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관 대령은 1924년 1월 평남 평원에서 독립운동가 안용운 선생의 2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만주로 가 하얼빈 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금강소학교에서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광복되자 귀향한 후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다.
1948년 9월 해사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임관하여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진주와 제주도 공비토벌 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안창관 대령은 1949년 4월 해병대 창설멤버다. 그의 영웅담은 ‘진동리 전투’에서부터 시작된다. 1950년 8월 3일 ‘김성은 부대’ 제7중대장이었던 안창관 대령은 탱크를 앞세우고 마산 진동리로 향하는 북한군 6사단의 1개 정찰대대를 기습 공격했다. 그의 부대는 적 90여명을 살상하고 2대의 전차와 다수의 무기를 노획했다.
이 전투에 대해 군사 연구가들은 6․25전쟁에서 국군이 거둔 최초의 대승리였고, 낙동강 방어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첫 전투에서 거침없이 내려오던 북한군의 기세를 꺾어 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정부는 이들의 공적을 높이 치하하며 모든 부대원에게 1계급 특진을 내렸고 1952년 12월 안창관 대령에게는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안창관 대령은 8월 17일 ‘김성은 부대’의 일원으로 통영상륙작전에 참가해 대원들과 함께 500여명의 적을 사살했다. 당시 외신들은 ‘김성은 부대’의 활약을 본 후 ‘귀신잡는 해병’이란 별명을 붙였다. 안창관 대령은 쉬지 않고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강원도 양구군 도솔산고지 탈환작전, 대우산 전투, 김일성 고지 전투 등 6.25전쟁 당시 유명했던 대부분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안창관 대령은 제2상륙전단장, 진해기지 참모장, 해병대사령부 군수국장 등을 역임했다. 안창관 대령은 1966년 전역한 후 1971년 타계하였다.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지휘관 김성은 대령은 6.25이후 해병대 사령관을 거쳐 1963년부터 5년 동안 최장수 국방장관을 지냈다.
첫댓글 너무 일찍 영면하신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네요. 해병대의 산 증인으로 이런 선배분이 아직도 건재하셔야 좋았을 건데 하는 생각해 봅니다.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