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2012.06.18 조선일보
[北 서해 무력도발, 그 숨겨진 진실 드러나]
교전 종료 직전 北 교신 - "사격을 했으니 이탈해서 올라오라"
김동신 당시 국방장관 - "교전 직후 합참이 우발적 도발로 보고"
이상희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 - "金장관이 우발적 도발에 무게 둬"
사격중지 왜? - 北경비정 반쯤 침몰시킬 때 내려온 명령에 의혹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이 북한 군부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뒷받침하는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가 우리 군의 대북 감청부대에 교전 당시 포착됐음에도 군 수뇌부는 '북한의 우발적 도발'로 평가절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동신(71) 당시 국방장관은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합참은 사건 발생 직후 처음 열린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보고한 문건에서 사건의 성격을 '우발적 도발'로 평가했다"고 밝혔으나,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낸 이상희(67) 전 국방장관은 "김 전 장관이 우발적 도발 쪽에 무게를 뒀다"고 반박했다.
◇"합참이 우발적 도발이라 보고" vs "국방장관이 우발적 도발에 무게"
대북 감청부대인 5679부대는 사건 당일인 6월 29일 교전 종료 직전에 북 지휘부와 경비정 간의 교신 내용을 포착했다. 황해도에 있는 북한 신천통신중계소가 "사격을 했으니 이탈해서 올라오라고 (경비정에) 전해달라"는 등 계획적인 도발을 암시하는 북 해군사령부의 지시사항을 8전대사령부로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교전 발발 직후 열린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에서 합참이 '우발적 도발' 가능성에 무게를 둔 최초 보고를 했다고 김 전 장관은 전했다. 김 전 장관은 "당일 오전 10시 40분쯤 이상희 작전본부장이 '연평도 근해에서 조그마한 교전상황이 발생했다'고 최초 보고한 데다, 이남신 당시 합참의장도 별다른 보고를 하지 않아 처음엔 사건의 심각성을 몰랐다"며 "오후 1시 30분 청와대에서 열린 1차 NSC 회의 때도 합참은 '우발적 도발' 가능성에 무게를 둔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
(사진 위)이들의 희생 막을수도 있었는데… 제2연평해전 유가족들이 2003년 6월 24일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전적비 제막식에서 전사자들의 얼 굴 부조를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 아래)한철용 감청부대장의 국회 증언… 대북 통신감청 정보를 총괄하는 한철용 5679부대장(육군 소장·사진 왼쪽)이 제2연평해전 발발 3달여 만인 2002년 10월 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해교전 직전 군 수뇌부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며 비밀 문서를 내보이고 있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서 한 부대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이상희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안경 쓴 이)이다. /김진평 기자·AP
김 전 장관은 "하지만 1차 NSC 회의 때 북의 공격 양상으로 볼 때 계획적 도발이라 결론을 내렸고, 오후 3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주재 2차 NSC 회의에서 이런 결론을 재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상희 당시 작전본부장은 본지 통화에서 "김 전 장관이 오히려 우발적 도발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며 "나는 교전 당일 오후 NSC나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 언론 브리핑에서 '의도적 도발'로 본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두 사람의 주장과는 별개로 당시 정부 내에선 북한의 우발적 도발로 간주하는 기류가 적지 않게 형성돼 있었다. 특히 제2연평해전 발발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난 7월 25일엔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북측 전화통지문에 대해, 통일부 차관이 "북측의 명백한 사과와 유감 표명으로 간주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전 중 사격 중지는 왜?
북 함정의 공격을 받은 우리 해군은 보복응징에 나섰다. 하지만 적 경비정을 절반쯤 침몰시켰을 즈음 상부에서 사격 중지 지시가 내려왔다. 이를 놓고 군 지휘부가 김대중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을 의식해 격침에 나서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당시 군 작전 지휘라인은 '김동신 국방장관→이남신 합참의장→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해군작전사령관→2함대사령관'이다.
이와 관련해 이남신 당시 합참의장은 교전 당일 밤 열린 국회 국방위 보고에서 "확전을 막기 위해 격침을 자제했다"고 답변했었다. 김 전 장관은 17일 본지 통화에서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당시 주요 작전·정보 라인 수뇌부는 모두 처벌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작전라인에 있었던 한 예비역 장성은 "김 전 장관이 실제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인 참수리 357정에 선제공격을 가해 357정 정장(艇長)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북한 측은 약 30명 이상이 사상(死傷)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6월 발생한 제1연평해전 당시에는 북한군의 함정 2척을 침몰시키는 등 큰 전과(戰果)를 올렸다.
첫댓글 그대는 귀가 있으면 들을것이오 눈이 있으면 볼것이오 왜 그때 귀와 눈이 잘못되었을까?
기가막힌 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면 안되는 일이 .....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