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
정상적으로는 사흘 걸리는 거리를, 실제로는 닷새 만에 왔다. 비정상적으로 왔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어디가 문제였을까.
살펴보면 물고기를 잡겠답시고 강에 뛰어들었던 때에 있다. 애디의 번개검 한 방이면 해결이 될 물고기 잡이를, 손으로 잡겠다고 난리를 친 덕분에, 무려 5시간씩이나 강에 들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뛰어다닌다고 바빴던 애디와 핀은 거의 놀다시피 했다.
때문에 이니드의 눈길은 상당히 안 좋았다.
그는 총 12시간을 넘게 공복으로 버틴 뒤에야 힘겹게 중얼거린다.
“번개검이면 끝나는 거 아닌가?”
“아! 역시 형이에요!”
“…….”
환호와 함께 엄지를 내미는 순진한 애디. 그 탓에 이니드는 고생문이 훤히 열렸음을 직감했다. 그 고생문에 일조를 하는 사람이 핀이다. 핀의 실질적인 나이를 정확히 모르는 이니드이기도 하지만, 알았다 해도 걱정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26살이나 어린 꼬맹이와 동급으로 놀고 있는 마녀의 실제 모습이 과연 상상이나 될까.
그렇게 강에서 번개검으로 때려잡은 물고기로 배를 채우기를 이틀.
드디어 로자리아에 도착했다. 왕궁에 근접한 위성도시를 제외한 도시들 중 제법 큰 편에 속하는 로자리아.
이곳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구경도 아니요, 쇼핑도 아니요, 식사도 아니요, 바로 피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여관에 방을 잡고 낮잠을 청하는 것이다.
그렇게 3시간을 잔 셋의 얼굴이 조금 풀린다.
“아우, 졸려.”
번개검을 쓰느라 체력과 마력을 제법 소모한 애디는 3시간을 자고도 졸리는 얼굴이다.
씻을 준비를 하는 이니드와 핀과는 달리, 여전히 침대 위에서 뒹굴던 애디. 그는 하품을 크게 하며 중얼댄다.
“후아아아암-. 그냥 이대로 자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요?”
“얼른 일어나거라, 애디. 우리가 이곳에 놀러온 게 아니잖니.”
“놀러온 게 아니었어요?”
“…….”
눈가를 손으로 비비며 말하는 애디의 대답에, 핀과 이니드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각자의 화장실에서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두 남녀.
“애디, 또 자네.”
“음? 아아, 그렇구나.”
귀를 조심하면서 머리를 말린다고 바쁜 이니드. 그는 핀의 중얼거림을 듣고 시선을 돌렸다.
애디는 베개를 품에 안은 채 자고 있었다.
“어휴, 못 살아. 오빠, 우리끼리라도 밥 먹을래요?”
“어떻게 그래.”
핀의 제안을 이니드는 간단히 거절한다.
다시 밤이 오고 지나가면서 아침이 찾아왔다. 로자리아에서 제대로 된 아침을 맞은 것이다.
애디의 요청으로 인해 아침은 여관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와구와구 전법’ 을 구사하는 애디다.
같은 여관의 투숙객들은 애디의 [넘치는 빵 사랑] 에 감동의 눈길을 선사한다(?).
너저분하고 정신없으며, 동시에 손님들이 식사를 코로 하는지 눈으로 하는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고-.
바닥을 청소할 일만 남았다. 손님들도 애디 따라 질질 흘리고 먹었기 때문에 바닥에 절반이 흘러 있는 탓이다.
“애디 너 때문이잖아!”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핀의 부채다.
셋은 흩어져서 텔릭스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기로 했다.
강이 있어 꽤나 넓게 펼쳐진 로자리아에서,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로자리아에 온 지 나흘 만에, 텔릭스가 로자리아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거기가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것만 남은 상황에서, 다시 이틀이 지났다.
로자리아에 온 지 1주일째 되는 날 오전 11시 경.
여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어느 집.
7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한 데 모여 누군가를 보고 있다.
“3, 7.”
“21!”
“4, 5.”
“20!”
“6, 8.”
“48!”
“잘하고 있어, 모두.”
한 명의 어른이 물으면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대답한다. 영락없는 수업 중인 모습의 그곳은 1층짜리 어느 집의 자그마한 방 안.
아담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그곳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턱수염을 기른 어느 할아버지다.
“선생님.”
“예?”
“누가 선생님을 뵙자고 하십니다.”
“예?”
선생님이라고 불린 남자는 눈을 크게 뜨며 껌벅인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아니, 설마!’
그는 얼른 자신을 부른 사람을 따라 집을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은 그를 알아보고는 냅다 달려들었다.
“사부!!”
“애디! 네가 여기는 어떻게?”
“사부 찾으러 왔지요! 사부, 몸은 어때요? 아픈 곳은 없어요? 턱에 이건 뭐에요?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폭포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사내 텔릭스는 애써 웃었다.
“질문은 하나씩만. 응? 애디.”
텔릭스는 달라붙은 애디를 간신히 떼어낼 수 있었다.
발을 땅에 대고 선 애디는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난……. 사부가 우리를 버리는 것 같았단 말이에요. 하지만 이니드 형이 같이 간다고 해서, 버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전 부모가 안 계시잖아요. 그래서 사부가 절 데려다 키우신 거잖아요. 그래서 사부가 너무 좋아요.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사부마저 날 버린다면, 난……. 죽으려고 할지도 몰라요.”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그는 웃었다. 애디는 이레 만에 보는 사부가 너무 좋은 듯 보였다. 처음 보는 애디의 약한 모습에 텔릭스는 빙긋, 미소로 회답한다.
“어이구. 그깟 일로 울다니, 핀이 또 흉보겠네.”
대성통곡까지는 가지 않은 애디는 다시 코까지 훌쩍인다.
“그래도 되요. 오늘은 흉보라 그래요.”
텔릭스는 제자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울지 마라. 근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렸어? 난 한 이틀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이어진 애디의 그간의 정황 설명에, 텔릭스는 오랫동안 어이없어 했다.
“어떻게 키랑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5일이 걸릴 수가 있는 거야. 하여간 너도 참 못 말리겠다.”
“헤헤~! 그래도 불의 검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어요. 열심히 훈련을 잘 해서 그런가 봐요! 나 사부 칭찬받고 싶어요!”
“그깟 일로 칭찬을 받으려 하다니! 이미 번개검을 3년 전에 완성했었어야지!”
“3년 전이라고요?”
애디는 한숨을 내쉰 뒤 받아치기 시작한다.
“그 때 검을 잡아주셨으면서 무슨 소리에요! 그리고 검을 들고 휘두르는 방법만 알려주시고서! 번개검은 제 스스로 터득한 거잖아요!”
애디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에, 텔릭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냐?”
애디는 잠시 동안 허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부! 또 건망증이 도지신 거세요?”
“그런 모양이다.”
“사부, 혹시 제가 제자라는 것도 언젠가는 까드실 거세요?”
“…….”
제자의 물음에 텔릭스는 진땀을 뺐다. 왜 딱 잘라서 그렇지 않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이유가 뭐란 말인가.
“사부, 실망이에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을 글썽인 애디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쌩하니 가게를 나갔다.
“애디! 애디!”
뒤따라 나가봤지만 애디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 왜 내가 대답을 못 했을까? 어째서?”
머리를 굴리며 스스로에게 대답을 구해보지만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머릿속에 넣은 결과가 이제야 드러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큰일 났네. 이니드와 핀도 같이 왔을 텐데. 두 녀석은 어디서 찾는다?”
아무래도 이니드와 텔릭스는 고민이라는 이름의 저주를 받은 것 같다.
한편.
“너무해. 정말 너무해. 14년을 그렇게 봐나 놓고 나중에 까먹을 생각이라니, 정말 너무해. 사부, 너무해요. 미워할 거야. 사부 찾으러 나온 거 후회할 거야. 우아아아앙~”
계속 훌쩍이던 애디는 발밑의 돌을 발견하고, 그걸 집어 강에 냅다 던졌다.
바스락. 뒤쪽 풀숲이 크게 움직였다.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애디는 일순간 긴장감을 올렸다. 그리고는 허리에 찬 검을 빼들었다.
“누, 누구냐!”
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새하얗다. 언제 울었는지 모를 얼굴이다.
“여기가 어디야, 도대체.”
풀숲을 헤집고 나온 그는 초점 없는 까만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저 앞에 어느 소년이, 계속 울어서 붉게 충혈 된 눈을 크게 뜨고, 양손으로 검을 든 채로, 적당히 벌린 다리는 달달달달 떨고 있다.
“…….”
누가 봐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소년은 딱딱하고 차가운 얼굴로 상대를 주시한다.
“휴-.”
풀숲에서 뛰어나온 게 사람이라는 것을 안 애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검을 넣었다.
“여기가 어딘지 아나?”
경계가 풀렸다는 것을 알았는지, 풀숲에서 나온 소년이 얼굴만큼이나 딱딱한 목소리로 묻는다.
애디는 히죽 웃으며 대답한다.
“여기는 강간데요.”
“…….”
그걸 물어본 게 아닌데.
소년, 프린스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슬쩍 봤다. 푸른빛의 수면 아래로 몇 마리의 물고기가 지나간다.
물고기에서 시선을 뗀 그는 앞의 소년을 다시 바라봤다.
“그걸 물은 게 아니다.”
“아, 로자리아요?”
“흠.”
프린스는 목에서 작은 소리를 냈다. 그렇군, 이라는 대답을 담았지만 그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왕궁은 여기서 어느 방향이지?”
“왕궁?”
짧게 되물은 애디는 고개를 갸웃댔다. 그런 뒤 다시 히죽 웃었다.
“히히~ 모르겠는데요!”
“…….”
프린스는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하는 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