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9. 3. 화요일.
<한국국보문학> 동인지 '내 마음의 숲'에 낼 글 하나를 더 고르려고 오래 전에 프린트해 둔 묶음에서 아래 글을 발견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곶바래) 마을 태생인 나는 시골태생답게 지금도 산꽃 들꽃을 좋아한다.
퇴직한 뒤에서야 수십 년만에 모자간 둘이서 함께 살던 어머니가 집나이 아흔일곱 살이 된 지 며칠 뒤인 2015. 2. 25.에 저너머의 세상으로 여행 떠나셨기에, 나 혼자서 시골에서 살기가 뭐해서 아내가 있는 서울 아파트로 되돌아왔다.
지금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아파트 좁은 실내 공간 베란다에는 크고 작은 화분 150개가 있다.
야생화와 화목이다.
비바람이 없는 아파트 실내, 거름기 없는 화분 속의 흙 등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전혀 아니다.
화분 속의 식물은 허약해지다가 숱하게 죽는다.
나는 서해안 내 텃밭 안에 있는 식물을 좋아한다.
눈비 맞고, 바람에 먼지 날리는 친환경 자연속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씨앗을 퍼뜨리는 그런 식물을 좋아한다.
오래 전에 쓴 산문일기를 여기에 올리며, 다른 글도 더 찿아야겠다.
시들어가는 꽃이 더 좋다
TV 받침대 위에 있는 화병 하나.
쇠로 만든 화병 속에 붉은 장미가 꽃혀 있었다.
정열적인 색깔, 빨간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
얼핏 봐서는 생화처럼 보일만 했다.
그런데도 나는 조화(造花)가 싫다.
냄새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고, 시들어 퇴색하지도 않는,
벌도 날아오지 않는 꽃이 조화다.
꽃잎이 지지 않으니 열매인들 맺으랴?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꽃병에 꽃혀 있어도
냄새나지 않는 그런 꽃은 거짓이다.
내가 싫다고 하니 큰딸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마는 눈치.
나는 시들고 말라가는 그런 生花가 더 좋다.
늙어서 버려지는 그런 삶이 더 좋다.
내 할어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기고 뒤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2005. 10. 23. 바람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