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잠자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다.” 대학 입시 수석합격자들의 천편일률적인 소감이다.
그들로부터 뭔가 공부비법을 엿보고자 했던 사람들은 매번 실망하기 마련이다.
한나라당 원희룡 국회의원이 그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는 제주도 출신으로 유일하게 학력고사 (1980년대 수능시험) 만점 전국수석,서울대 수석입학 후 학생운동으로 제적,5년뒤 다시 복교후 사법시험 수석합격,사법연수원 수석졸업 등 시험에는 도가 튼 사람이다.
원의원은 “공부에 특별한 비법은 없고 노력이 중요하지만 효과적으로 노력하는 방법은 있다”며 “수능을 앞둔 입시생을 비롯해 학생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원의원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쓴 ‘공부 잘하는 비법’ 이다.
▲계획을 세우고 관리하자
시간을 어떻게 분배해서 쓸 것인지,과목별 항목별로 내용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계획은 100% 실천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또 실천되었는지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나는 하루하루 일과 계획을 세우고 그 결과를 체크했다. 시간별로 어떤 과목에 어느 부분을 공부했고,집중이 잘 되었는지,집중이 잘 안되었는지,졸려서 잤는지 등을 실제 그대로 체크했다. 시간체크 수첩을 마련하는 게 좋다. 집중도가 떨어진 부분은 나중에 보충 공부 시간을 확보했다.
시간 체크 외에 공부 진행성과를 책과 노트에 기록했다. 이해가 잘 되는 것과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에 대해 책 페이지에 표시를 하거나 여백에 표시했다. 그러면 그 다음번에 책을 펴면 그 부분이 지난번에 이해가 잘 되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있다. 표시가 되어감에 따라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고 분발하게 되기도 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파악하자
내가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악하고 표시를 해두어야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어떤 학생들은 책에 밑줄을 다 그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으나 마나다. 내용에 따라 구별이 되게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기본’ ‘중요’ ‘주의’ ‘어려움’ 등이 구분되게 표시를 해야 도움이 된다. 무엇이 기본이고 중요한지,무엇이 어렵고 혼동이 되는지는 참고서나 문제집 등을 참고하도록 하되,공부가 진행되면 스스로 많이 간파할 수 있게 된다.
문제집도 처음 풀 때와 다음번 풀 때를 구분해서 자신만이 아는 기호로 표시해 보자. 예를 들어 처음 풀 때 바로 풀었으면 ‘O’,틀렸는데 답을 보고 이해했으면 ‘о’(작은 동그라미),답을 보고도 이해가 안되면 ‘?’,두 번째 풀 때 바로 풀면 ‘△’,또다시 못 풀고 답을 보고 이해했으면 ‘☆’를 표기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다보면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기가 되풀이해 틀리는 것들을 집중 공략할 수 있게 된다.
오답 노트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을 틀렸는지,어떤 점을 모르거나 착각해서 틀렸는지 기록하고 책에도 메모해 둔다. 틀렸던 것은 또 틀리기 쉽기 때문에 오답 노트를 잘 활용하면 성적을 한 단계 올리는 데 효과적이다.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자
단순히 글자를 쫓아가며 암기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내용을 자기 자신이 ‘가지고 놀아야’한다. 어떤 주제를 놓고 머릿속에서 관련된 내용을 떠올려 보고 연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이해를 잘 하게 되고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책의 어떤 부분을 놓고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인가,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왜 그런가,다른 것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관련된 것으로는 어떤 게 있는가 등을 생각한다.
문제를 풀 때도 답을 맞추고 틀렸다에 머무르지 말고 출제 의도를 생각해본다. 왜 하필 이 문제를 낸 것인지,무엇을 아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것인지,비슷한 내용을 더 어렵게 낸다면 어떻게 될 수 있을지 등을 생각해 본다. 책도 저자의 입장에서,출제자의 입장에서 다시 편집해 본다.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지 ‘연상 훈련’을 하려고 하면 무한하다.
▲집중력을 높이자
집중력 있는 1시간은 산만한 10시간보다 효과적이다.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밀도다. 주위 소음,의자가 흔들거리는 것,잡념 등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제거한다. 졸음도 마찬가지다. 졸리면 억지로 참기보다 잠깐 자고 깨 세수하고 다시 집중한다. 단 30분 이상 자서 늘어지면 리듬을 잃으므로 안된다. 집중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심호흡,명상,기도 등 자기 나름의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왜 공부하는가 목표를 생각하고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동기를 확인하는 것,더 힘들었던 상황을 생각하며 인내심을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페이스를 유지하자
시험 공부는 하루 이틀의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다. 끈기 있게 꾸준히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오늘 집중이 안됐으면 내일 할 수 있고,항상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또 시험 당일에 그동안의 노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의 노력파가 시험 당일에는 컨디션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2,3일 전부터는 실전 적응훈련을 하고 침착한 마음 유지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부 잘하는 비결은?
첫째,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자기가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계획을 잘 세워야한다. 계획표를 실행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공부잘하는 학생들은 계획도 잘세우고 실행도 잘한다.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실행력이 떨어진다.
둘째, 자기시간을 많이 가져라. 학원과외보다는 자신의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 당황하지마라.
문제가 어렵다고 당황하면 안된다. 내가 어려우면 남들도 어렵다고 생각해야한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어려우면 남들은 다 죽는다 라는 자신감을 가진다.
1교시에서 떨면 나머지 시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넷째, 쉬운문제부터 풀어라.
그래야 아는 문제는 다 밎힌다.그리고 아는 것을 다 맞쳐야한다. 쉬운 이야기이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막히면 넘어가고 자신있게 맞출수 있는 문제를 먼저 풀어 시간을 벌어야한다.
다섯째, 심호흡을 해라 시험전에 심호흡하면 긴장이 이완된다. 눈을 감고 5회정도 심호흡하면 긴장이 이완된다.
그리고 시험중에 심호흡도 중요하다. 보통 시험이 2시간 동안 지속되는데 2시간동안 계속 집중하면 엄청나게 피곤해진다.
두뇌의 피곤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 충분한 산소공급과 포도당 같은 양양분을 공급하는 것이다. 시험중에 먹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우므로 두시간 시험에 두번정도 머리를 세우고 5회정도 심호흡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성적이 저절로 올라갈 것이다.
- 수험생들은 어떤 참고서를 골라야하는지도 관심이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한가지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단권화를 해라. 과목별로 제일 좋은 책을 선별해야 한다. 남의 도움을 받던지 아니면 자신이 찾던지.
대체로 국정교과서는 믿을 만하다. 아울러 참고서 하나가 학교공부와 수능공부 때에 기본서가 되는 것이다.
한권을 여러번 보아야하고 문제집을 풀면서 좀 부족한 것들은 메모해놓으면 된다.
저의 경우 문과출신으로 과학을 몰랐지만 참고서 한권을 15번씩 봤다.
한권으로 공부하다보면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머리속에는 책이 펼쳐져 있어 모르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요즘 친구들 사이의 은어로 '난 한놈만 패' 라는게 있다. 참고서는 한권씩만 집중적으로 파라.
-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꼽으라면 ?
교육정책이라기보다도 어머니들이 문제가 많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을 세우더라도 어머니들이 왜곡한다.
교육입안자들이 이렇게 갈것이다 예상해서 정책을 만들더라도 힘든 것이다.
한 예로 수행평가에서 미술과 체육을 반영시키겠다 라고 하면 어머니들은 과외를 시킨다.
어머니들의 지나친 선행학습이 문제다. 학생들이 학원 등에서 미리 배워놓고 수업을 들으려하니 들어본 것 같고, 다 아는 것 같으니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 그러니 아는 것이 없어 다시 보충을 시키고.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전에는 학교수업외에는 기회가 없어서 수업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나친 선행학습이 비효율적인 것이다.
부작용으로 얘들이 공부하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 3개월이면 될 것을 2년이 더 걸리니 얼마나 지긋지긋하겠는가?
학교에서 수업하고 자신이 정리하고 쉴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으니 지긋지긋할 수 밖에.
어머니들이 바뀌어야하는데 참 어려운 문제이다.
사법고시 수석 합격 수기
1. 집중도를 높여라
처음 고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각오만 높은 상태에서 먼저 고시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들과 후배들의 친절한 조언과 격려에서 큰 도움을 입었습니다. 거처를 학교 근처로 옮기고 생활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집중상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루 생활은 아침 7시에 학교 도서관에 나가 밤 11시까지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자기 관리를 엄격히 하기 위해서 제 경우에는 조그만 생활일지 노트를 마련해서 그 날 공부한 시간을 체크하고 집중 정도와 감정 상태를 기록하면서 페이스를 계속 점검해 나갔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좀 무리하게 공부를 했는지 시작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나자 몸이 극도의 만성피로 상태에 빠져 몹시 힘들었습니다. 감기도 쉽게 걸리고 피로감을 벗을 길이 없었습니다.
몸이 괴로울 때마다 저는 공장에서 3일씩 철야작업을 하고는 몇 분간 졸도하면서도 쉬지도 못 하고 일해야 했던 과거의 극한적 경험을 생각하면서 최대한 버티려고 했습니다. 그 대신 몸이 너무 피곤해서 졸도할 정도에 가까워지면 집에 돌아와 한 시간 정도 곤히 잠자고는 다시 일어나 이불 위에 엎드려 누워서 경제학이나 문화사의 어느 한 부분을 펼쳐놓고 읽고는 했습니다.
고시 공부 기간 내내, 잠자리에 들면서도 그 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려 생각해보고 다음날 공부할 부분을 생각해 보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몸은 피곤해도 그 날 공부할 내용에 대한 궁금증과 의욕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공부가 연속성을 가지게 되고 그날그날 새로운 의욕으로 출발할 수 있어서 집중도의 유지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공부내용을 계속 다뤄보았고, 공부 이외의 다른 생각을 했던 모든 시간을 단 5분이라도 생활일지 노트에 체크하면서 그런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했습니다. 자투리 시간들도 가능한 한 모두 공부한 내용 한 토막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일지라도 공부의 집중도와 밀도는 꽤 높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2. 개념 정리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연상
공부 방법에 있어서는 그 과목을 처음 볼 때에는 전반적인 용어와 내용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속독을 하고 두 번째는 최대한 정독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정독을 함에 있어서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이나 법리가 나올 때에는 그것이 기출문제이든 아니면 결코 출제 가능성이 없는 것일지라도 몇 시간씩 붙들고서 머릿속에서 그 개념 및 법리의 연관 체계가 명확히 그려질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정리해 보았고, 익히기 힘들면 체크해 두고는 일단 넘어갔다가 읽어나가는 중에 관련된 사항이 나오면 앞으로 돌아가서 서로 내용을 연결시켜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단편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한번 유심히 읽어두는 정도로 하고 반면 앞뒤 관련이 많은 개념이나 내용들에 대해서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머릿속에 그려질 때까지 음미해보고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암기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2회 정독이 안 된 부분은 3회에는 특히 유의해서 정독하는 식으로 해서 결국 회독수가 늘어 가면서는 교과서 내용 중에서 정독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도록 했습니다. 특히 2차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정독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서 다뤄보고 그려보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읽어서는 책을 덮고 나면 몇몇 단편적인 사항만 기억에 남아있고, 다음 번 회독이 돌아올 때는 내용에 대한 체계는 안 서있고 또다시 단편적 암기의 부담만을 방대하게 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부 방법 면에서는 수험생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기본 개념과 기본 법리에 대해서는 얼핏 보아 쉽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히 미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수님도 잘 모르고 쓴 듯한 내용들에 대해 의욕을 부리고 그것이 실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식의 생각을 했었고, 미세한 것, 특히 저자의 허점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동료들과 해결될 리 없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착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 그래서 깊이깊이 새겨야 할 것은 기본적인 개념과 법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개념이나 법리에 대해서 이론적인 근거, 정책적인 근거, 실정법적인 근거 등 제반 근거를 생각해보고 그 개념이나 법리가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는가, 그리고 어떤 미흡한 점이 있는가 등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고, 그것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연상해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3. 그룹 스터디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
이제는 그룹 스터디 경험을 회고해 보겠습니다. 제 경우 1차 시험 준비 기간에 체계적인 그룹 스터디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의문 나는 것을 서로 이야기해보는 친구나 후배들이 있어서 도움이 됐고 과목에 따라서 외국어 공부를 함께 한다든가, 경제학 모의고사를 시간을 정해놓고 함께 풀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혼자 공부하면 흐지부지되기 쉬운 것에 대해서만 두 명이든 세 명이든 형식을 갖출 것 없이 간편하게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2차 시험 준비 기간에는 후배들과 함께 여섯 명이 스터디 그룹을 이뤄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룹 스터디의 내용은 과목 순서와 진도를 비슷하게 잡고 1주에 1회 정도 모의시험을 치르고 답안지를 돌려보는 것을 했습니다. 그룹 스터디의 목적을 각자의 공부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실전 답안 작성 연습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둔 셈입니다.
공부 내용에 대한 논쟁은 가급적 피했고 논쟁을 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절제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직전에 그 내용을 읽고 생각하던 사람은 세부적인 것까지 파고들면서 이야기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감과 초조감을 가지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논쟁은 서로 지기 싫어하는 심리와 말꼬리를 잡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리려는 폐단이 있을 수 있어 자칫 각자가 의욕을 엉뚱한 방향으로 쏟을 우려가 있고 마음의 손상을 입을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 페이스가 흐트러지지 않는 한에서는 가가자 취약부분 보충 기간도 가지도록 하고, 너무 쫓겨서 각자의 스타일과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지만, 그래도 개성이 다른 여러 사람이 모여서 보조를 맞추려니 각자 나름의 부담감과 애로사항이 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 슬럼프 벗어나기
단조로운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치고 공부가 마음만큼 진척이 되지 않을 때 슬럼프(침체 기간)가 찾아왔습니다. 생활이 너무나 황량하게 느껴지고 울혈이 가슴속을 짓누르는 것 같고 한없이 외로워 위안 받고 싶고 심한 추락감과 참담한 기분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제 경우는 2차 준비 기간 중 시험을 얼마 남기지 않은 3·4월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공부 장소도 바꾸어보고 했으나 공부는 진척이 되지 않고, 우울한 기분이 장기간 계속됐습니다.
이렇게 괴롭고 진척이 안 될 바에는 무엇을 위해 고시공부를 하는가 하는 회의와 어두운 충동이 일어 아예 공부를 포기해 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오면서 죽음의 고비도 견뎌냈던 것을 생각하며 아무리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새로운 상황이 온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새기고, 나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참담한 상황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맑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내 정신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버티자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공부가 잘 안 돼도 공부를 하면서 견디는 그 순간 순간은 고문을 받은 것처럼 괴롭고 쓰라렸습니다. 가슴에 피눈물이 고였습니다. 마음을 다지고 공부에 겨우 마음이 가다가도 다시 음습한 기분이 슬며시 나를 둘러싸 괴로운 싸움으로 나를 끌어냈습니다.
이런 싸움에 지쳐 맥이 풀리고 멍한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면서 버텼습니다. 슬럼프가 나를 괴롭힐 만큼 괴롭히고 나서야 서서히 맑은 집중력이 살아났습니다. 아마 슬럼프가 5월경에 찾아왔다면 저는 결코 합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슬럼프 기간 중에 공부했던 것은 효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는 아예 회독수에 넣지 않고 별도로 보충 회독을 했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의 개성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슬럼프가 오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적절한 휴식과 가벼운 기분 전환 등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슬럼프가 찾아오면 일단 그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1차 대비 기간의 계획이나, 2차 대비 기간의 계획을 세울 때에도 슬럼프 기간이 최소 2주일에서 많으면 한 달 이상까지도 올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전체 일정에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보통은 그 정도의 슬럼프 기간이 있더라도 보충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그 다음은 어떤 식으로든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기분 전환도 좋겠고 제 경우처럼 무식하게 버티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자포자기가 돼 생활 패턴과 공부 감각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합격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괴로운 터널에 봉착됐을 때 틀림없고 그 과정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고시 생활의 단조로움과 메마름, 압박과 같은 것은 사람이 평상적인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있는 생활 형태는 분명히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슬럼프를 자기만이 겪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초조해지기보다는 자신의 인내력과 어둠의 고통을 직면할 용기와 뚝심을 테스트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치러야할 시련, 말하자면 사법시험의 또 하나의 필수 과목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경우는 마음의 평정과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 명상도 하고, 학교 뒤 암자에 가서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버스를 타는 시간에는 음악도 많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그 속에서 처절한 사투와 승리, 만물에 대한 애정과 위로를 담고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괴롭고 어두운 터널에 빠져 있을 때 함께 있어준 스터디 그룹 후배들도 저에게는 큰 자극과 위안이 됐습니다. 아마 이들이 함께 있지 않고 저 혼자였다면 고시생활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5. 사시 1차에서 유의할 점
우선 생각나는 점은 1차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행 1차 시험 제도는 법 과목 이외 과목의 비중이 높고 공부를 해도 맞출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볼 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행 제도 하에서 1차를 합격해야만 2차 응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동시 합격을 목표로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닌지를 냉정히 판단해서 무리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1차에 집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1차를 합격하고 나면 힘이 붙게 되므로 2차 준비에 집중도가 훨씬 높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응시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겠지요.
그리고 과목별 방침에 있어서 제 경우는 법 과목은 1, 2차 공통이고 또 공부와 득점이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판단되어, 법 과목 전반은 90점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리고 법 과목 1회독, 2회독은 전반적인 이해 수준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고 통독했습니다.
아직 과목 전반에 대해 이해 수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는 각 과목 기출 문제를 검토하면서 공부 방향에 대한 감각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법 과목 외 다른 과목에 있어서, 경제학은 내용에 대한 이해가 확보되지 않으면 득점이 어렵기 때문에 이해 수준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80점 정도로 목표를 낮춰 잡았습니다.
문화사, 국사는 80점을 목표로 했고 전반적으로 통독하면서 암기량을 늘리려 했으나, 점수가 잘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법 과목과 선택 과목(제 경우는 국제사법)의 고득점으로 합격 점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외국어는 영어를 선택했는데 80점을 목표로 하고 어휘 공부와 문제 풀이로 영어 감각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91년 4월에 1차 시험을 치른 결과 최저점수가 문화사에서 67·5점이 나왔고 경제학도 저조했으나 95점의 국제사법, 형법이 점수 나쁜 과목을 보충해 줘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1차 대비와 관련하여 제 경험에 비춰보면 각 과목 내용에 대한 공부는 역시 교과서를 통독하는 것으로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내용에 대한 공부를 문제집에 의존하는 것은 내용의 연관성 없이 단편적 사항을 암기하는 데 머무를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집은 오히려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 특히 기출문제를 분석함으로써 교과서의 내용들이 어떻게 문제화돼 출제되는가 하는 유형을 익히고, 교과서 공부의 기초 위에 실전에서 보다 신속히 바른 답을 찾아낼 수 있는 훈련으로 생각하는 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런 감각을 염두에 두고 교과서를 문제의 저장고로 바라보고 읽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실전 문제는 문제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내용을 문제화해서 출제하기 때문입니다.
6. 사시 2차에서 유의할 점
제 경우는 1차 시험이 끝나고 2차 시험 때까지, 2개월 동안 1차 합격 여부에 관계없이 2차 과목을 열심히 봤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 민법·형법·헌법 외에 2차 과목을 1회독 할 수 있었고, 2차 시험에서는 합격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1분이라도 더 책을 보고 가서 시험을 치름으로써 2차 시험에 대한 감각을 익히려는 데 목표를 뒀습니다.
합격할 리 만무했지만 이 기간에 1회독 한 것과 2차 시험 4일간을 극한 상태에서 치러본 것은 이후 본격적으로 2차 시험 준비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는 1차 시험이 앞당겨져서 2차 시험과 간격이 길어지기 때문에 그 기간에 열심히 2차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공부한 정도가 2차 합격에 턱없이 모자란다고 스스로 생각되더라도 최대한 긴장하면서 공부하고, 4일간의 2차 시험을 있는 힘과 지식을 동원하여 치러보는 경험을 꼭 가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 치른 시험에 대해 채점 결과를 놓고 자기의 취약점을 점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험생의 취향과 감각 그리고 출제교수의 요구 및 감각과 차이점을 발견해서 객관화된 2차 시험 감각을 익힐 수 있는 가장 밀도 높은 경험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2차 대비로 교과서 정독이 중요하다는 점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2차 실전의 출제에 대한 감각을 세워나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은 기출 문제에 대한 교수님들의 채점 평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나름의 감각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교수님들이 점수를 주려고 출제했다는 문제에 대해서 수험생들은 한결같이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수험생들이 소위 A급, B급으로 예상문제를 꼽고 만점 답안을 노리는 문제들은 교수님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 예상 문제들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교과서 전반을 가능하면 빠짐없이 정독할 수 있도록 원칙을 잡는 게 좋을 듯합니다.
시험은 수험생들의 그 과목에 대한 이해 및 습득 정도를 측정하는 데 목적이 있고 사실 어떤 문제를 출제하더라도 실력 측정이 가능한 것이며 교수님들은 기본적으로 그 과목 전반을 꿰뚫고 계신 분들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몇몇 예상 문제 중심으로 공부하는 게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지는 자명해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수험생으로서는 문제 구성 능력이 교수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흡하기 때문에 교과서의 목차 제목이나, 문제집에 수록된 문제를 출제의 단위로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접 목차나, 멀리 떨어진 목차에 담겨진 내용을 연관시켜 망라하는 답안을 기대하고 출제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부분적인 논점에 초점을 맞춰 출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너무 교과서 목차 단위에 머무르지 말고 내용 면에서 폭을 넓혀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고, 여러 관점이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는 파고드는 공부도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케이스 문제는 앞으로 어느 과목에서든 출제될 수 있다고 보입니다. 좋은 문제집이나 자료가 있을 때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의 케이스 해설집들은 교과서 내용 중 특정 목차를 재수록 해놓은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이 곧바로 실전 케이스 대비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실전 케이스는 다양한 많은 논점을 담고 있는 문제들이 출제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특히 다각적인 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케이스 문제들을 접해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자료가 없는 경우라도 어차피 케이스 문제 답안에 들어갈 내용은 교과서 내용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충실히 보되, 교과서 목차와 그 분량 그대로 써내는 것이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문제의 소재를 밝히고 핵심적인 내용을 간략히 쓰고 결론을 맺을 수 있는 압축 훈련이 필요하고, 또 교과서에 산재해 있는 내용들이 하나의 케이스 문제에 논점으로 결합돼 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교과서를 좀 더 광범위한 감각으로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답안 작성 요령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일견 단순해 보이는 문제라도 문제 자체의 표현을 통해서 배제하지 않고 있는 범위의 관련 문제나 논점은 출제자가 요구하고 있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서 답안이 망라해야 할 범위를 잘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 자체에서 배제하고 있는 범위 사항을 쓰는 것은 금쪽같은 시간과 지면의 낭비이고 문제 자체에서 배제하지 않은 범위의 것을 자기가 주관적으로 배제해 버리면 배점된 점수를 받을 길이 없을 겁니다.
범위를 정확히 설정하고 나면 각 내용들에 대해 균형 있게 다루면서 법률적으로 특히 실익이 있는 사항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답안 내용 면에 있어서는, 서론에서는 출제된 문제가 그 과목 전반의 체계나 아니면 논의의 실익이 있는 문제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출제자가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음을 내용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그 과목에서 기본이 되는 보다 일반적인 법리에서 출발하여 최단거리로 출제된 문제의 핵심어로 연결시켜 내고, 문제의 논의가 가진 실익을 지적하고, 문제의 내용이 어떤 체계로 전개되는지 혹은 어떤 사항의 음미, 검토할 것인지를 제시할 것인지를 서술하는 것입니다.
내용 면에서는 서론의 비중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속도감 있고 시원스럽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며, 내용을 장황하게 쓰는 것은 무엇보다 시간배분 문제가 심각해지고 산만한 느낌을 주며 문제의 윤곽과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본론에 있어서는 각 논점에 대해 법리나 견해를 서술할 때마다 가능하면 이론적 근거나 정책적 근거, 실정법적 근거(예컨대 조문)를 밝히는 것이 득점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단 몇 마디로라도 근거를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은 공부가 그만큼 탄탄하게 됐다는 증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논평의 여지가 있을 때마다 논평을 가하는 게 좋습니다. 말하자면 일반법리에 대해서는 예외이므로 엄격히 운용돼야 한다거나, 관련 판례가 의미가 있다거나, 입법 정책으로는 어떤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거나, 상충되는 다른 요점과는 어떻게 조화돼야 한다거나 등등, 법 해석, 운영의 방향이나 문제점, 파생되거나 연관되는 문제들과 관련해 음미해보는 이른바 검토 내지 고찰의 시각을 가미할 수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점수가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론의 경우는 단순 요약보다는 가능하면 종합적인 논평을 가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여론은 출제된 문제와 관련성이 높은 경우에는 득점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여론은 별 호응이 없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큰 문제와 작은 문제에 대한 취급에 있어서는 특히 작은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작은 문제를 엉성하게 쓴 경우와 충실하고 풍부하게 쓴 경우의 점수 차이가 큰 문제에서 나는 점수 차이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작은 문제들을 잘 쓰는 게 합격에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큰 문제는 한 시간 이상씩 투여하고 문장 토씨까지 신경 쓰면서 쓰는 반면 작은 문제는 대충 쓰는 식으로 되기 쉽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생각하고 답안을 작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시간 배분이라고 봅니다. 제 경우는 모의고사 답안을 작성할 때마다 마지막 문제는 5분을 남기고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 시간 안배에 특히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3회독 정도가 된 뒤, 공부에 어느 정도 체계가 서고 소화 정도가 높아진 다음에는 초안 작성 시간을 아예 5분 정도로 줄이고 실제 답안 작성 시간을 확보하려 했고, 글씨나 토씨 또는 문장을 구성하는 데 신경 쓰이던 것을 없애고 처음부터 속도감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마지막 문제도 최소한 15분 정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2차 시험 실전 4일과 관련해서는 우선 아무리 예상 외 문제가 나오고 망쳤다고 생각되더라도 다음 과목에 신경을 집중하고 절대로 포기하거나 잘못 본 과목에 대해 탄식하지 않는 뚝심이 중요합니다.
저는 92년 2차 시험의 경우 출제된 문제들이 예상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 감이 안 잡히고 한 과목 문제가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그 5분간 내가 잘 모르는 문제들만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고문을 당하는 듯한 참담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각 과목 시험 전날 밤에 다음날 과목을 속독하고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반도 못 보고 간 날들이 많았습니다. 시험 벨이 울리기 전에 눈에 넣어두려고 책장을 넘긴 부분들이 적중된 데 거의 없어서 출제된 문제들을 볼 때마다 밑바닥에서 기어오르는 기분으로 문제를 응시해야 했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를 보자마자 폭발적 연상을 확보하기 위해 순간적인 정신 집중에 온 정신을 기울이고는 초긴장 상태에서 답안을 써나갔습니다.
채점 결과는 비교적 충실히 썼다고 생각하는 과목은 오히려 점수가 기대보다 맞았고 스스로 불만족스러웠던 과목들이 점수가 높아서 주관적인 기분이 채점자의 기준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7. 글을 마치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날 저는 명단을 기다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습니다. 최선을 다 했는가 자문해보고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떨어지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니 승복하자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 석자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기쁨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며 고생했고 나에게 위안과 자극이 됐던 스터디그룹 멤버 여섯 사람 중에 두 사람이 명단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분투해야 하는 두 후배의 괴로움이 나에게는 가슴을 적시는 애틋함이 된다는 마음으로 두 후배의 강인한 노력을 기원합니다.
풀무질과 담금질을 통해 고통 속에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하늘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련과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 특별히 두 사람을 택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찌, 제 후배 두 사람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목표를 항해 뼈를 깎는 인고의 과정을 묵묵하게 견뎌내는 많은 수험생들의 그 사연을 제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제 이야기만을 주워섬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행운이 따라서 합격했지만, 그 행운이 한꺼번에 모든 사람에게는 돌아갈 수 없게끔 돼있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곡 이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만간 행운의 차례가 돌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행운이 여러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것을 맞아들일 준비를 철저히 하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떤 괴로움과 나태함도 이기고, 어떤 주관적인 자기 합리화나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나날의 생활이겠지요. 모든 분의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