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는 차례 상에 술 대신 차(茶)를 올립시다.”
2010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생활의례문화원은 연중행사로 이색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예로부터 차례를 지낼 때 본래 술보다 차를 올렸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제사문화를 되살리자는 취지에서였다.
새해를 맞은 지 보름이 돼 가지만 사람들 마음은 다시 2월 초순에 있는 ‘설’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설날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 더 먹고, 한 해를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뿌리 깊은 민속의식 때문일 것이다.
설은 예전에 음력을 쓰던 시절 한 해가 시작하는 첫날, 즉 정월초하루를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양력이 도입된 것은 1894년부터 1896년까지 추진된 갑오개혁 때다. 이때부터 ‘양력설’이란 게 시작된 셈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에도 줄곧 정부에서는 양력설을 유도했다. 민간에서도 일부 양력설을 쇠는 사람이 있었으나 뿌리 깊은 음력설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신정(新正·양력 1월1일)’과 ‘구정(舊正·음력 1월 1일)’이다. 설을 두 차례에 걸쳐 쇤다는 뜻에서 ‘이중과세(二重過歲)’란 말도 생겼다.
이중과세는 경제활동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득보다 실이 컸다. 청마 유치환은 1963년 내놓은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 ‘설 기분이 흐리멍덩한 이유는, 어쩌면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의 설날이 우리에게는 둘이나 있어 오히려 이것도 저것도 설 같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결국 정부는 1985년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음력설을 다시 인정한 데 이어 1990년부터 공식적으로 ‘설날’이란 이름을 복원하면서 지금의 설이 정착하게 됐다.
하지만 오랜 이중과세의 영향은 우리말글에도 남아 요즘도 신정이니 구정이니, 양력설이니 음력설이니 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모두 이중과세를 하던 시절의 낡은 명칭일 뿐이다. 지금은 명절로 쇠는 날은 음력 1월1일 하나뿐이므로 이날이 곧 ‘설’이다. 양력 1월1일은 단순히 한 해가 시작하는 첫날일 뿐이므로 이날을 ‘양력설’이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냥 ‘새해 첫날’이라 하면 충분하다.
마찬가지로 ‘설’ 자체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므로 ‘음력설’이란 것도 군더더기 표현이다. ‘새로운 설’ ‘오래된 설’로 구별해 쓰던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말도 이제는 불필요해졌다. 특히 설날을 습관적으로 구정이라 하는 것은 빨리 버려야 한다. 살갑고 정겨운 우리말 ‘설’을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차례(茶禮)와 제사(祭祀)도 흔히 헷갈리는 말 중 하나다. 설 같은 명절에 조상께 올리는 의례는 차례라고 하며 보통 아침이나 낮에 지낸다. 제사는 돌아가신 이의 넋을 불러 음식을 바치는 의식으로, 기일에 맞춰 지내는 ‘기제사(忌祭祀)’가 대표적이다. 돌아가신 날 가장 이른 시간에 지내기 때문에 밤 12시가 넘어 지낸다는 점도 차례와 다르다.
올해 설은 대체휴일까지 합쳐 나흘에 이르는 긴 연휴다. 어른들 중엔 고향에서 지인들을 만나 편한 마음에 자칫 과음하는 사람도 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상태를 가리켜 “고주망태가 됐다”고 한다. ‘고주망태’는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순우리말이다. 올해 설은 차례의 본래 의미를 살려 술 대신 차로 조상들께 예를 올리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첫댓글 저는 양력 음력 다 세요
양력설에는 도가니 스지
사다가 떡국먹고
산소( 양주 산소덕도리 갔다오고
아들 휴가에 맞쳐서 가까운
시골장터 김포장 전곡장 양평장
다니면서 말린나물 사오고요
구정때는 전 조금붙이고
가까운 곳다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