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루와 아랑각을 찾아
연일 폭염 경보와 열대야가 이어지는 칠월 중순 화요일 새벽이다. 전날 스마트폰 활용 수업을 가는 길에 주남지를 둘러 ‘여름 주남지’를 한 수 남겼다. “철새가 놀다 떠난 드넓은 수면 위로 / 싱그런 잎을 펼친 연들이 무성해져 / 한여름 뙤약볕에도 제철 꽃을 피워라 // 겨울새 수천수만 그보다 많을 송이 / 봉긋한 꽃대에서 우아한 꽃을 피워 / 여기가 불국 정토니 발걸음을 멈췄네”
장마라도 우리 지역은 비다운 비가 드문 마른장마다. 이른 새벽이나 아침나절만 야외에서 보내고 점심나절 이후는 주로 도서관에 머물다 귀가한다. 주중 화요일 이른 새벽은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걸어 퇴촌삼거리 창원천 수변공원 산책로 체육 기구에 매달려 한동안 몸을 단련했다. 성근 빗방울이 듣고 시원한 바람까지 간간이 스쳐 지나 더운 줄 모르고 운동을 했다.
몸을 단련한 천변에서 퇴촌교를 건너 창원천 상류로 올라 도청 뒷길에서 창원중앙역으로 갔다. 진주를 출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통근 열차를 타고 진례터널을 지나니 대피선에서 수서행 SRT를 앞세워 보냈다. 진영역과 한림정역을 거쳐 낙동강 강심으로 놓인 철교를 건너 삼랑진에서 예각을 틀어 경부선을 탔다. 밀양강과 대구부산 고속도로 곁을 따라 밀양역에 닿아 내렸다.
역사를 신축하느라 공사 자재가 어지러운 현장을 벗어나 교동행 1번 시내버스로 가곡동과 용두교를 건너 삼문동 초등학교 앞에 내렸다. 진주 남강에서 촉석루를 대면하듯 밀양강 건너에서 영남루를 바라봤다. 밀양강에 놓인 다리를 ‘남천교’라 이르는데 밀양 동헌 남쪽으로 흘러 남천이다. 새 ‘을(乙)’자처럼 삼문동을 섬처럼 에워싸 유상곡수로 흘러 ‘을자천’으로 불러도 됨직하다.
내 청년기에 밀양에 십여 년 살아 그곳의 자연 경관과 인문 지리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 밀양의 세 곳 초등학교와 두 곳 중학교가 교직 앞 칸을 차지한다. 신혼기와 두 아들도 삼랑진과 수산에서 태어나 창원으로 옮겨 살았다. 밀양은 예전에 두터운 교분을 나눈 지기들이 몇몇 있으나 가급적 교류를 절제한다. 보름 전 용두목 잔도를 걸었을 적에도 소리 없는 바람처럼 다녀왔다.
이번에는 외부로도 널리 알려진 밀양강 강변 삼문동을 바라보는 영남루와 아랑각을 답사하는 발걸음이다. 연전 영남루는 그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한다는 보도를 접한 적 있다. 영남루는 밀양 도호부 객사 누정으로 고려시대부터 있던 터에 현존 누각은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익공식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진주 남강 촉석루와 평양 대동강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예전 밀양문화원과 한약방이 있던 자리를 문화재 보존지구로 매입해 들머리는 훤히 트였다. 뜨락을 오르자 웅장한 누각 좌우는 능파각과 침류각을 호위무사처럼 날개로 거느렸다.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은 천연 에어컨이었다. 누각 건너편은 단군을 모신 천진궁이고 동편으로 무봉사 언덕 사명대사 동상과 작곡가 박시춘 생가 오두막집도 복원해 놓았더랬다.
여러 명사가 남긴 시구와 서체들이 현판으로 걸린 누각에서 내려와 아랑각으로 향했다. 누각 아래 대숲이 둘러친 남향 정절문을 지난 아랑각에는 아리따운 여성의 초상화가 전면을 차지했다. 가르마 한 머리에 저고리는 남색이고 치마는 다홍색이었다. 진주의 의기사 논개 영정은 사료에 따른 실존 인물이고, 밀양 아랑은 전설에 그쳐 남원 광한루 춘향과 비슷한 성격으로 봄이 맞다.
아랑각을 나와 아동산 산책로에 용평1교와 2교를 건넜다. 가곡동에서 소머리국밥으로 요기하고 창원으로 오는 열차에서 ‘영남루 회억’을 남겼다. “용두목 여울물이 삼문동 휘감아 돈 / 아동산 언덕에다 덩그런 누각 세워 / 내로라 시인 묵객이 시문 서체 걸었다 // 적막이 쌓인 대숲 아랑각 문이 열려 / 야사로 전해 오는 부사 딸 초상화에 / 때마침 한 줄기 바람 위무하듯 스친다” 26.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