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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농민 때려 죽인 건 이번이 처음" | ||
농민대회 때 경찰에 폭행당한 농민 끝내 숨져...농민들 분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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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신 오후 6시 5분> 경찰들 병원 겹겹이 에워싸...농민들 "정권이 농민 때려 죽인 건 처음" 분노 5시 30분경 고인의 시신을 태운 장례차량이 병원으로 들어왔다. 장례차량에는 보령경찰서 수사과장과 유족등이 함께 타고 있었다. 잇달아 경찰버스와 순찰차 등이 들어오자 병원에 미리 들어와 있던 농민들이 이를 막기 위해 경찰버스 앞에 눕는 등 충돌이 있었다. 뒤따라 온 경찰들은 농민들의 거센 항의로 밖으로 나갔으나 병원 다른 입구로 미리 들어와있던 사복경찰들과 진압병력은 여전히 병원을 에워싸고 있다. 현재 병원안에는 사복경찰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병원입구는 진압병력이 3,4겹으로 둘러싸고 있다. 때문에 부검후 서울로 올라가 장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경찰의 약속에 대해 농민들은 의심하고 있다. 농민들 속에서는 당시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대신 비준안을 통과시키자는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음모론까지 나오는 등 흉흉한 말들이 오고갔다. 농민회 회원들은 "정권이 학생들을 때려 죽인 적은 있어도 농민을 죽이기는 이번이 처음 아니냐"며 몸을 떨었고,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6시 30분 부검이 시작되면 전농 서정길 부의장, 충남도연맹 김영석 사무처장,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농민단체 추천 의사 원진호, 유족대표 1인 등 다섯명이 들어갈 예정이다. 부검은 촬영이 허용됐으며 국과수에서 나온 경찰측 부검의 6명이 들어간다.
<7신 오후 5시 23분> 병원 도착...6시 30분 부검 예정 오후 6시 30분 인의협과 농민단체가 추천한 원진호 의사가 도착하면 부검을 시작할 예정이다. 부검 시간은 30분정도 소요되며, 부검이 끝나면 농민들은 고인의 시신과 함께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다. 병원입구에서는 노동자, 농민, 학생등 민주노동당 당원 10여명이 피켓 시위를 하며 공권력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노무현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주변을 지나는 한 택시기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으며 시민들은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의아해 하고 있다. 병원에는 주변 시선을 고려해 대천 휴게소에 있던 사복진압병력 위주로 경찰병력이 배치되고 있다. <6신 오후 5시> 부검 위해 이동중..."경찰에 의해 맞아죽는 게 강경대 열사 이후 처음" 고인의 운구차량은 보령아산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농민들과 경찰병력도 함께 이동하고 있다. 보령아산병원에는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 6명이 나와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농민들은 인의협에서 추천한 의사 원진호씨가 부검에 입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의협 소속 변해진 의사는 유가족과 농민들에게 "원진호 의사가 부검실에 입회할 때까지 절대 경찰측이 부검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5일 농민대회 당시 고인과 함께 있었던 농민들의 말에 의하면 당시 그는 농민대회 후 경찰에게 심하게 폭행당했으며, 밥을 사줬는데 못 먹고 다 토하고 자꾸 한쪽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 그는 아랫도리가 젖어있는 것이 딱 오줌을 싼 모양인데도 본인은 그것을 모르기도 했다고 주위 농민들은 전했다. 전용철씨는 주위 농민들의 도움으로 보령아산병원으로 가서 CT촬영을 했고, 여기에서 뇌출혈이라는 진단과 함께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다고 한다. 이에 곧바로 충남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한 그는 다시 보령아산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 충남대병원(담당의 이규찬)에서는 이에 대해 '외부 충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밝혔다. 농민들은 "수술을 위해 충남대병원으로 호송했을 때도 응급실이 아닌 중환자실로 가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고인은 분명 경찰폭력에 의해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고 분노했다. 또한 농민들은 "경찰에 의해 맞아죽는 게 강경대 열사 이후 처음이다"면서 "죽은 사람이 열사가 되진 않고 살아있는 자들이 열사를 만드는 것"이라며 투쟁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5신 오후 4시 20분> 유족, 농민회, 검사, 부검의 입회 아래 부검 하기로 농민들은 집회를 정리하고 충남 보령 아산병원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보령 병원에서 유족과 농민회 회원, 검사, 부검의 입회 아래 부검을 할 예정이다. 경찰은 농민회가 추천하는 의사를 부검의로 입회시킬 것과 부검 뒤 서울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보장하기도 했다. 농민회와 유족측은 현재 보령아산병원 신경외과 최진호 의사 등과 협의중에 있다. 최씨는 인도주의의사실천협의회 회원으로 알려졌다. <4신 오후 3시 50분> 경찰 대천휴게소 입구 막고 시신 탈취 준비 현재 대천휴게소에서는 '정권퇴진' 구호와 '민족농업을 지켜내자'는 구호가 혼재하는 가운데 농민들의 약식집회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에 미리 올라가 장례를 준비하던 유가족들중 고인의 형이 대천휴게소로 내려오고 있으며,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경찰과 지속적으로 협의중이다. 경찰측은 이미 영장에 나온 것처럼 보령 아산으로 시신을 옮겨 부검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고인의 형이 내려오면 협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단 검찰지시 등 법적절차를 위한 서류는 다 마련된 것으로 보이며, 보령에서의 부검을 거쳐 서울 중앙대부속병원으로 옮겨 장례를 치루는 것을 협의중이다. 고인의 형은 경찰과 농민들의 협의 내용대로 보령관내에서의 부검과 서울에서의 장례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대천휴게소에 들어오는 입구는 5대의 경찰버스와 순찰차 2대로 가로막혀 있으며, 휴게소 안에는 십여대의 경찰버스와 진압버스 2개 소대, 사복 진압병력 1개 소대가 배치돼 있다. 휴게소에는 소방차 2대와 구급차 1대 호송차 1대도 주차돼 있으며, 고인의 차량을 둘러싼 농민들의 차를 빼기 위해서 렉카차 4대가 대기중이다. <3신 오후 3시40분> 경찰, 고 전용철씨 시신에 '압수수색' 고인의 서울장례를 바라는 집회가 서해안 고속도로 상행선 대천휴게소 주차장에서 열렸다.
각 시군에서 속속 집결한 150여명의 농민들이 고인의 사체를 모신 차량을 앞에 두고 앉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도 폭력으로 진압하려는 공권력은 각성하라"며 성토하고 있다. 현재 유가족들은 서울에 가서 장례를 준비하고 있으며 동생 한 명만 시신을 지키고 있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장례식을 전농 충남도연맹에 위임한 상태다. 경찰들은 고인의 사체를 부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분노하던 동생은 "우리 형을 때려 죽인 당신들을 어떻게 믿겠느냐"면서 "너희들이 사체를 부검하려는 것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잠시 후 농민회 관계자들이 고인의 가는 길을 열어달라는 말을 전달하기 위해 경찰을 만났다. 그러나 보령 경찰서장과 자신을 감사관이라고 밝힌 사람은 농민회 관계자와 만나 "고인의 사체는 보령관내를 벗어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자연사가 아닌 변사이기 때문에 일단 관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은 "이 곳 검사의 지휘 아래 부검을 끝낸 후 장례를 치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당신들이 죽인 것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면서 "당신들이 부검하는 의사도 못 믿겠다"고 성토했다. 또 농민들은 "우리가 서울에서 더욱 좋은 시설과 더욱 정확한 의사들을 제공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부검을 하더라도 서울에서 부검을 하겠다"고 소리쳤다. 고인은 어제 충남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오늘 밤 아침 아산 보령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보령경찰서 수사과장은 고인을 부검할 법적절차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를 멀리서 지켜본 농민들은 "유가족도 없는데 누구한테 고인의 부검을 말하고 있느냐"고 분노하면서 거세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사복경찰 수십여명이 수사과장을 감쌌으며 그들의 보호아래 수사과장은 유가족, 농민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표했다. 경찰측이 고인의 사체를 압수해서 강제로 부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농민들은 자신의 차를 끌고와서 고인의 사체가 있는 차량을 둘러쌌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이 농민들의 차량을 발로 차거나 운전중인 차의 문을 열고 운전자를 끌어내리는 등 충돌이 있었다. 농민들은 주차장에 "내 차를 주차하는데 왜 그러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현재 150여명의 농민들과 경찰병력 4, 5개 중대가 대치하고 있으며 대천휴게소로 들어오는 길목은 경찰버스가 막고 있다. 대천 휴게소 LPG 충전소 앞에는 40여명의 사복을 입은 타격대가 뒷짐을 지고 정렬하고 있다. 농민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며 고인의 앞길을 터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2신 낮 12시 10분> 고인 시신 서울로 옮기다 경찰에 가로막혀 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집단폭행 당한 뒤 끝내 숨진 고 전용철 농민의 시신이 서울로 올라오던 도중 고속도로에서 가로막혔다. 경찰이 '검사지휘'를 이유로 막아나섰기 때문. 농민들은 고인의 죽음과 관련, 서울에서 전국농민장을 치르겠다는 계획이다. 고인은 미혼이며 형제들도 서울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어 보령군에서 장례를 치르기보다 서울에서 농민장을 치르는게 낫다는 게 농민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농 충남도연맹 각 시군농민회 소속 농민 50여명은 고인의 시신을 119차량에 싣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서해안 고속도로 대천휴게소 인근에서 경찰이 막아 발이 묶였다. 경찰은 "고인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 검사 지휘를 받아야 한다"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에대해 보령군 농민회 이종협 사무국장은 "우리가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도 다 끊었는데 왜 검사지휘를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빨리 올라가기 위해서 일단 경찰측 말대로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1신 오전 10시> 농민대회 참가해 경찰에 폭행당한 전용철 농민 숨져 지난 15일 전국농민대회 이후 뇌출혈로 입원해 진료를 받아온 전용철 농민(44)이 결국 숨졌다. 전농 충남도연맹 보령농민회 주교면지회장인 전 씨는 17일부터 충남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 오늘(24일) 새벽 그의 병세가 악화돼 급히 수술을 진행했지만 끝내 숨졌다. 전 씨는 15일 시위진압과정에서 경찰에 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큰 외상이 없어 지역으로 내려갔던 전 씨는 이틀 뒤 건강상태가 안 좋아 병원 진료를 받은 결과 뇌출혈로 판명됐다. 혼자 살고 있던 전 씨의 이상증세를 발견한 건 마을 농민들이다. 도연맹 박종찬 정책실장은 “평소 건강했던 전 씨가 한 쪽으로 침을 흘리는 등 이상증세를 보여 17일 병원진료 뒤 뇌출혈로 판명돼 입원했으나 오늘 끝내 돌아가셨다”고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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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든 잘못은 과격시위로 주도한 시위 주동자에게 문제가 있습니다....그냥 시위에 참가한 농민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단지 농민들을 뒤에서 조종한 불순분자들이 문제지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안됐네요...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