10월 16일). 이 모임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철저히 봉헌하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활동하는 일종의 신심 단체이다.
1914년 11월 1일 종신서원을 하고, 1918년 4월 28일 사제품을 받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는 1919년에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왔다. 귀국 직후 크라쿠프(Krakow)의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동료 수사들은 물론 대학생들과 군종신부들 안에서 기사회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귀국할 때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던 그는 1년 6개월을 요양소에서 생활했고, 1921년부터는 한쪽 폐로만 살아야 했다. 1922년부터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Rycerz Niepokalanje)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매스 미디어를 통한 사도직을 시작했다. 이 잡지는 초기에 그로드노(Grodno)에서 발행되다가, 1927년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Miepokalanow)이라는 수도 생활 공동체에서 발행하였다. 이 마을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가 바르샤바(Warszawa)에서 40km 떨어진 방대한 지역에 설립한 공동체이다. 그리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나가사키 근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뜰’이라는 작은 수도 마을을 세우고,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발행했다. 6년 동안 일본 선교를 위해 노력한 그는 중국 · 한국 · 인도에도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으나 외부적인 이유로 실현하지 못했다.
1936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 총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전 세계에 분원을 세우는데 큰 공을 들였다. 1938년 무렵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 분원이 전 세계에 762개나 되었다. 폴란드 내에서 유명해진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나치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가 곧 풀려났다. 이후 그는 가난한 이들과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에 거주토록 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노력했다. 1941년 그가 “자유”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자, 나치는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2월 17일 그를 체포하여 바르샤바의 파비악 형무소에 감금했다가 2월 28일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로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저명한 가톨릭 신부라는 이유로 더욱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료 수감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격려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말경, 한 수감자가 수용소를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치는 한 명이 탈출하면 그 벌로 열 명을 처형했다. 나치에 의해 지목된 열 명의 처형 대상자 중 한 폴란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고 울부짖자 이를 본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자원해서 대신 죽겠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치의 허락을 받고 다른 아홉 명과 함께 지하 감옥에 갇힌 그는 아사형에 처해졌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굶어 죽을 때까지 2주 이상을 물과 음식 없이 생존한 그에게 나치는 결국 독극물을 주사했고, 그는 1941년 8월 14일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 아우슈비츠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그의 시신은 아우슈비츠의 시신 소각장에서 불태워지고 말았다.
오늘날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가 죽음을 맞이한 감옥은 수많은 순례자가 찾는 장소가 되었다. 1948년 그에 대한 시복 절차가 파도바(Padova)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1971년 10월 17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나치 희생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복자품에 올랐다. 1982년 10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에게 ‘자비의 순교자’(Martyr of Charity)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시성식을 거행했다.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특별한 공경을 바친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수감자들의 주보성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콜베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