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은동 삼각산 옥천암(玉泉庵)을 찾아서 ②
-수덕전(脩德殿) 및 이모저모-
삼각산 옥천암(三角山 玉泉庵) 일주문
이 절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산8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 계사 말사입니다. 이 절은 삼각산의 맥이 비봉과 향로봉을 거쳐 인왕산으로 이어지기 직 전 삼각산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절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처음 창건되 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근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장의사(藏義寺) 터가 있습니다. 지금 의 세검정초등학교 일대에 있었던 장의사는 신라의 무열왕(武烈王)이 백제와의 황산(黃山) 전투에서 전사한 장춘랑(長春郞)과 파랑(罷郞)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입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내에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데 보물 제23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장의사와 옥천암이 직접 연결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옥천암 부근에 7세기부터 절이 있었던 것은 분 명하다고 합니다.
절의 자세한 연혁은 알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고종 5년(1868)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명 으로 정관(淨觀)스님이 중창하였다는 사실이 가장 오랜된 기록이라 합니다. 그뒤 1927년 에 주지 이성우(李成祐)스님이 칠성각과 관음전을 지었으며, 1932년에는 큰방 6칸과 요사 3칸을 고쳐지었다고 합니다. 1942년 주지 동봉(東峰)스님이 관음전을 수리하고 보타전(寶 陀殿)을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음전ㆍ삼성각ㆍ요사가 있었으나 1987년에 삼성각 등이 소실되어 이듬해 수덕전(脩德殿) 하나로 통폐합되어 중창되었다고 합니다.
옥천암 종무소
일주문 바로 우측에 있는 이 건물은 1층은 옥천암 종무소이고 2층은 요사채입니다.
옥천암 수덕전으로 가는 문
이 문은 달리 명칭이 없는 문인데 금강문 역할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옥천암(玉泉庵) 편액
옥천암(玉泉庵)이란 명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에 깨끗한 약수가 있는 샘이 있었을 것 입니다. 실제 옥천이 있었는데 민가가 들어서서 지금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옥천암 앞을 흐르는 홍제천은 맑기가 옥과 같았고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범종각(梵鐘閣)
문을 들어서자 마자 범종각이 있는데 수덕전 오른쪽에 웅좌하고 있습니다. 1989년에 범 종을 봉안했다고 하니 그때 함께 지어진 것같습니다.
범종각 모습
이 범종각에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가 있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법음을 듣고 번뇌를 끊고 지혜를 자라게 하며 발보리심(發菩提心)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하고 구경성불(究竟 成佛)하라고 축원하며 사물(四物)의 소리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수덕전 모습입니다.
수덕전(脩德殿)
이 자리엔 관음전ㆍ삼성각ㆍ요사 등이 있었으나 1987년 화제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 어 이듬해 1988년도에 통폐합하여 수덕전을 중창하고 그 옆에 요사를 크게 지었습니다. 수덕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수덕전(脩德殿)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을 말합니다. 석가모니불을 모시면 대웅전이라 하는데 특이한 이름을 썼습니다. 부처님은 복덕과 지혜를 모두 닦으신 분이기에 이런 이 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수덕전에 들어가 보니 석가모니불 불상이 아니고 아미타불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기둥에 주련이 있어 적어 봅니다.
摩訶大法王 마하대법왕 거룩하고 위대하신 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 무단역무장 짧음도 또한 김도 없음이로다. 本來非皁白 본래비조백 본래로 검도 희도 않으면서도 隨處現靑黃 수처현청황 인연따라 청황으로 나타난다네.
수덕전(脩德殿) 편액 대연거사(大然居士) 글씨
수덕전(脩德殿) 편액을 대연거사(大然居士)가 썼다고 하는데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 수(脩)는 수(修)와 같은 글자입니다.
아미타불과 아미타후불탱화의 모습
옥천암 홈페이지나 전통사찰총서 등에 모두 석가모니불이라 소개하고 있지만 실은 아미타 수인을 하신 아미타불이십니다. 이를 뒤받침하는 후불탱화 역시 아미타불탱화입니다. 제 생각에는 수덕전이 건립되기 전 이곳은 관음전 등의 전각이 있었습니다. 보도각에 모셔진 마애관음보살좌상이 기도처로 유명한 만큼 이곳은 관음도량으로 유명했을 것입니다. 관 세음보살님은 아미타불의 좌보처로 늘 모셔지는 만큼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실된 관음전 자리에 수덕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 면서 아미타불이 석가모니불로 둔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전각의 명칭을 극락전(極樂殿)으로 바꾸어야 된다고 봅니다. 아니면 후불탱화나 불상을... 지금의 주지 스님이 오시기 전전에는 비구니스님이 주지로 계셔서 옥천암이 비구니 도량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아미타불을 석가모니불이다 생각하면 석가모니불일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 지 않을까요? 하기사 어느 유명한 수광전(壽光殿)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부처님을 모시고 아미타불이라 우기고 있는 곳도 보았습니다. 법도가 무너지는 세상이라 그럴까? 고정관 념을 탈피하라는 뜻에서 그럴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을 하고 계신 부처님
이 부처님의 수인은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을 하고 계십니다. 선정인(禪定印)에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아미타불의 대표적인 수인(手印)입니다. 이는 묘관찰지정인(妙觀察智定印) 이라고도 합니다.
신중단의 신중목각탱화(神衆木刻幀畵)
지장탱화(地藏幀畵)
칠성탱화(七聖幀畵)
산신탱화(山神幀畵)
독성탱화(獨聖幀畵)
이상과 같은 탱화를 모심으로 해서 옥천암 터가 협소한 관계로 따로 전각이 없는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장탱화 옆에 마련된 영단입니다.
옥천암 안쪽 전경입니다.
옥천암 안쪽은 마당이 협소합니다. 오른쪽은 절벽이지요. 민가가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 일부 사들여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덕전과 일자로 이어진 전각은 설법전입니다.
오층석탑
원래 수덕전 앞에 건립된 탑인데 마당가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언제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는 몰라도 왜색풍이 납니다. 조계사 대웅전 앞에 있던 사라탑이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왜색풍이 나서 최근 다시 팔각 10층탑으로 다시 짓고 한쪽 구석으로 이전한 모습이 떠오 릅니다. 이 탑도 아마 그 시절에 건립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
마당가 담에 가득한 동자승 인형들
설법전 모습
설법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원래 요사채로 지어져 요 사채라 불렸습니다. 여기는 요사채 뿐만 아니고, 종무소, 공양간으로 활용되었는데 지금 은 칸막이를 헐어 설법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사채는 민가를 사들여 사용하고 있습 니다. 거기에 1층은 종무소 2층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공양간은 다른 곳에 넓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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