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상자가 오늘부터 콘서트를 시작했어요.
4월 8일까지 하는 긴 콘서트.
그 대장정의 첫 길을 밟게 되었죠.
실은..
오늘 아침일찍 운전학원에 갔다가
서울역에 가서 토요일날 갈 여행을 위해 기차표를 예매하고
명동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어요.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도 보고..
"알까기" 우승후보를 맞추는 듯한 게시판도 구경하고..
밀리오레가서 구경도 하고.. 그러고 있었답니다. 빨간사과랑.
그러던 중 아침부터 무작정 저녁시간을 비워 놓으라는 이을나무언니의 최종연락(?)을 받게되었어요.
어쩌다가 유리상자의 초대권을 얻게 되었으니 같이 가자구요.
저야.. 룰루랄라였죠.
같이 있던 빨간사과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매정하게 등돌려서 대학로 라이브극장으로 향했답니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일어났어요.
원래는 밴드의 일원인 어느분께 표를 받기로 되어있었지만 그 분과 연락이 안된상태로 공연이 시작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발바닥 밑에서 쿵쿵거리는 리듬과 "웃어요"의 노래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저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서 이을나무언니를 끌어당기며 가자고 했지만..
우리의 용감무쌍한 언니는 매표소에 사정을 말하고 있는 중이었죠.
그래서..
들어갔어요. --v
좌석은 얻지 못해 입석으로 들어갔는데..
입석표는 원래 한장도 없었던 지라 언니와 저는 뻘쭘하게 구석에 서서 공연을 보기 시작했어요.
2. 공연
공연은 "소풍"이란 주제로 열리고 있었어요.
이미 라디오 인기!! 게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므로 그들의 입담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이 필요없을 듯.
감칠맛 나는 그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노래로 조금씩 공연에 빠져들게 되었죠.
(하지만..
웬지 남의 집에 불청객으로 들어간 양 어색한 기분을 떨칠수가 없더라구요.
정말이지 공연때면 만사 잊어버리고 미친x 널뛰는 모양으로 환장하던 제가.. 그렇게 가만히 있기도 힘든데 말이예요.
환님이 "개긴다"며 못마땅해하던 초대석의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이해가 가는 기분. 그런 안 좋은 기분.
기분좋게 맞추며 몸을 흔들수 있는 리듬에도, 눈물나게 빠져들만한 노래에도.. 저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뻘쭘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여러분!!!! 공연은 돈주고 봅시다. 초대권 문화 말살합시다.... ㅠ.ㅠ )
중간에 소풍이란 주제에 걸맞게 "보물찾기"도 했어요.
미리 공연장 바닥에 뿌려놓은 "보물"쪽지를 찾는 이벤트였죠.
순식간에 객석은 초등학생마냥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어졌어요. "유리상자"라는 글씨가 적힌 쪽지를 발견한 관객에게 선물을 주기로 되있지만.. 스텝들의 미숙한 준비 탓인지(첫날 공연의 매력이죠^^)"유리상자"라는 쪽지는 발견되지 못한채 "유리상"과 "유리박스"라는 [꽝]을 발견한 관객에게 선물이 돌아갔어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더라구요.
그리고 몇곡의 노래들이 이어진 후 '버튼'이라는 여성 2인조 신인 밴드와 윤종신님이 게스트로 나오셨어요.
종신님은 새우버거 광고로 쓰여 판이 다시 잘 나가고 있다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신채 "환생"을 부르셨고..
3월분위기에 어울릴 듯 하다며 "오래전 그날"을 부르셨어요. 1월 콘서트때의 오스틴 파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말쑥한 정장차림이셨죠. (저..물어볼게 있어요.. 오래전 그날 가사중에 [그리고 지금 내방엔 나만을 믿고 사는 한 여자와 잠 못드는 날 달래는 내아기의 숨소리 만이]라고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리고 지금 내옆엔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와 잠 못드는 날 달래는 오래전 그노래만이]라고 부르시더라구요. 제가 잘못알고 있는건가요, 아님 가사를 바꾸신 건가요?)
그렇게 해서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었거든요.
2부 첫곡은 "순애보"로 시작했어요. 박승화` 이세준.. 두사람 다 얌전한 남방을 입고 나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순애보가 끝나자 마자 그 남방을 벗어던지더니만..
흡사 "듀크"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의 쫄남방과 요상한 스카프를 맨 차림이 되었죠.
박승화님은.. 정말 살이 많이 쪘더군요. 남방의 단추와 단추사이가 벌어지고 제일 마지막 단추는 채워지지도 않아 벌려진채였거든요. 이세준님이 그 모습을 보고 자꾸만 웃어서 공연이 잠시 지연될 정도였답니다. ^^
그리고 나서..
와......
전 유리상자에게 그런 면이 있는줄 몰랐어요.
비트가 빠른 디스코리듬의 여러곡의 팝송과 유리상자의 노래에 중간중간 승환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하고 싸이의 "새" , 왁스의 "오빠"와 그 원곡을 불렀는데 여느 락커들 못지 않은 무대였어요. 열창하는 두사람. 몸을 불사르는 율동(?), 객석의 열렬한 반응.. 캬~~ 특히..싸이의 "새"부분은 엽기도 그런 엽기가 없더이다. 이세준의 싸이춤이라니.....^^;
참, 관객들의 신청곡을 불러주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것도 굉장히 신선했어요. 즉석에서 관객들의 청을 들어주는 거였는데.. 불문율은 "팝송 & 제목에 영어 들어간 노래 & 팀이름에 영어들어간 노래"는 안되는 거더군요. (희열님처럼 외국인 공포증이 있는걸까...^^)
나중에 승환님의 공연도 이런 부분이 있으면 괜찮겠다 싶었어요. 가수와 팬이 정말 친해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조용필의 "단발머리"와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을 부르고.. 김범수의 "하루"와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는 흠... 어리버리 넘어갔어요. 가사를 잘 모르더라구요. 몰라도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 프로답죠? 참.. 재미있는 무대였고.. 오랜 팬들과 함께 하는 익숙한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어요.
사이트에서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코너도 있었는데,
공연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 말고 불렀으면 좋겠다.. 하는 노래를 각 팬클럽에서 조사를 해서 1위부터 5위까지 차트를 뽑아왔어요. 토크쇼에서 보던것처럼 답 부분을 풍선으로 가리고 빵빵! 터트리는 방식으로 발표한 다음에 3위랑 1위한 노래 불렀어요. 팬클럽과 팬들에게 자상한 편인가봐요, 유리상자는...
그렇게 근 3시간에 가까운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렸어요.
저는 의례히 승환님 공연에서 보던 앵콜을 상상하고 있었죠.
마지막곡을 부르고 "안녕히 가세요"라고 뒤돌아서서 불이 꺼진순간, 객석에선 앵콜이 조심스레 나오기 시작했는데...
유리상자는 그 미약한 앵콜을 듣고 나가다 말고 다시 들어와서 앵콜을 했답니다. ^^;
하하.. 익숙하지 않은 앵콜이야... 그냥 두어번 불렀을 뿐인데... 하하하....
4.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거의 쓰러질 듯 공연장을 나왔어요.
공연시간 3시간을 포함 총 5시간이 넘게 꼬박 서있었더니 다리가 발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아프더라구요.
그래도...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아무래도 유리상자의 팬이 될것만 같네요.
역시 가수는 공연장에서 봐야한다는 말... 진실이죠.
이번 공연을 보면서 느낀점이 있었어요.
1. 공연은 "내 돈" 주고 보러간다. - 초대권으로 보는 공연은..정말.."개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ㅠ.ㅠ
2. 하다못해 "히트곡"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간다. - 불멸의 진리죠. --;
3. 음악은 물론 공연의 편식도 자제해.. 어느 공연장에서도 내 자리에 있는듯한 정서적 편안함을 추구한다. -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뭔지.. ^^;
참.. 당연한 것들을.. 참 힘들게 깨달았네요.
여하간..
오늘 유리상자의 공연은 이제껏 보아왔던 공연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내가 잘 몰랐던 수많은 뮤지션들의 좋은 노래들을 많이 접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5. 그리고 한가지 더.
오늘따라 글이 엄청 길어지네요..
이걸 다 읽어주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저.. 이제 오늘이네요.. 23일.
일년전 3월 23일. 제가 이사늙에 처음 인사를 했던 날이었어요.
또하나의 새로운 나 "레몬향기"의 생일이랍니다.
"박윤수"의 생일이 아닌.. "레몬향기"의 생일이요.^^
이사늙 식구가 된 이후..
저의 생활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예요.
이사늙에서 함께한 1년..
너무나 많은 것을 아낌없이 폭격해준 이사늙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승환님과 이사늙의 좋은 벗이 되어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