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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우리 에뜨랑제님 프리랜서 잖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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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lancer
현재는 많은 분야 특히 자유계약자들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자들이 이것을
직업란에 쓰는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
프리렌서라는 것은 아이반호를 쓴 Walter Scott가 처음 기록한 말로 알려져있는데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는 아닐것으로 생각된다.
1860년대에 프리랜서(또는 프리렌서)는 비유적인 뜻으로 사용되다가 1903년에 출판된
옥스퍼드 사전에서 부터 자유계약자나 자유기고가 들을 지칭하는 말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프리랜서는 여자들이 특히 많은데, 본인의 누이들도 마찬가지로 프리랜서
들이다. 그래서 누이들에게 프리랜서의 원어적인 표현을 말해주면 별로 반응이 좋지 못하다
" 프리랜서면 용병이네?"
" ........................................"
이게 무슨 얘기냐고?
프리랜서란 한때 영어로 Mercenary. 즉 돈을 목적으로 고용된 군사조직을 의미하는 오래된
단어였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랜서의 기원
lancer란 lance 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자를 말한다.
이 랜스(렌스)란 일반적으로 창을 말하는데 어떤한 창인지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는데
고대 로마의 보조병들의 짧은 투창인 Lance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단어의 원류가
이베리아반도에서 나왔다고도 하고 그리스에서, 켈트족 언어에서 나왔다고도 하는데 분명하게 확인
되고 있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로마군단병의 투창인 필럼과는 다른 물건이라는 것이다.
로마보조병들은 여러 종류의 창을 사용했는데, 이는 필럼이라는 창은 투창으로만 사용하여 전투를
수행한 정규 군단병들과는 다른 면모였다 로마제국 후기로 가면 군단병들도 투창이 아니라 찌르는
창을 사용하였지만 보조병들의 병제는 그들의 원 민족의 병제를 사용했기에 군단병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즉 찌르는 창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방식은 그리스 중장보병의 장창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시절에 그리스의 경장보병들의 주요무기가 투창이기도 했다.
이미 고대 중동과 지중해주변 군대에서 짧은 투창은 창이라는 무기가 만들어질때 부터 대량
사용되었기 때문에 원래 누구의 무기였는가를 주장하기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군사셰계에 똘이 장군님이 올려주신 로마군단 그림
로마군단 보병의 투창인 필럼
아래 그림은 똘이 장군님이 올려주신 그림의 로마기병 그림으로 기병의 등에 작은 통에 있는 것이 화살이 아니고 투창인
Lancea 이다
로마 기본 병제에서, 특히 로마기병들의 무기중 투창은 매우 중요한 무기였는데 일반적으로
로마보조병들이 기병과 경보병을 담당했기에 이들의 무기로 Lancea가사용됐을 것이다.
특히 기병들은 기병의 창통에 6-7개의 짧은 투창을 넣고 다녔다는 베게티우스(영어로는
베지티우스)의 기록에서 볼때 기병들의 무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보조병들이 투창만 사용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들의 창도 찌르는 방식이었지만 보조병 보병도 던지는 창을 사용하였고 역시 기병도 사용하
였다.
아래 기병의 묘비로 보면 등자가 발명되기 전의 로마기병의 창을 쥐는 방식이 위에서 아래
로 찌르는 방식이었고 중세 토머먼트식 방식은 아니었다. 즉 찍는 창이었다
로마기병들의 묘비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디자인이다.
위 사진의 윗부분에 있는 창촉은 아마 스코르피오 라는 대형 기계활용 화살의 겻으로 보이며 아래 쪽이 로마보조병들의
Lancea 일것이다.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토머먼트식으로 창을 잡으면 말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대부분 이렇
게 역사학자들이 설명하지만 중세 노르만의 영국 침공에 대하여 그림으로 기록한 타이피스리
-일종의 천에 그림을 짜넣은 것으로 중세에 건물 주위에 걸어놓았다- 에서 노르만디공
월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에 기병으로 영국 보병들을 공격한 것을 보면 역시 창을 로마기병
들과 같이 잡고 있다.
Bayeux Tapestry (Tapisserie de Bayeux)
1066년 10월 14일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당시 영국왕 헤롤드의 군대와 헤이스팅스에서 벌인 전투를 기록한 직물로 바이외 라는
프랑스의 성 벽에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직조하여 걸려있는 것으로 영국 중세 무기와 선박 , 당시 양식을 나타내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한편 고대 중근동에서는 페르시아와 아르메니아 지방의 중장갑에 긴창을 쓰는 기병인 카타프락트
cataphract 는 양손으로 사용하여 찌르는 창을 사용하였다
비슷한 것으로 로마 제국 후기에 사마르티아인 기병과 클라바니리 라는 긴창을 쓰던 기병
들은 콘토스 contus 라는 창을 사용하였다. 콘토스는 페르시아 기병의4미터짜리 긴 창인
Kontos를 로마에서 채용한 것으로 동로마제국인 비잔틴의 kontarion이라는 기병들이 사용
하게 된다.
이란에 있는 카타프락트
lance 라는 것은 중세 말에는 주로 Joust라고 하는 마상 창시합 즉 토너먼트에서 기사들이
사용하는 찌르는 창으로 자리잡게 된다. 보병들의 창은 pike였다.
모든 창은 영어로 spear라고 보면 될것이다
13세기 조스팅-위키페디아 출처
15th century joust, believed to be between Sir Roger Drury and Sir Andrew Boteler
Lances fournies
중세군대의 분대 단위로 한명의 기사에게 종속된 종과 궁수등의 나타낸다. 4-10명으로 구성
됐는데 영주나 귀족들의 휘하에 봉급을 받고 구성된 부대였다.
knight banneret라고 칭한 주요 상급 기사들의 경우 여러 렌스들을 거느렸다.
이것이 약100개가 모이면 프랑스 어로 Compagnie d'ordonnance 이라는 병력이 약 700명 정도
가 되는 부대가 형성되었다.
브루군디의 공작인 볼트의 찰스 Charles the Bold 는 그의 휘하에 다른 9명의 장수를 두고
각각 1250 렌스를 두어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난 대병력인 1만명의 부대를 거느렸다.
이 병력을 전부 한번에 전투에 모집했다면 그 비용이 엄쳥났을 것이다.
중세의 모든 기사들은 협약인(계약인이라고도 함)으로 귀족이나 영주에게 충성하고 영주는
협약인으로 왕에게 충성하는 봉건제도로서는 대규모 상비군을 둘만한 재정이 없었기에 필요
에 의해서 이들을 소집하게 되었다.
왕에 의한 이런 소집에 세금문제가 결부되어 발생한 문제로 인한 사건이 바로 '마그나카르타'
이다.
Compagnie d'ordonnance는 중세에는 군대라기 보다 도적단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왜 이같이 중세에 용병들이 득실했는가는 당시 프랑스와 영국등에서 왕의 전쟁 소집에 협약인들이
응할수 있는 기간이 40일이었다. 그 이후에는 왕이 소집된 병력에게 봉급을 지불해야 했는데 이것
이 지급되지 않으면 근처를 약탈하게 된다.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소집령의 경우 약탈로 비용을
충당하지만 방어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 용병대들은 방어전에서도 약탈을 하고는 했는데 이게 이들을 고용한 왕의 나라까지 약
탈했으니 문제였다.
영국의 경우 섬이라 이런 용병들이 영국 자체에서 유지되지는 않았는데 외적의 침공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 그것이지만 노르망디 지역과 서부 프랑스의 경우 영국영토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이 용병단
들이 있었을 것이 자명하다
이들은 적아 구분없이 고용되는 경우도 흔했는데 특히 15세기경의 이탈리아에서는 늘쌍 용병대장이
상대편 진영을 옮겨다녀서 어떤 용병대장은 이러다가 잡혀 교수형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러고도 천수
를 누린 자도 있었다.
프랑스 지역에서의 기사들에 독일인 기사들이 꽤 많아 존재했고 제노아인 기사나 석궁부대들이 프랑스
왕의 부대에서 종군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을 보면 알수가 있다. 이들은 봉토를 받고 협약된 기사들이
아니라 Lances fournies 라 보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만약 포로가 된다면 당시 관행대로 포로 교환금을 받을수 있으니 살려 둘지 그것은 미지수 였다.
백년 전쟁 기간중 영국이 프랑스 포로 기사들을 살해한 경우가 2-3 번 정도였는데 백년전쟁동안 포로가
되어서 포로 교환금을 내놓느라 파산한 기사들이 수북했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이들 용병들이 포로 지참
금을 줄지 확인이 안되면 죽는 것이다
gendarme(쟈안다름 이라고 읽는덴다...)
중세 말기와 근세 초기의 프랑스 기사들인 gendarme.
조스팅, 즉 토너먼트식 창인 렌스를 들고 전투에 실제로 나갔다
국왕의 군사 소집일 40일이 지나면 프랑스 국왕은 이들에게 기댈수 밖에 없었다.
15 gendarme 중대가 약 100 렌스로 구성되었다.
** gendarme는 현대어에는 경찰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이유는 18세기와 19세기 프랑스에서 경찰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이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
백년 전쟁 시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1000 랜스, 2200랜스 , 무려 4000 랜스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즉 랜스와 gendarme는 중세시대 당시 기병전투단을 부르는 단위라 할수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줄 봉급이었다.
15세기 후반으로 가면
gendarmes d'ordonnance companies 에 기병과 보병들 포함해서 핸드건 즉 화약 무기 사수까지 포함되었다.
16세기에는 이 이름이 붙은 기사들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1507년 제노아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그림으로 당시 프랑스 gendarme 들이다.
프랑스 왕의 경우 고용된 용병단이 자기 나라에서 문제를 일으켜도 제재할 방도가 없었는데 이들을 처리
하려고 군대를 소집하려고 해도 용병단과 이해관계가 있는 영주나 기사들이 동의해줄지도 의문이어서
이들을 일부러 처리할 목적으로 험준한 스위스 산악 지방으로 침공한 프랑스 왕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왕들은 말만 왕이었지 그다지 부유하지 못했던 것이 한가지 이유였는데 15세기 이후 프랑스에서
인두세라는 세금을 백성들에게 매겨서 이것으로 운영되는 약 만명규모의 상비군을 조직하게 되면서
용병단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의 멸망이후 도시국가들이 번성하게 되면서 용병단은 오래지속되는데
명목상 전쟁이 자주 벌어져서 어느 전투에서는 낙마하여 진흙에서 질식사한 기사 한명만이 죽은 사람
하나였다는 얘기는 오래도록 회자 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용병단은 스위스 지역출신들로 제노아인 기병들과 석궁수들, 그리고 중세 말기에 악명을
떨친 사나운 스위스 장창대 들이 있으며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의 전장에서 자주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 사나운 스위스 장창대로 인해 박살난 프랑스 측 기사들로 인해 오히려 프리랜서들이 사라지
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화기의 발전으로 인하여 기사들의 중요도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기사들을 이용한 장창 충격력의 효과는
전장에서 빛을 잃어갔는데 헨리 8세 당시 까지는 그래도 랜스를 이용한 조스팅, 즉 기사들간의 마창창
시합인 토너먼트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앙리 4세는 토너먼트 도중 이 창, 즉 랜스 끝을 안전
하게 하기 위해 감아놓은 천이 풀리면서 앙리4세의 투구 면갑의 눈부분을 적중. 사망하게 되면서 프랑
스의 조스팅은결별을 고한다.
16세기는 과거 중세의 무기체계와 미래의 화약 무기체계가 혼재되어 매우 혼란한 전장터였다.
아퀴버스와 머스켓이 대부분의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시대가 되자 기사들은 단지 지휘관으로 변질되고
기병들의 무기가 피스톨과 검으로 변화되는 시대가 되면서도 용병단은 존속하였지만 더이상 랜스를 쓰는
랜서들은 최소한 서유럽의 전장에서는 16세기 말부터는 거의 사라지게 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Arquebus를 사격하는 16세기 보병, 총 지지용 스틱이 따로 있어야 했다.
16새기 후반의 독일 용병 기병인 Reiters , 검은 기수들이라고 하는데 이때 이미 기병들은 창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창 대신 차륜식 권총(황철광식) 든 독일 기병
이제 기병들은 정찰, 기습, 측면 공격등을 주요 전술로 사용하고 예전처럼 전장의 꽃이었던 시대를 지나
가버렸다. 이들은 드라곤이라는 용기병으로 해석되는 총을 쏘는 기병들이 등장하게된다
적들에게 맹렬히 돌격하여 적을 창으로 찌르거나 칼로 베는 것이 아니라 총을 쏘려는 기병들이 된것이다.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아돌푸스 왕의 시대에 널리 사용되면 기병들이었다.
이것도 곧 동유럽에서 들어온 샤베르라는 가볍고 탄성이 뛰어난 한손으로 휘두를수 있는 기병만도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전장에서 샤베르를 가진 검기병이라는 병종이 등장한다.
이들을 후사르 라고 칭한다.(샤베르는 프랑스어로 영어로는 세이버 sabre 또는 saber하고 함,)
이것이 진짜 폴란드의 기병 후사르이다. 칼을 두개 차고 있는데 칼이 굽은 것을 샤베르
즉 영어로 세이버라고 한다.
세이버를 휘두르는 나폴레옹시대 흉갑기병- 다른 나라에서는 후사르라고 했다.
피스톨로 공격하던 기병이 갑자기 다시 이 새로운 기병도(샤베르/세이버)로 다시 바뀌게 된것은 당시
총기가 한계성 때문이었다. 구스타프 아돌푸스 왕 시절에 기병들은 일제히 적진으로 달려나가 총을
발사하고 뒤로 돌아 가버렸는데 이들의 검은 요즘의 펜싱용 검과 동일한 무기였기 때문에 찌르는 것이
주목적이어서 마상에 휘두르기에는 길이도 짧고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Gustavus Adolphus 국왕의 최후, 뤼첸 전투
이 당시 기병의 검은 당연히 상대를 벨수 있지만 여전히 갑옷을 입는 적이 많아 베기보가 찌르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보듯이 창을 든 기병은 보이지 않는다.
16세기의 레이피어 rapier 식 기병도
하지만 샤베르/세이버라는 검의 등장은 기병들이 적 보병대 대열을 그대로 뚫고 들어가 이검으로 적들
을 마구 베어도 되는 시대가 된것이다.
보병대도 총검(바요넷)이 사용되기 전까지 화승총(머스켓) 대열에 언제나 기병을 방어하기 위한 장창병
들을 대열에 추가하고 있었다 이 보병들이 경계해야 하는 적 기병들은 용기병(드라곤)이 아니라 과거의
창을 든 창기병(렌서)들이었는데 용기병들은 총을 발사하고 보병대열로 진입하기 힘들었다.
총을 버리거나 집어 놓고 검을 빼들어야 하는데 당시 기병들의 황철광 피스톨은 사정거리가 짧아서 총을
쏜다음 바로 검으로 무기를 바꾸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보병대에게 치명적인 적은 창기병들이었다.
황철광식 권총 Wheellock
데미 렌서 Demi-lancer(16-17세기초까지의 창기병) 보병을 상대로 마지막으로 위력을 떨친
브루군디의 기병갑옷
그런데 이미 위에 전술 한대로 , 어느 틈엔가 이들은 창보다는 권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cuirassiers (프랑스 흉갑기병)
" 랜스 보다 사정거리가 길거덩!!'
보병대열의 거의 반은 이들을 보호하는 장창병이었기 때문에 병력 운용효율면에서 그렇게 좋지 못했다.
거기에 창기병들도 나름 문제가 있어서 펜싱검 스타일의 무기가 유행이었던 시절이다 보니 적보병대열에
근접하여 창이란 물건을 휘두를수 없기에 적 대열을 뚫고 통과해나가야만 했다.
이럴때 보병대의 총기는 부싯돌 발화식 화승총(플린트 락 머스킷)으로 진화하였고 더불어 총검까지
장착하게 되어 장창병들이 전부 총병으로 진화하게 된다.
대표적인 부싯돌 발화식 머스켓 , 브라운 베스와 총검(바요냇)
브라운 베스는 영국이 역사상 가장 오래 사용한 총기이다.
총검의 장착으로 Pike and shot 이라는 혼성 대열이 필요없어졌다.
창기병들은 과거에 100명의 적보병대에서 약 50명이 발사하는 총알과 50명의 장창만 걱정하면 됐지만
이제는 100명전부의 총에서 발사하는 총알과 100명의 총검을 걱정하는 시대로 변화하게 된다.
창기병들은 전장에서 별로 쓸모없는 병종으로 바뀔 위기였다.
이미 16세기에 pikemen이라는 장창병들로 인해 렌서들의 공격은 종종 뭉그러트려지기 일수였기에
이런 화승총과의 조합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보병대열은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흐트러지면 공격 당하기 딱 좋았고 기병에 대한
방어 대형이 잘 되어있지 않은 보병대를 공격하는데 후사르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후사르 들이 적 보병대에게 근접하여 보병들을 도륙할수 있는 상황일때 보다 긴 무기로 이들을
공격하기 딱 좋은 병종이 있었으니 그것이 창기병 바로 렌서 였다.
영화 워터루에 보면 영국 후사르가 프랑스 보병대에 잘못 돌격했다가 공격해 오는 프랑스 렌서들을 보고
뒤를 돌아 도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영국 후사르의 지휘관이 프랑스 렌서들에게 따라 잡혀
렌스로 난자 당하는 장면이 있다.(동영상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ㅜㅜ)
나폴레옹 전쟁 기대에 다시 렌서들이 새롭게 사용되었다. 물론 더이상 이들이 용병이거나 마상 창시합
을 하는 시대는 아니었고 적 보병대에 돌진하는 일도 드물었다.
렌스의 길이도 많이 짧아져서 후사르만 공격할수 있는 길이로 줄어들었고 이 짧은 길이의 렌스는 보병
과 근접에서 상대하기에도 휠씬 편해졌다 물론 자주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렌서들은 (렌스를 사용하는
기병이라는 뜻이라는 것은 아실테고) 순전히 후사르라는 적을 상대하게 된다.
프랑스 랜서- 샤베르 보다는 랜스가 더 길거덩!"
드라곤(용기병)은 이제 모든 기병들이 피스톨이나 짧은 기병총(카빈)을 소지하여 총격전에 참여할수있
게 된다.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 총기가 매우 발달하여 후사르가 퇴색하고 더불어 렌서도 퇴색하지만 여전히 드라곤
은 지금으로 말하면 신속 대응군으로 말을 타고 이동하는 보병대로 자주 활용되었다.
그리고 후사르와 렌서는 드라곤과 더불어 그냥 기병대로 인식되고 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점이 20세기
초부터였다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군 아일랜드 랜서들
제1차세계대전 초기에도 여전히 후사르와 렌서들이 보병대에 돌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지만 이제
기병대 자체로 전투를 치루어 성공한 경우는 팔레스타인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다.
20세기 내내 후사르와 렌서 라는 이름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라지고 오직 영국의 전차부대의 전통적인
이름으로만 남아있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영국은 이마저도 많이 축소하여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의장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프리렌서 라는 용어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지금의 렌서들은 말을 탈줄도 모르고 창을 쓸
줄도 모르며 심지어 렌서의 원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한 100-200년뒤에 기술이 발달하여 스나이퍼가 사라지면 쫍집게 주식 중개인을 스나이퍼라고
부르는 시대가 도래할까??
단 한가지만 기억해두자
프리랜서는 원래 미계약 용병들을 말하는 단어 였다는 것을..
아래 그림은
The Marshal, 즉 월리엄 마샬이 조스팅(토너먼트)에서 Baldwin de Guisnes를 떨어트리는 장면
그가 들고 있는 것이 Lance 다
그러나 랜스를 사용하는 랜서이기는 하나 먀샬은 기사였다.
다음 글은 중세 영국 아니 유럽 최고의 기사로 꼽히는 The Marshal에 대한 글입니다.
첫댓글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