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학부 92학번 황효균씨는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한 명씩 자살자가 나온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기숙사 방 하나에서만 연달아 자살자가 나왔고, 그 방은 피하라는 식의 괴담도 있었다”라며 회고했다. 그는 실제로 친구의 자살을 목격하기도 했다. “밤에 실험실 창 밖으로 뭔가가 떨어지는 것을 봤다. 다음 날 그것이 투신 자살 순간이었음을 알았다.” 캠퍼스 밖에서 자살하는 경우는 학우들도 알기 힘들었다.
자살 사건을 사고사로 상당히 많은 수가 은폐되는 경우도 있었다. 1993년 여름 기계공학동 옥상에서 한 학생이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고 정황이나 학생의 심리 상태, 친구의 증언, 시신 발견 지점 등을 고려하면 자살이 명백해 보였지만, 학교 측은 “다리를 헛디뎌 실족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1980~1990년대 중반까지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찾기 힘들다.
카이스트 학생 자살 사태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1996년 3월 부터다. "역대 최연소 카이스트 입학생" 이라는 타이틀로 꽤 유명했던 15세에 카이스트에 입학한 이현우씨가 1996년 3월 자살하면서 뉴스에 카이스트 자살 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교 측이 나이 어린 학생을 위한 배려 없이 무작정 경쟁을 시킨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어서 1996년 4월과 7월 연이어 자살자가 나오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아울러 그 전까지 쉬쉬하며 묻혔던 자살 사건도 뒤늦게 공개됐다. 1995~ 1996년에 8명이 자살을 시도해 6명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졌다. 1997년에는 전기전자학과 교수마저 수업 부담 등을 이유로 자살하기에 이른다.
당시 학생들은 학사경고의 악몽에 시달렸다. 매년 카이스트 전체 학부생의 15~18%가 학사경고를 받고, 한 해 8.8%가량이 "학사경고 누적 3회 시 제적" 규정에 따라 학교에서 퇴학 상황이었다.카이스트에서 학사경고 3회로 제적당한 학생이 이듬해 포항공대 입시에 수석으로 합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5~1997년대 연쇄 자살 사건 이후 대학본부는 학사경고 누적 3회면 제적되던 조항을 3회 연속 시 제적으로 바꾸고, 1학년 때는 학사경고에서 면제되도록 했다. 새로 바뀐 제도로 사실상 학사경고 제적 조항은 사문화됐다. 졸업 이수 학점도 140학점에서 130학점으로 낮추었다. 과거에 학사경고로 퇴교당했던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조처도 나왔다.
KAIST의 재학생과 휴학생 4명이 올해 들어 잇따라 자살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살의 원인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2006년 7월 취임한 이후 강도 높은 대학 개혁을 지휘해온 서남표 총장에게 화살이 쏠리고 있다.
학생들의 자살 원인을 서 총장의 ‘경쟁 중심 개혁’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합리적 분석이 아니라고 우리는 본다. 서 총장은 2007년 신입생부터 4.3점 만점인 학점을 평균 3.0 이하로 받는 학생에게 학기당 6만∼600만 원의 등록금을 차등 부과하는 ‘징벌적 등록금제’를 실시했다. 학부 전 수업을 100% 영어로 강의하도록 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KAIST에서는 2000년 이후 16명의 학생이 자살했는데 8건은 서 총장의 개혁 조치 전의 일이다. 서 총장이 취임하기 전인 2003년 4명, 1996년과 1997년 2년 동안 8명이 자살했다.
KAIST는 최우수 학생들이 입학하는 명문대학이다. 이들이 대학에 들어와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1등을 유지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압박감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미국 영국 등 외국의 명문대에서도 자살하는 학생은 적지 않다. 한국에서 대학생 자살은 2009년 249명이나 됐다. 그런데도 유독 KAIST 학생들의 자살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는 것은 ‘과학영재 집단’이라는 이 대학의 특수성이 작용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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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안되서 제적당한 학생히 이듬해 포스텍 수석
그나저나 90년대는 지금보다 더 압박있었겠는뎅...한해에 10%가 제적이면..
최상위만 차지하던 학생들이라 성적 뒤쳐졌을때 받는 스트레스 문제 어쩔수가 없는 듯.
서울대도 한때 자살문제 심각했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도 전부 같은 문제로 골치 좀 썪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