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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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 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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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순종과 굴욕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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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너무 슬퍼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었던 이들은 누구나 부활하여 살아 있는 이와 재회하게 된다. 신앙인은 이 가르침을 위로로 삼아야 한다(제1독서). 희년은 50년마다 맞이하는 해방 축제다. 땅은 본디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예는 해방시켰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진정한 희년이 시작되었다고 하신다. 당신께서 오셨기에, 가난한 이들이 기쁜 소식을 듣고, 억압받는 이들은 해방될 것이라는 말씀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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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3-18 13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16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17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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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6(95),1과 3.4-5.11-12.13(◎ 13ㄴ) <선창자가 후렴을 선창하면 교우들은 후렴을 받아 반복한다.> ◎ 세상을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이어지는 시편은 선창자가 하고 교우들은 후렴을 반복한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전하여라, 겨레 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모든 신들보다 경외로운 분이시네. 민족 들의 신들은 모두 헛것이어도, 주님은 하늘을 지으셨네. ◎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 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 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 ○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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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4,1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 셨네. ◎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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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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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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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4(33),9 참조 너희는 먹고 깨달아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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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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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간절히 청하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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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은 50년마다 돌아왔습니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다음 해’가 희년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평생에 한두 번 맞이하는 대축제였습니다. 희년이 되면 누구나 자신들이 속한 ‘지파의 땅’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농사짓던 땅은 조상 때부터 상속되어 오던 ‘본디 주인’에게 돌아가게 했습니다. 빚이 있으면 서로 탕감해 주었고, 유다인 노예들은 모두 해방시켰습니다. 자연히 부자들은 다시 평범해졌고, 가난한 이들은 땅과 가족을 되찾아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빈부의 세습’을 막고, 평등한 세상을 평생에 한 번은 ‘주님의 이름으로’ 경험하게 한 것이 ‘희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가시어 ‘영적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엄청난 은총입니다. 지나간 것은 묻지 않을 터이니, 새롭게 출발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그런 능력이 있음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실행하시러 오셨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이 새 출발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것 자체가 희년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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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년은 가난한 이의 빚이 모두 사면되고 해방되는 위대한 해이다. 노예가 된 인간과 빚 때문에 빼앗긴 땅에 대한 모든 경제적 사면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절망적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고 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얼마나 근사한가! 예수님은 이 희년법이 현실상 불가능한데도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신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선포하실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이어서 말씀하신 사렙다 과부와 나병 환자 나아만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하신 걸까? 희년과 기적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내 인생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었던 때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루르드를 1순위 방문지로 삼았다. 행렬 속에서 촛불을 들고 묵주기도를 드렸고 벨라뎃다에게 성모님이 주셨다는 기적수를 마셨고, 그곳에 몸을 담갔다. 그런데 내 삶엔 크게 변화한 것이 없었다. 그냥 일상은 일상일 뿐. 조심스레 짐작해 보건대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기적과 다가올 해방의 날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 같은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신 듯하다. 기적을 맛본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이지만 자신의 현재 삶에 충실하며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며 출신부터 따지는 그들이 해방을 다른 곳 다른 시간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는 한 희년의 기쁨은 결코 누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려주려 하심이 아닐까?
나 또한 루르드에서의 경험이 소중한 신앙 체험이 되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기적에 집착한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가 겪었던 어려운 길을 주님이 함께 걸어주셨다는 사실을 느끼고 내 일상을 소중히 여기 게 되었다. 한동안 냉담했던 내 마음에 복음의 열정이 지펴져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하느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조금씩 기부도 하며, 가끔은 사회봉사 활동도 하게 되었다. 루르드 이전에는 삶이 힘겹고 버겁기만 했는데 지금은 삶이 행복하고 선물 같다. 이렇게 보면 내 삶에도 기적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그 앉은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고 외쳤던 구상 시인의 외침에 백 배 공감할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은총의 해를 온전히 누리고 싶다.
한은주(수원교구 안중천주교회)
8월 31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루카 4장 16-30절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웃의 어깨에 날개를>
오래전 경미한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 여파로 잠깐 의식을 잃었더랬지요. 깨어보니 응급실이었습니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이 아팠습니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또 제 몸 이곳저곳도 살펴봤는데,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제 입에는 호스가 끼어있었는데, 식도를 통해 위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다 산소마스크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양팔에는 링거병이 각각 하나씩 달려있었습니다.
평소 몸에 뭐든 다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해 시계나 반지도 끼지 않던 저였는데, 호스며 산소마스크며 링거병이며 주렁주렁 매달려있으니, 정말 답답해 죽을 맛이었습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간호사 선생님은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며 경고를 줬습니다.
한 이틀 그렇게 답답하게 지냈는데,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다행히 사흘째 되는 날 상태가 호전되어 그 모든 장치들을 떼어낼 수 있었는데, 그 때 느꼈던 해방감이란 정말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억압으로 해방된다는 것, 부자유스러움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 사슬을 끊는다는 것, 종살이에서 풀려난다는 것, 감옥에서 출옥한다는 것, 그것은 곧 또 다른 천국체험입니다. 또 다른 출애굽입니다. 또 다른 탄생의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명백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 그분의 존재, 그분의 정체성, 그분의 실존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해방자’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 가운데 정말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이 치렁치렁 달고 다니던 죄의 사슬을 끊어주신 해방자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힘겹게 지고 다니던 멍에를 끌러주신 해방자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해방자셨습니다. 그분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해방자셨습니다.
인권, 인권 부르짖는데, 인권이란 무엇입니까? 한 인간이 자유로울 권리가 인권입니다. 한 인간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입니다. 한 인간이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입니다.
참된 해방감, 그것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 동시에 상대방도 무장해제를 하지요. 그렇게 될 때 상대방의 내면이 들여다보입니다. 그가 아픈지, 혹은 슬픈지, 그가 기쁜지 혹은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나’의 치부가 보이고 부끄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나를 여는 작업과 더불어 내 부끄러움을 던져버릴 수 있고, 마침내 열린 마음과 창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근심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왕권은 갑자기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작은 사랑의 실천들이 모여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 갑니다. 병고나 죄, 고통의 사슬에 묶인 이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해줌을 통해서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조금씩 완성되어 갑니다.
부당하게 갇혀있는 이웃, 억울하게 묶여있는 이웃, 사랑의 결핍으로 울고 있는 이웃들을 외면하는 세상은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이웃이 좀 더 성장하도록, 이웃이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록, 이웃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은 그를 놓아주는 것,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 그를 다양한 유형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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