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9. 3. 화요일.
오후에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이발소에 들러서 머리터럭을 조금 잘랐다.
이발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 이발비는 10,000원
밤중에 내 고교 여자친구의 카페에 들러서 내 글을 골랐다.
오래 전에 쓴 산문 제목은 '바람의 아들'
내 닉네임이다.
50대에 나는 숱하게 걸어다녔다.
바람의 아들
금년(2001년) 들어와 바닷가를 자주 찾았다. 더욱이 하절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광복절에서야 며칠간의 휴가를 냈으며 이것이 바람의 아들을 방황, 유혹하는 불씨가 되었음을 실토한다. 그래서 8월 중순경부터 운동화 끈을 다시 졸라맸다. 제대로 걷기 위해서 우선 먼저 신발에 맞추어 발등 발가락 그리고 발바닥의 움직임이 편하도록 끈을 수시로 조절해야 했다.
혹서기를 살짝 피한 휴가기간 중에 향촌*에 머물면서 인근의 해수욕장과 산을 찾아다니면서 ‘꿈같은 자유’를 만끽하였다. 또한 주말을 이용하여 서울 근교의 산을 탔으며, 더욱이 평일의 밤에도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를 몇 바퀴씩 돌았다.
8월과 9월 중에 내가 고향인 충남 보령시 서해안의 바닷가와 산 그리고 서울의 명산과 지방의 명소를 걷거나 차량으로 방문한 목록이다. 특히 바닷가는 대부분 도보로 일관하였다.
8. 15. 수요일.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해수욕장, 독산해수욕장
8. 16. 목요일.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 독산해수욕장, 장안해수욕장, 부사지구방조제
8. 17. 금요일. 보령시 남포방조제, 용머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8. 18. 토요일.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 성주사지, 미산면 보령댐
8. 25.(토) ~ 26(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8. 29. 수요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송추계곡
9. 1.(토) ~ 2(일).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해수욕장
9. 8. 토요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9. 12. 수요일. 경기도 평택만, 충남 당진군 서해대교
9. 13. 목요일. 충남 아산시 염치면 현충사
9. 14. 금요일. 대전 유성구 자운리 소재 수운교의 성지(密敎集團같은 인상을 조금 받았음)
9. 15. 토요일. 서울 관악구 관악산
9. 22. 토요일. 충남 서천군 서면 부사지구 방조제, 춘장대해수욕장
9. 23. 일요일. 보령시 웅천읍 독산해수욕장, 장안해수욕장
9. 29. 토요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
10. 2. 화요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
10. 3. 수요일. 서울 관악구 관악산 삼막사
전형적인 산마루 아랫동네인 고향집*에서 서북 쪽에 위치한 해변가인 대천해수욕장 입구까지는 아침 일찍부터 마을 뒷산 신안재 산길을 가로질러 걸으면 2시간 30분이 걸린다. 그 길목에는 남포(藍浦) 月田里의 용머리 해수욕장과 남포방조제(防潮堤)가 있다.
또한 고향집에서 남쪽 편에 위치한 서천군 서면 춘장대해수욕장 입구까지는 아침 일찍부터 걸으면 3시간이 꼬박 걸린다. 춘장대까지는 왕복 7시간이 넘도록 쉴사이 없이 걸어야 할 거리이다. 그 길목에도 웅천읍 독산해수욕장, 장안해수욕장, 부사지구 방조제가 있다. 더불어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동백정(해수욕장)은 한 시간을 더 보태야 한다.
바닷가를 즐겨 찾는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그냥 망망대해의 照望이 시원해서 좋고, 갯가의 뻘과 모래 속 그리고 썰물에 드러나는 바위틈에 착생하여 밀생하는 수많은 갑각류, 고동, 게, 해초 등의 생명체를 자세히 관찰하며 사색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조그마한 해양 생명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꼼지락거림이 생명에로의 외경(畏敬)을 불러일으키고, 썰물이 빠진 갯사장의 그 넓은 모래톱에 생긴 자연의 리드미컬한 波浪과 모래의 흔적, 그리고 그 단조로움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광활한 원색의 海水와 蒼空이 맞닿은 수평선이 단순해서 좋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또 때로는 공간을 이동하는 해조음(海鳥音 갈매기 울음)이 외로워서 좋았다는 것도 이유일 게다.
혼자서 해변가를 찿는 것은 외로움의 실체이다. 인적이 드문 해변가의 모래톱에 외줄기의 긴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는 것이 참으로 고즈넉하다. 홀로 걷는 자유는 외로우면서도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외롭다. 그냥 외롭다. 마냥 외롭다'. 그래서 바람의 아들인 나는 하나만의 그림자와 동무하여 함께 걸어야 했다.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해변가는 공군사격장이 있는 군사통제구역이여서 인적이 끊기고, 그래서 갈매기가 더 많이 날라와 모래톱 위에 앉는다.
'나 미쳤다! 나 미쳤다!'
수없이 반복하여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질러도 뭉크 의 절규(絶叫)*는 허공에 맴돌다가 슬며시 사라진다. 다시 정적(靜寂).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 속에서 무제한의 햇살과 자유가 마냥 좋았다. 번다한 世事를 훌훌 털어버리고 혼자만이 바보인 양 힛죽거리며 광대가 되어 부리는 객기와 만용이 그냥 좋았다.
지난 9월 23일 일요일에도 보령시 웅천읍 독산해수욕장과 장안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이 날은 부사지구의 갯벌에서 맛조개를 잡는 사람이 많았다. 그 잔잔한 모래톱 위에서 삽으로 모래를 살짝 떠낸 뒤 조그마한 뻘구멍이 보이기가 무섭게 소금을 뿌려두면 염기에 놀란 맛조개가 뻘 구멍 위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에 이를 잽싸게 낚아채는 갯아낙의 솜씨를 구경하며 감탄했다.
구경하는 내가 뜨내기같이 생겼거나 어리숙하게 보였는지 ‘제발 재수거리로 팔아 주어야 한다’며 떠맡기는 갯아낙의 강권에 못 이겨 맛조개를 대책 없이 산 게 잘못이었다. 생생한 해산물을 어머니에게 맛보게 하려는 발심으로 현지에서 맛조개를 산 게 죄라면 죄였다. 10cm 이하의 길이, 껍질이 아주 얇은 맛조개가 혹시라도 상할까 봐 급히 발길을 돌려 귀가해야 했다. 서둘렀어도 그날의 왕복거리도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허수룸한 비닐봉지에 담은 갯조개가 호흡하면서 갯물을 토해내고, 비릿내가 나는 갯물은 베낭을 통해 겉옷을 적시며 등허리에서 끈적거렸다.
그날 귀가할 때에는 뜨거운 한낮에 강한 일광을 받으면서 해변이 아닌 공군사격장의 뒷산(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통달산) 아래에 드넓게 펼쳐진 들판 길을 택하여 들녘을 가로질렀다.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이 숨어 있었다. 바지와 팬티를 벗어내린 뒤 엉덩이를 내놓은 채 볼일을 보는 동안에도 오히려 부끄러운 듯이 고개숙인 논두렁콩 잎새에도 갈바람은 잔잔하게 스쳐갔다. 노릿노릿한 色照로 익어가는 벼이삭과 볏잎을 바라보면서 걷는 들녘이 참으로 곱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각거리는 갈바람 소리 그리고 溫厚한 들녘의 냄새가 한없이 좋았다.
치아가 이미 닳아 없어진 여든세 살의 늙은 어머니는 그 싱싱한 맛조갯살을 하나도 깨물지도 못하고 단지 멀건 국물만 떠 잡수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저렇다가 훌쩍 바람따라 가버리시겠지. 노모에게 남겨진 세월의 無常이 바람의 아들의 가슴을 짓이겨 눌렀다.
고향집에서 해변가로 갈 때에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또는 걸었다. 경비라고야 음료수나 끼니를 사 먹는 수준의 소액만을 써도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주변의 해수욕장으로는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 남포 용머리, 대천, 독산, 장안, 서천군의 춘장대 및 서천화력발전소에 밀려 폐쇄된 동백정해수욕장 등이 있으며 이 모두가 고향집에서 도보로 하루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이다.
또 내륙지방인 보령시 성주면에 소재한 성주산은 성주사지(聖住寺址)와 휴양림을 포함하며, 내 시골집에서 20km 이내의 거리에 있다. 금번 휴가 중에 나는 성주산의 심산계곡에서 발을 담갔으며 시냇물은 피곤에 지친 발가락에 졸졸졸 간지럼을 피웠다. 10km 이내에 위치한 보령시 미산면 보령댐을 한 바퀴 快走하면서 댐의 전모와 풍광을 엿보았다.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에는 바다가 없다. 그래서 금년 8 ~ 9월에는 서울 근교의 남한산성, 관악산, 도봉산을 산행하였으며, 9월 중에는 충남 아산시 현충사와 대전 자운리의 수운교 마을도 방문하였다.
이렇게 자주 장시간 걷다 보니 조금은 문제가 생겼다. 바다가와 산행에 열 개의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또 터지는 탓에 바람의 아들의 두 발은 고생했다. 발가락이 붓고 쓰리고 아파도 꾹 참고 걷기만 하였으니 나는 발가락을 혹사한 점을 인정한다.
더욱이 주말이 아닌 평일의 밤중에도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에 나가 2,532m 석촌호수를 세 바퀴나 네 바퀴를 속보나 조깅을 하였으므로 무릎관절과 발바닥을 계속 혹사한 죄도 인정한다. 그러니 지금 두 발의 형상은 오죽하랴?
왜 걷느냐고 내게 질문을 하여도 나는 달리 할 말은 없다. ‘그냥 걷을 뿐이다’이라는 것이 고작인 답변이다. 아직은 걸을 수 있는 건각(健脚)이 고맙고, 또 걷다 보면 생각이 단순해져서 좋고, 또 그러하다 보면 뱃살이 조금은 빠질 것 같다. 그 동안 '허리가 약하다, 시간이 아깝다’는 핑계로 가벼운 운동마저 게을리 한 죄로 군살만 찌어 행동거지가 더북거리거나 둔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금년 하절기 말부터 시작한 情報化事業管理의 단기교육 기간 중의 주말을 이용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더 변명한다면 ‘세상 사는 게 시들해졌다’라고 사족(蛇足)을 달 수도 있다. 또한 쉰넷의 初老의 나이가 되어서야 ‘바람의 아들'이 되어가는 징조이며, 또한 마음이 虛해지는 세월의 탓인지도 모른다.
2001. 10. 1. 월요일. 바람의 아들 윤환 씀
* 향촌 고향집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花望 고뿌래)
* 뭉크의 절규 : 19~20세기(1863~1944년)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bard Munch)의 미술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