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문영배 (헐렁이 soonbakgol@hanmail.net)
문원초 후문에 파란 천막이 쳐지게된 까닭
문원초 인조잔디 운동장을 막아내기 위한 6일간의 천막농성이 어제 마무리되었다. 비록 내 손으로 내 천막을 철거했지만 6일동안의 농성은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과천에서 농성천막을 치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지난해까지 천막을 유지했던 코오롱 노동조합 노동자분들도 있었고 3년째 집회를 계속하면서 반 농성 상태를 유지해왔던 3단지 철대위 분들도 있었지만 과천의 시민운동 진영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것은 정말로 보기드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염려하는 분도 많았다.
"왜 이런 일을 벌이고 그래? 정말 괜찮겠어?"
농성장에 들른 한 시민이 남기고 간 말이다. 분명 천막 농성을 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이었나보다. 몇 몇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의 지지는 있었지만 이런 활동을 해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러한 이질적인 행위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처음 천막농성이라는 다소 과격한 투쟁 수단이 등장한 것은 지난 15일 탁발순례단 2일차 행사 저녁시간에서였다. 이미 넉다운 된 학부모들 대신 이 문제를 과천시 전체의 문제로 끌어올리자고 누군가가 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과천시민의 문제라고 인식을 해야한다고 말했지만 선뜻 나서서 투쟁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서로의 얼굴만 보고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다소 생경한 '선도투'를 하자고 말하면서 '천막농성'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바로 청바지(최경송)였다.
"지금 상황에서 서명운동이나 유인물 같은 걸로는 과천시민의 눈을 돌릴 수 없어요. 천막농성 같은 선도투가 있어야 지역 단체들이 관심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청바지의 말은 분명 설득력있었다. 최근 1년간 과천시를 둘러싼 일련의 의제들(도시기본계획문제,3단지 옹벽문제, 포에버21문제 등)은 별다른 행동 없이 지나갔다. 비슷한 내용의 중앙공원 우레탄 조성 문제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지나간 걸 보면 일련의 패배주의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3개의 대안학교와 다수의 공동육아단체, 환경연합, 학교평화, 푸른내일을위한여성들 같은 시민단체, 맑은내사람들, 과천품앗이, 동화읽는어른모임, 한살림 경기남부 생협 등등 수많은 단체들이 있지만 단오제를 제외하고는 공동의 실천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과천시의 주요 이슈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만들어내지 못해왔던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틀에 박힌 서명전과 유인물 피세일로서는 공사가 시작되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연 과천시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토론은 밤 2시까지 이어졌지만 그 날 결정된 것은 18일경에 문원초 교장을 만난 뒤 투쟁의 방식을결정하자는 것이었다. 19일날 몰려갔지만 교장은 만날 수 없었고 교감을 상대로 입씨름을 했다. 다음 날 교장을 만나면서 모든 상황은 분명해졌다. '학생들의 체력증진'이란 말만 되뇌이는 완고한 교장 앞에서 우린 최대한 예의바르게 의견을 전달했다. 우리의 입장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교장은 '국가가 하는 좋은 사업이 뭐가 문제냐','안전기준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 등의 고지식한 방어 논리를 펴면서 궁지에 몰리자 '당신들 하고 싶으며 해봐라. 난 법대로 대응할거다.'로 일갈했다.
교장을 만난 뒤 우리의 대응은 단순해졌다. 할테면 해봐라라고 말하는 교장의 코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하는 것 만이 그에게 타격을 주는 확실한 방법으로 생각했다. 농성장을 펴고 농성장을 지지방문하는 각 단체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확산해나가는 길 만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천막농성은 시작되고
지난 22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우린 문원초 후문에 모였다. 학교 후문의 팔각정 앞에는 천막을 세우기 좋은 장소가 있었다. 나무 바닥 덕에 물빠짐도 좋은 명당자리에 우리의 천막이 세워졌다. 다소 비가 많이 오긴 했지만 농성장에 모인 한 사람 한사람이 각자의 특기를 발휘하면서 동네 농성 천막은 순식간에 럭셔리한 캠핑 텐트로 변했다.
농성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이 되면서 텐트는 동네의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각 단체의 관계자들이 하나 둘씩 텐트를 찾아왔고 알음알음으로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텐트 앞에 설치한 피켓과 인조잔디 샘플도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연히 지나가는 문원초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잠깐씩 시선을 고정시켰다. 인조잔디 샘플을 들고 논쟁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인조잔디 운동장을 막아달라는 학부모도 있었다. 이튿날 기주화님이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난 그 당시의 내 감정을 전달했다.
동영상 제작 : 기주화 eddy2121@hanmail.net
"과연 이런 사안으로 농성을 하는것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많은 염려가 되었어요. 기륭 전자 노동자들과 같은 절박함은 없겠지만 우리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절박함은 분명 이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들의 자식에 대한 염려와 아버지들의 절박한 분노가 모아져서 이 텐트를 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 이번 농성을 통해 수많은 동네 아저씨들이 몰려왔고 자리를 잡았다. 분명 농성단은 남성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투쟁 방식임에는 틀림없었다.
한편 이와는 다르게 별도로 운영된 홍보단에는 용감한 동네 아줌마 네 분이 있었다. 지난 21일 네 분의 아줌마가 의기투합해서 시작된 홍보단은 매일 2시간씩 과천시를 돌면서 인조잔디 운동장의 문제점을 동네 곳곳에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매일 50여명의 서명을 받으면서 꾸준히 돌아다닌 끝에 지금까지 400명 넘는 서명을 받게 되었고 동네의 이슈로 자리잡았다. 목표인 4천명의 1/10이지만 1주일만에 얻은 성과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하에 우리는 농성단에 국한되지 않는 임시 기구를 만들었다.
'문원초 인조잔디 운동장 반대 동네결사'는 이 문제를 반대하는 개인과 단체 모두가 가입할 수 있는 열려진 임시기구다. 농성단과 홍보단을 중심으로 각자의 역할에 맞도록 업무를 배치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동네결사가 알려지면서 과천시내 주요 단체 회원들의 지지 방문이 줄을 이었다. 무지개교육마을, 과천품앗이, 한살림경기남부 과천지부, 학교평화만들기 등의 단체 회원들이 농성장에 음식을 조달했고 문원초 학부모들도 매일 들러 농성단을 격려했다. 간만에 많은 단체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좋은 기회를 가졌고 이러한 힘은 24일 밤, 27일 밤에 있었던 '인조잔디운동장 반대 동네결사'회의로 이어졌다.
밤에 진행된 회의로는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모두 연인원 30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석했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뿜어져나왔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다른 탓에 회의가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인조잔디 운동장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두 차례의 회의에서 이 투쟁의 방향에 대한 공유가 있었고 '인조잔디운동장 공사를 중지키시자는 목표'를 분명히 하자는 쪽과 향후 학부모 조직을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하는 의견이 서로 대립하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농성장에 모여서 그런지 어려움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근 4개월동안 힘겹게 싸워온 문원초 학부모들의 사연이 널리 알려지지 못해 오해도 생겼다. 문제의 교장을 수차례 면담하고 교과부와 안양교육청을 들락날락하며 쉼없이 싸워온 문원초 학부모들의 투쟁은 근래에 보기힘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단체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못했다. 마을신문 33호에 자세히 나온 이야기를 참고해주었으면 좋겠다. http://www.gcinews.org/sub_read.html?uid=464§ion=section4§ion2=
포크레인을 멈추고 인조잔디 운동장 반대를 외치다!
8월 25일에 드디어 운동장 기반 공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운동장에 등장한 포크레인은 가위손을 이용해 무자비하게 구령대를 철거했다. 집중 호우 때문에 예정보다 늦게 공사를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포크레인의 작업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구령대를 한나절만에 철거한 포크레인은 운동장 오른쪽 바닥도 긁어냈다. 소음과 먼지로 뒤범벅된 문원초는 이제는 공사판이 되고 말았다.
이에 우리는 26일 인조잔디 운동장 공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분노한 시민 30명이 문원초에 모였다. 독선적인 교장을 비판하고 예산을 4억이나 투여한 과천시를 규탄했다. 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은 바로 운동장으로 달려가서 작업중인 포크레인을 멈췄다.


포크레인을 멈추고 우린 둥글게 감쌌다. 포크레인 끝에 꽃을 달고 플랭카드를 편 뒤 우리의 입장을 기자들과 과천시민에게 알리는데 주력했다.
학부모를 볼모로 자진 퇴거를 끌어낸 비겁한 교장
이윽고 농성 5일차 되던 날 교장으로부터 퇴거명령요청서란 요상한 서식의 문서가 도착했다. 더구나 이 문서의 수신인으로 문원초 학부모 한 명의 실명이 적혀있었다. 농성단의 주체는 지역주민이라는 것은 동네방네가 다 아는데 문원초 교장은 이를 모른 척하면서 슬쩍 모든 책임을 학부모 1인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었다. 끝까지 농성장에서 버티다가 연행되겠다고 말했던 나 역시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농성을 지속할 수 없었다. 학부모 한 명이 재판장을 왔다갔다 하면서 손가락질받고 상처받는 상황에 대해 우리는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어제 2시에 5명의 사람이 모여 조용하게 우리의 터전 천막을 철거했다. 내가 친 천막을 막상 철거하게 되자 가슴 속에 울화가 치밀었다.
"내일 교장 얼굴 꼭 봐야겠다. 그 놈 앞에서 반드시 한마디 해야겠다."
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면서 남은 물품을 두 대의 차에 나누어실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했다. 농성단은 해체되었고 우리의 투쟁은 3라운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천막 농성이 내게 남긴 것
6일간의 농성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오구로와 함께 쓰디쓴 보드카를 마셨다. 1주일간 술을 입에 전혀 되지 않았던 만큼 보드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는 평소보다 두 배 힘겨웠다. 찐한 알코올과 함께 마음이 정화되고 격양되었던 감정이 서서히 진정되자 다시금 농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농성단은 우리 전체에게는 많은 성과를 남겨주었지만 내 손으로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은 가슴 속에 치유되기 힘든 찐한 상처를 남겼다.
"농성을 하는게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쉬운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가 다른 걸 이만큼 잘 할 수 있을 지 의문이에요."
오구로는 보드카를 마시며 이렇게 말한다. 나 역시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농성에서 힘을 쏟아낸 동네 아저씨들이 국면이 바뀐 두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되었다.
이제 3라운드다. 할 일은 태산같이 남아있고 인조잔디 공사도 3개월이나 남았다.
이번 농성이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아직도 우리들은 살아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데 있었다. 조금만 더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동의하는 사람을 만들면 마지막 싸움이 가능할 수도 있다. 농성 천막이 있는 동안 우린 잠시나마 진지한 토론을 했고 함께 투쟁을 기획했다. 농성에 자극받은 서형원 의원은 이제 뜨거운 햇볕 1인시위를 시작했다. 68도까지 올라가는 인조잔디를 깔고앉아 세 시간동안 버티면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계속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문원초등학교에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잘알고 있다. 하지만 청계초등학교가 5년이 넘는 긴 과정 끝에 변했듯이 문원초등학교의 의미있는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
농성을 마치고 문원초 인조잔디 운동장을 막기위한 3라운드를 준비하면서 하루밤 늘어지게 자려고 한다. 기왕 시작한 거 웃으면서 유쾌하게 싸우기 위해 한숨 푹 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