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3500명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죄인 된 심정으로 한국 사회와 교회의 죄악을 무릎 꿇고 회개하자”는 길자연(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목사의 제안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게 무릎 꿇고 기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집중 부각되면서 “종교 편향이다” “대통령이 교회 앞에 굴복한 것이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길 목사는 “죄인 된 심정으로 기도하자고 한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공개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소리 내어 기도하는 장면을 담은 일간지의 한 장의 사진은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사진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와 정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비난하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교회 자체가 공공성을 지니고 있다고 세상은 보기 때문입니다.
개신교가 연례행사로 개최해온 국가조찬기도회는 국가 발전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적지 않은 종교 행사입니다. 역대 대통령들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두 번 외에는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는 장면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일국의 대통령이 개인적인 신앙으로 자연스럽게 기도한 것이라 보기에 어렵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성을 연상시켰고 또 이슬람채권법 입법 추진을 둘러싼 개신교계의 반발을 의식하는 제스처로도 본 것입니다.
설령 기독교 신자가 기독교계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대통령이란 기독교계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아우러야 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단체의 기도회 모임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이것은 종교 편향적인 부적절한 처신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그들은 갖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 품위와도 직결될 뿐 아니라 국내외 상징성 또한 큰 것인데 이것을 대통령의 처신 문제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불교계에서는 제발 체통을 지키라고 하면서 이 대통령에게 화살을 겨누고 더 나아가 민족문화를 수호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파괴, 민생파탄 책임을 지고 먼저 국민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어야 한다고 하면서 대통령은 하야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것입니다.
정부는 종교계 눈치를 살피고 종교계 또한 이 약점을 이용하는 식으로 정부와 종교가 거래한다는 것에 대해 부인만 할 수없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헌법 제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와 정치가 서로 관여하여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의 본질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그 감격으로 사는 것이 신앙인의 본연의 모습이며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으면 안 된고 또 신앙의 실천은 갇혀진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넘어 세상 속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행해지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신앙의 실천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대통령이 무릎 꿇고 기도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자기가 믿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눈에도 귀하게 보일 것입니다. 대통령의 ‘무릎 기도’가 종교 편향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만약 불교나 다른 종교를 믿는 대통령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기도회 자리에서 자기가 믿는 신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국가 지도자가 자신의 신앙에 입각해 기도하는 모습은 귀한 것입니다. 또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예배 장소에서는 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난국 타개를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자는 성직자의 요청에 따라 모든 참석자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성직자가 무릎 꿇고 기도하자고 했는데 대통령이기 때문에 무릎을 꿇지 않고 혼자 의자에 앉아서 기도했다면 아마 겸손하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 면에서 ‘장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장로 대통령은 재창조 질서 면에서 장로로서 헌법에 보장된 대로 기독교 신앙을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 합니다. 장로 대통령이 불교와의 상생과 교제를 위해서 법명을 받을 필요가 없고 받아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로 대통령은 사석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자신의 복음 신앙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 대통령이 비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한 공석에서 한 도시를 성시화한다거나 국가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식의 발언은 자제해야 합니다. 만일 불교 대통령이 나와서 한 도시를 불교화한다거나 국가를 불교 국가로 만들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의 종교에 따라 국가의 종교가 이 종교에서 저 종교로 왔다 갔다 하는 식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가 종교전쟁에 휘말려 들 것입니다.
장로 대통령은 창조 질서 면에서 타 종교인들과 같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상생과 교제를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장로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인들과만 상생하고 교제하고 협력한다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입니다. 장로 대통령은 장로로서 교회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정치인 대통령은 한 나라의 수반으로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고유 업무가 장로직 수행의 영향을 받거나 장로의 고유 업무가 대통령직 수행의 영향을 받아 혼선을 빚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참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에 치중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둘 중 하나를 버릴 수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도 우리들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분명히 이 세상 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이자 또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이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느 종교를 선택한 자가 통치자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미래의 통치자는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자고 할 때 종파를 논하지 말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국가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그러한 통치자가 나왔으면 하고 마음으로 그려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10:16)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