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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 원문보기 글쓴이: 오두
기린(麒麟)이나 천록(天祿) 기린(麒麟)이나 천록(天祿) 기린(麒麟)이나 천록(天祿) 기린(麒麟)이나 기린(麒麟)이나 천록(天祿)은 고대 문헌과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중국의 25史에도 2천400여건이 나타날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공자가 태어날 때도 외뿔 기린이 나타났다고 했듯이 성현이 태어날 때에 기린(麒麟)이 나타났다는 것은 어딘가 토템동물 환생사상과 연계성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흔히 '기린아(麒麟兒)'라고 하는 말도 공자출생으로 기린이 아이를 보낸다(麒麟送子)는 말에서 유래하고 있다. 기린송자도(麒麟送子圖)는 토템동물이 신령한 아기로 태어난다 또는 아기를 데려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기린송자도(麒麟送子圖)
*기린송자도(麒麟送子圖) 금속 조각품.
중국의 기린 출현 기록들( Famous Unicorn Sigh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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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Associated with the Sighting |
Place of Sighting |
Approximate Date |
Adam | Garden of Eden | Beginning of time |
Emperor Fu Hsi | China | 5,000 years ago |
Emperor Huang Di | Emperor's garden in China | 2697 B.C |
Emperor Yao | China | About 2,000 B.C |
Confucius | China | 551-479 B.C |
Ctesias | India | 4th century B.C |
Alexander the Great | Asia | 3rd century B.C. |
Julius Caesar | Germany | I st century B.C. |
Prester John | Asia | Mid- I I 00s |
Genghis Khan | India | Early 1200s |
*16세기 서양인들의 고래의 뿔에 대한 이해.
코끼리는 물론 코뿔소와 황소뿔도 표현되어 있다.
Philip Galle / Jan van der Straet - Ship Surrounded by Sea Monsters, engraving 1578.
신라시대 왕들은 귀신고래의 환생으로 여겼다는 것은 문무대왕 비문에서 문무대왕이 '고래나루에서 온 대왕(派鯨津氏)'으로 그리고 죽어서는 '고래나루로 간 해중대룡(粉骨鯨津)'으로 묘사된데서 알 수 있다.
기린 그림은 신라의 천마총 외에도 다소 차이는 있더라도 고구려의 안악1호분, 무용총, 강서대묘 등의 벽화에도 등장한다.
기린(麒麟)은 봉황, 용, 거북과 함께 그려지는 신령한 토템동물이었다. 그 뿔은 외뿔이지만 때로는 두 개의 뿔로 그려지기도 한다. 5~6세기 중국 남조시대의 황제릉 앞에는 뿔이 두 개인 이각(二角) 기린 석상이 새겨진 것이 그 예이다. 아마도 외뿔고래를 보기 힘든 대륙적 생태계에서 두 개의 뿔을 가진 기린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는 토템동물이 지배자의 상징으로 숭상되었다가 나중에는 황제의 위치를 하늘에서 왔다고 강조하기 위하여 출신이 모호한 상상의 동물로 강화시켰다. 기린(麒麟)도 그런 면에서 바다의 외뿔고래 외뿔에 지상의 네 발 달린 동물을 조합시켜 '이 세상에는 없는 하늘에서 온' 이미지로 강조한 것이다. 한유(韓愈)의 「획린해(獲麟解)」에 기록된 기린에 대한 묘사를 해석해 보자.
然麟之為物,不畜於家,不恆有於天下,其為形也不類,非若馬牛犬豕豺狼麋鹿然。然則雖有麟,不可知其為麟。角者吾知其為牛,鬣者吾知其為馬,犬豕豺狼麋鹿,吾知其為犬豕豺狼麋鹿,惟麟也不可知。
"기린이란 동물은 항상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모습은 유별나서 말, 소, 개, 돼지, 승냥이, 이리, 사슴과 다르다. 그런 까닭에 기린이 있어도 기린인 줄 모른다. 뿔은 소와 같고, 갈기는 말 같으며, 돼지, 승냥이, 이리, 사슴과도 닮았다고 볼 수 있으니 기린은 (모양새가) 일정하지 않다." 韓愈, 「獲麟解」
《说文解字》에는 기린의 수컷인 기(麒)는 어진 짐승이다 암컷(麋)은 사슴 몸에 소꼬리(麒,仁兽也,麋身牛尾)를 하고 있다고 했으며, 기린(麒麟)은 암수를 나타내는데 수컷만 뿔이 있다(麒有独角,麟无角)고 믿어졌다. 기린(麒麟)은 바다의 외뿔고래의 후대적 표현이라는 것은 '용의 아들'이라는데서 알 수 있다.
麒麟一稱為龍之子,屬龍族,瑞獸,
與龍鳳龜合稱為四靈
"기린은 용의 아들이며 용족으로 서수이다.
용과 봉황과 거북과 함께 기린은 네 신령한 존재의 하나이다."
물론 오늘날 기린이라는 동물과는 외뿔 기린은 다른 동물로 인식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기린은 중국 명나라 문헌들에서도 그렇듯이 장경록(長頸鹿)으로 기록되어 있다.
흔히 신령한 동물들일수록 두 종류 이상의 혼합동물로 묘사된 것은 토템동물들끼리 호환환생했다는 토템환생사상에서 비롯된다. 기린(麒麟)은 사슴과 소가 교미하여 생긴 것으로 사슴 몸에 소의 발굽을 가진 상상의 동물로 보았다. 고래처럼 암수를 구분하여 수컷을 ‘기(麒)’, 암컷을 ‘린(麟)’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기린이 달릴 때는 "구름갈기가 피어나는듯하다"라고 한 것은 바다의 외뿔고래가 헤엄을 칠 때 일어나는 물결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보인다. 기린이 몸길이는 5m 정도이고 용의 비늘이 덮여 있고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표현도 외뿔고래에서 비롯한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린은 천리길도 달린다는 것은 바다의 고래의 대 이주를 뜻하고 있다고 하겠다.
최근에 북한에서는 "평양 인근에 일각수 서식지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암각화를 지나치게 과장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 인근 단군릉 우측의 청계골에 '말묘'라는 큰 무덤이 단군이 타고 다니던 기린 무덤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왕실의 시조를 성인이 탄생할 때 기린이 나타난다는 말을 견강부회한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도 이와같은 광신적 유니콘 해골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있다. 1500년대 벨기에에서 유니콘을 사냥하여 전시했다는 기록과 함께 1922년에는 그 유니콘 그림을 사서 뉴욕의 클로이스터 뮤지엄에 전시하고 있다. 물론 진짜 동물은 아닌 것이다.
*전시된 유니콘상. 뉴욕 클로이스터 콜랙션.
New York Cloisters 62 017 Unicorn Tapestries
신라시대에는 기린 문양을 부조한 벽돌을 건축물에 사용하기도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왕의 호위군을 성인을 호위한다 하여 ‘기린군(麒麟軍)’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족의 관복 흉배 문양을 기린 문양으로 했다.
*흥선대원군기로문수흉배(興宣大院君麒麟文繡胸背). 국립중앙박물관.
대원군의 흉배 기린은 쌍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린의 아키타입은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 기린처럼 외뿔이 그 오리지날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월오악도처럼 바다 물결은 대원군 흉배의 기린 아래에는 바다의 물결이 있다는 것이다. 기린이 외뿔고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 코리안 고래토템숭배시대에서 바다의 고래는 현대 개념으로 분류할 수 없다. 옛사람들은 악어도 바다의 물고기로 보았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고래와 악어를 함께 묘사하여 해중대어로 표현했다(鯨、鰐。竝爲海中大魚也).
큰 고래는 파도를 만들고 외뿔고래처럼 작은 고래는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여겼을 것이다. 《事苑》에는 고래는 그 소리는 천둥소리를 내고 분수를 뿜으면 비처럼 내려 고래파도를 만든다(鯨。 鼓浪成雷。噴水成雨。故鬨聲曰鯨波)고 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고래사냥꾼들이 고래뼈로 장작삼아 불을 피워 찬거리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則答以捕鯨爲業。其舟中多積鯨骨。燒骨爲柴。食甘藷餠。爲朝夕餐云。
"고래잡이들은 배 안에 고래뼈를 많이 쌓아놓고 그 뼈를 장작으로 태워
달콤한 감자떡으로 아침저녁 찬거리로 먹는다." 이규경(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천마도가 자작나무에 새겨졌다는 것은 신라지역이라기보다 좀더 북쪽 바닷가의 자작나무 생태 환경에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고래사냥꾼들의 고래따라 이동하는 거리는 동해안을 따라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이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뿔고래와 연관한 길고 긴 해안선 고래잡이 문명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선사시대 고래잡이들은 고래토템 숭배자이면서도 고래사냥꾼이었다. 고래기름으로 등불을 켰다(燈燭皆用鯨膏). 돌을 파서 홈을 만들고 고래기름을 놓고 등촉을 밝히면 그 온기가 난방을 했다. 고래잡이들은 고래기름으로 난방을 한 온돌배를 타고다녔다는 것은 앞선 글에서 논했다.
필자가 알류산열도 아막낙섬 코리안 온돌터를 답사하면서 그곳 온돌터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있는 알류산 박물관에서 수많은 고래기름 등잔석을 보았다. 필히 고래기름으로 요리를 할 때도 불기로 사용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3000년 전 코리안 온돌터에서 발굴된 고래기름 등잔석들. 필자촬영. 2012년 8월 1일.
알류산열도 아막낙 섬에 있는 알류산박물관
*3000년 전 코리안 온돌터에서 발굴된 고래기름 등잔석들. 필자촬영. 2012년 8월 1일.
알류산열도 아막낙 섬에 있는 알류산박물관
관련글:
<코리안신대륙발견> 아막낙섬 온돌터에서 발굴된 알류산 박물관 소장 유물들 (3)
*신라 천마도. 자작나무에 새겨진 외뿔 가진 서수.
자작나무 껍질에 새겨졌다는 것은 단순히 말이라는 인식으로 육지의 교통수단으로 오해할 수 있다 . 그러나 외뿔고래 사냥을 한 바닷길에서 가져온 것을 천마총 주인공인 왕에게 바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추단이다.
천마총의 천마도는 외뿔을 그린 기린 그림 종류에 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천적 뿌리에는 외뿔고래를 사냥한 신문왕 때의 기록과 연계하여 읽어내야 할 것이다. 천마의 외뿔은 외뿔고래를 당나라의 기린(麒麟) 신화와 융합시킨 표현이었을 수가 있을 것이다.
영국 언론이 보도한 평양 인근에 유니콘 서식지가 있다고 북한측이 발표했다는 그 유니콘은 기린(麒麟)에 대한 서양인들의 번역이다. 평양의 기린 서식지란 것은 신화적으로 표현된 것을 땅짐승으로 번역하려 한 것은 무리이다.
동아시아에서 특히 한반도에서 기린(麒麟)은 원천적으로 바다의 외뿔고래에서 비롯한 유니콘 기원설과 일치하는 외뿔고래 기원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내륙 안에서 '유니콘 서식지'란 언어도단이 된다.
신라의 신문왕이 외뿔고래를 보았던 곳은 감은사 앞바다이다. 오히려 외뿔고래 서식지는 감은사 앞바다 대왕암 인근이라는 발표가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특히 에밀레 전설과 함께 신문왕이 본 외뿔고래는 세계사적인 신화 컨텐츠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외뿔고래를 숭상하면서도 사냥을 하여 그 외뿔을 잘라 만파식적을 만들었던데는 많은 부가적인 종교의식이 필요했다. 에밀레가 외뿔고래에 동원되어 희생이 된 것으로 에밀레종에 체현되었다는 전설은 서양의 유니콘 전설이 유니콘 사냥에서 처녀가 필요했다는 것에 적중한다.
에밀레는 용광로에 투여된 것이 아니라 바다에 외뿔고래 사냥을 위하여 동원되어 희생된 여아로 보아야 할 것이다. (12/13/12 오두 김성규 코리안신대륙발견모임 )
*필자의 관련글들:
<코리안신대륙발견> 에밀레 처녀 외뿔고래 사냥에 동원되었다 (1)
<코리안신대륙발견> 심청전 인당수의 심청과 외뿔고래 앞의 에밀레 처녀 (2)
첫댓글 낮에는 두 마리였다가 밤에는 한마리 ㅡ 만파식적은 외뿔고래 사냥 이야기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